6월 26일 공고 7월 16일 합격 발표, 티켓 예약은 6월 17일…연맹 “권익위 매뉴얼 따르면 비리 아냐” 사무처장 “사실무근”
대한민국 사격은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역대 최고 성적을 냈다. 금메달 3개와 은메달 3개를 쓸어담았다. 김예지라는 글로벌 스타도 배출했다. 그러나 연맹을 둘러싼 잡음이 불거지면서 빛이 바랬다. 신명주 전 대한사격연맹 회장은 본인이 운영하던 병원에서 불거진 임금체불 의혹에 휘말리며 도망치듯 사퇴했다. 신 전 회장은 메달리스트들에 대한 포상금 지급을 하지 않고 물러나 구설에 올랐다.
신 전 회장 임기 때 채용된 A 사무처장이 대한사격연맹 사무처 운영을 총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A 사무처장의 채용 과정을 두고 사격계 안팎에서 뒷말이 무성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한 사격인은 “7월 2일 회장 취임식 이후 약 보름 만인 7월 16일 사격연맹이 신임 사무처장 채용 최종합격자를 공식 발표했다”면서 “사전에 특정인을 내정해 놓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고 했다. 또 다른 사격계 관계자는 “사무처장 채용 절차가 시작되기도 전에 신임 사무처장의 파리행 티켓이 예약돼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제보했다.
대한사격연맹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따르면 연맹은 6월 26일 사무처장 채용공고를 했다. 채용공고 당일부터 7월 10일 오전 10시까지 지원자 서류를 접수했다. 7월 12일엔 서류전형 합격자가 발표됐다. 총 5명이 서류전형에 합격했다. 7월 15일 오후 2시부터 대한사격연맹 사무실에서 면접이 진행됐다. 한 사람당 40분 내외로 면접을 봤다.
면접 이튿날인 7월 16일 최종 합격자가 발표됐다. 그로부터 열흘 후인 7월 26일 새롭게 발탁된 A 사무처장은 ‘결전지’ 파리행 비행기에 탑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의 사격계 관계자는 “채용 절차는 요식행위였을 뿐 특정인을 사무처장으로 내정해놨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정황이 나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요신문은 ‘대한사격연맹 사무처장 채용 내정 의혹’ 관련 문건을 단독 입수했다. 파일 제목은 ‘E티켓-처장님’이었다. 문건엔 A 사무처장의 파리행 왕복 항공권 예약 정보가 담겨 있었다.
A 사무처장의 항공권은 7월 26일 파리로 출발해 8월 6일 인천국제공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문건에 따르면 항공권 발행일은 2024년 6월 17일이었다. 티켓은 연맹 측이 직접 예약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사격연맹 사무처장 채용 일정에 따르면 채용 공고일은 6월 26일이었다. 그런데 A 사무처장 파리행 항공권은 공고일 이전인 6월 17일 예약이 완료됐다. 항공권 예약 한 달 뒤엔 A 사무처장이 채용에서 최종 합격했다. 티켓을 예약할 때와 항공기에 탑승할 때 신분이 달라진 셈이다.
한 사격인은 “채용 과정에서 내정자가 있었는지 여부가 물론 핵심 쟁점이지만, 대한사격연맹이 연맹 소속 관계자가 아닌 사람의 항공권을 직접 예매하는 것이 규정 위반이라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포인트”라고 지적했다.
이 사격인은 “새로운 사무처장 채용 필요성을 논의하는 인사기금위원회가 6월 24일경 화상회의 방식으로 이뤄졌다”면서 “당시 실무부회장은 ‘안건(사무처장 신규 채용)을 승인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회의 자료를 공개하겠다’는 있을 수 없는 방식으로 회의를 진행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주장했다.
A 사무처장 채용 과정서 불거진 의혹과 관련해 이은철 대한사격연맹 실무부회장은 “신명주 전 회장이 선출된 뒤 바로 올림픽을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면서 “회장이 바뀌면서 줄어든 회당 출연금 부분을 마케팅을 통해 메워야 했고, 마케팅 및 미디어 자문을 해줄 전문가가 필요했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A 사무처장을 마케팅 및 미디어 자문으로 데려가기로 결정을 한 뒤에 신명주 전 회장과 내가 사무처장을 교체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렸고, 그 시점에 사무처장을 새로 뽑게 된 것”이라고 했다.
대한사격연맹 관계자는 10월 31일 일요신문과 만나 “처음 항공권 예약할 때 A 사무처장은 마케팅 및 미디어 자문 역할을 수행하기로 예정된 상태였다”면서 “비행기를 탈 때엔 사무처장 자격으로 파리에 간 것이 맞다”고 했다. 그는 “전임 회장, 전임 회장 비서, 마케팅 및 미디어 자문을 맡을 예정이었던 A 사무처장을 전임 회장 개인 자금으로 파리에 데려가기로 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연맹 관계자는 “연맹에서 먼저 티켓 예약을 한 뒤 해당 금액을 청구하면 전임 회장이 주겠다는 얘기가 처음부터 다 돼 있었다”면서 “전임 회장이 해당 금액을 준 기록도 행정상으로 다 남아 있다”고 해명했다. 신임 사무처장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 인사기금위원회 화상회의 내용에 대한 의혹과 관련해 연맹 관계자는 “그런 내용에 대해선 모른다”고 했다.
연맹 관계자는 “사무처장 신규 채용은 6월 21일 신명주 전 사격연맹 회장이 처음 지시했고, 6월 26일 채용공고가 게재된 뒤 계획된 일정과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면서 “사격계 일각에서 A 사무처장 항공권이 사전에 예약된 것을 두고 채용 비리 의혹이 제기된 것은 알고 있다”고 했다.
연맹 관계자는 “국민권익위원회가 정한 매뉴얼에 따라서 인사기금위원회가 이사회 요청을 받아 A 사무처장 채용 과정 및 절차에 대해 파악한 결과 청탁이 없었고, 인사기금위원회 위원(면접관)들이 사전에 신 전 회장과 A 사무처장이 만났던 걸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채용비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해명했다.
10월 31일 일요신문과 만난 A 사무처장은 “채용 전 신명주 전 대한사격연맹 회장과 딱 한 차례 만났다”면서 “대부분 사격연맹 관계자들은 채용 이후 파리로 떠날 때 처음 마주쳤다”며 “사무처장이 됐지만 지금은 급여도 받지 못하고 있는 처지”라며 채용 비리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