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 가는 한국의 미 알리기 <59>’
▲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1960년대까지만 해도 5월5일 단오 날 주악 떡을 많이 먹었다. 작가 한말숙 선생이 1972년 경향신문에 썼던 ‘단오와 여인’이라는 칼럼(6월15일자)을 통해서 ‘주악이 있는 풍경’을 떠올려 보자.
음력 5월5일 단오는 재래명절 중의 하나이나, 요즈음 도시에서는 전혀 그 풍습이 없어진 것 같다. 단오차례(端午茶禮)를 올린다거나, 창포와 쑥을 지붕처마에 꽂는다거나, 창포에 머리 감고 그네를 뛰는 여인의 모습, 주악 떡과 수리치 절편을 만들어 먹는 일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여인들이 머리 감고, 그네 뛰고, 떡 해먹고, 씨름하고, 부채를 만들고, 시를 쓰는 풍습은 결국은 앞으로 닥쳐오는 여름에 대비하는 마음을 가다듬으려는 배려가 있었던 것 같다.
떡을 해먹는 데에도 어떤 정신적 각오 혹은 여유로움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주악은 입맛을 돋우는 여름철 시식으로도 인기를 끌었다. 1970년대 신문에는 칠월 삼복에 먹는 음식으로 주악 만드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주악은 더위를 다스려온 지혜 가운데 하나였다.
고운 찹쌀가루를 끓는 물로 반죽하여 꿀 팥소, 깨에 꿀과 계피가루를 섞은 것, 대추 찐 것에 꿀과 계피가루 섞은 것 등을 소로 넣어 송편처럼 빚어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지져 꿀을 바른다.
▲ 개성 주악 ‘우메기’ |
주악은 고급 떡이었다. 조선 후기에 생활백과를 체계적으로 서술한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정조지(鼎俎志)’에 “주악은 병품(餠品)의 상두(上頭)”라고 나와 있다. 당시에는 가장 귀중히 여기는 떡이었으며 손님 대접과 제사 때 올리는 떡 가운데 으뜸이었다.
주악을 만들 때 속에 넣는 재료로는 대체로 볶은 팥고물, 볶은 깨에 꿀과 계핏가루를 섞은 것, 삶은 밤을 으깨어 꿀·계핏가루를 섞은 것, 대추를 쪄서 바닥의 구멍이 굵은 체에 내려 꿀·계핏가루를 섞은 것 등을 쓴다.
주악은 찹쌀과 어떤 재료를 반죽하느냐에 따라, 혹은 속에 넣는 재료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붙여졌다. 치자주악은 반죽할 때 치자나무 열매로 내린 치자 물을 섞어 만들었다. 대추주악은 대추를 곱게 다져 찹쌀가루에 섞어 만들었다. 하지만 밤주악은 밤을 찹쌀과 섞어 반죽한 게 아니고 속에 넣는 재료로 썼다. 즉 밤주악은 밤 가루를 체에 곱게 쳐서 흰 꿀(백청)을 섞고 잣가루·계핏가루·생강가루를 섞어 꿀에 버무린 것을 속에 넣고 작은 만두처럼 만들었다. 이밖에도 후추주악·계피주악·은행주악 등이 있다.
조선 후기 왕·왕비·왕대비가 참석하는, 소규모 잔치를 기록한 <진찬의궤(進饌儀軌)>에는 대추주악·감태주악·후추주악·계피주악·치잣황주악 등의 다양한 주악이 나타난다.
주악을 찹쌀가루로만 만들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성호 이익(李瀷)이 쓴 <성호사설>에는 주악에 대한 기록이 이렇게 나온다. “우리의 풍속에 밀가루를 기름에 지져서 나뭇잎처럼 하고 여기에 고기·채소 등을 싸서 양각이 나게 만든다.” 밀가루로 전병을 부쳐 속에 재료를 넣고 반으로 접어 싸서 두 귀가 나게 만들어 먹었던 것이다. 개성 지역에서 널리 만들어 먹었던 개성주악은 찹쌀가루와 밀가루를 막걸리로 되직하게 반죽하여 빚어서 기름에 튀겨냈다. 우메기라고도 불린다.
주악은 떡을 높이 괸 위에 웃기(웃기떡)로 자주 사용했다. 예컨대 유명인의 무덤 앞에서 지내는 제사 때 예법에 따른 상차림을 보자. 시루떡 본편을 한 자 반(약 45㎝)을 괴고, 그 위에 쑥떡을 얹고, 웃기로는 송기떡 쑥경단 잡과편전(곶감, 대추, 밤, 잣, 호두, 청매당, 귤병, 용안육, 건포도, 민강 가운데에 몇 가지를 섞어 만든 떡), 그리고 주악을 두 단쯤 얹었다. 하지만 반드시 웃기로만 사용했던 것은 아니다. 따로 주악 한가지만을 높이 괴어 담기도 했다.
주악은 사계절에 먹을 수 있고, 영양 측면에서나 미적 감각에서 세계에 내놓을 만한 우리의 떡이다. 사라진다고 한탄만 할 일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해 세계와 경쟁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