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인프라에다 트럼프 당선인 입장 변수…상용차 시장 위주로 공략해야 한다는 분석도
현대차는 지난 10월 31일 현대 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Clearly Committed: 올곧은 신념’ 행사를 열고 수소차 콘셉트카 이니시움을 최초로 공개했다. 이니시움은 △수소탱크 저장 용량 증대 △에어로다이나믹 휠 적용 △구름저항이 적은 타이어 탑재 등을 통해 650km 이상의 주행가능거리를 확보했다. 또 연료전지시스템과 배터리 성능 향상으로 최대 150kW(킬로와트)의 모터 출력을 구현해 도심 및 고속도로에서 보다 향상된 주행 성능을 제공한다고 현대차는 설명했다. 이니시움은 내년 상반기 신형 넥쏘로 출시될 예정이다.
신차 출시로 분위기를 띄우고 있지만 수소차 시장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수소차 판매량은 지난해 1~6월 8524대에서 올해 1~6월 5621대로 34.06% 줄었다. 같은 기간 현대차의 수소차 판매량은 3198대에서 1836대로 42.59% 감소했다. 현대차가 현재 생산하는 수소차는 넥쏘, 일렉시티, 엑시언트, 유니버스 등이다. 이 중 승용차는 넥쏘뿐이고, 나머지는 버스나 트럭 등 상용차다.
SNE리서치는 “수소차 시장 점유율 선두였던 국내 시장에서 저조한 판매량이 이어지고 있어 전체 시장 규모 또한 축소됐다”며 “이는 변동폭이 큰 수소 비용과 충전 비용 상승, 인프라 부족 등 소비자의 편의성을 제고할 수 있는 수단이 부족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뽑힌다”고 분석했다. SNE리서치는 이어 “전기차 시장보다 인프라, 경제성, 정책 등이 부족한 수소차 시장의 확대가 언제까지 지연될 것인지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수소차는 전기차에 비해 충전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수소차 충전소는 총 193곳이다. 제주특별자치도에는 충전소가 한 곳도 없다. 반면 전국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는 현재 약 38만 대에 달한다. 현대차는 지난 11월 1일 제주시 구좌읍에서 이동형 수소충전소 준공식을 개최하는 등 인프라 확장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수소차 충전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확장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수소차 충전소 건설비용은 25억~30억 원이고, 유지비용도 연간 2억 원에 달한다. 수소차 충전을 위해서는 전문 인력이 필요해 그만큼 유지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반면 전기차 충전소 건설비용은 5000만~1억 원 수준이고, 전기차는 ‘셀프 충전’이 가능해 유지비용도 상대적으로 낮다.
이준호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가 수소에 대한 미래 비전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소차 관련 데이터로만 보면 긍정적인 해석이 어렵다”며 “수소 인프라 확충 및 생산을 위한 제반비용을 고려하면 승용 기준 전기차가 수소차 대비 우위를 점하는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수소차 충전소 660곳을 구축할 계획이다. 하지만 해외 시장에서도 수소차가 외면 받는 것은 마찬가지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미국 수소차 판매량은 지난해 상반기 1825대에서 올해 상반기 322대로 82.36% 줄었다. 세계적으로 수소차를 생산하는 완성차 업체는 현대차, 일본 토요타, 일본 혼다 등 세 곳뿐이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 2월 “자동차 관련 투자가 홍수 같은 상황에서 수소는 물방울에 불과한 정도”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수소차를 상용차 시장 위주로 공략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수소연료전지 무게는 약 200kg인 반면 전기차 배터리팩의 무게는 400~500kg다. 수소연료전지의 에너지밀도도 전기차 배터리보다 높다. 수소차가 효율성면에서는 전기차보다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상용차는 차고지에만 충전소를 설치하면 되지만 승용차의 경우에는 수소의 생산, 이동, 저장 등 해결 과제가 너무 많다”며 “미국이나 유럽이 수소차에 덜 적극적인 것도 돈이 안 되는 비즈니스 모델이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세계 최대 시장 중 하나인 미국 시장을 공략하는 데에도 변수가 생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10월 15일(현지시각) 애틀랜타 유세에서 “우리는 수소차를 가지지 않을 것”이라며 “수소차는 문제가 있는데 폭발하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정책적으로 수소차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면 글로벌 수소차 시장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김필수 교수는 “수소차가 현재 시장성이 없기 때문에 트럼프 당선인도 수소차에 대해 큰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높은 가격도 넘어야 할 벽이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수소차 판매량 감소는 단순히 업황만이 이유가 아니고, 차량 가격, 인프라 부족, 안정성 우려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수소차는 보조금이 나오지만 그럼에도 가격이 높고, 전기차에 비해 유지비도 비싸다”고 지적했다.
현재 수소차 충전 가격은 1kg당 1만 원 수준이다. 1만 원이 넘는 충전소도 적지 않다. 넥쏘의 연비는 96.2km/kg다. 전기차인 아이오닉5의 연비는 4.4~5.2km/kWh다. 1kWh 당 충전 가격은 통상 200~400원 수준이다. 1만 원을 충전한다고 가정했을 때 넥쏘는 96.2km, 아이오닉5는 150km가량의 주행이 가능한 셈이다. 넥쏘가 아이오닉5보다 체급이 크다는 점을 감안해도 무시할 수 없는 차이다.
이러한 부정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현대차는 수소차 개발과 확산에 적극적이다. 현대차는 일본 토요타와 독일 BMW 등과 수소차 관련 협력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와 토요타는 지난 10월 27일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현대 N x 토요타 가주 레이싱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이날 행사에서 “수소모빌리티뿐만 아니라 운송 등 모든 면에서 (토요타와의 협력)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밝혔다.
현대차의 행보는 수소차 시장의 본격적인 개화에 앞서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당장은 수소차가 큰 수익을 내지 못하지만 향후 수소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때 현대차가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진투자증권은 2030년 글로벌 수소차 판매량이 17만 4000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 토요타가 수소차 시장을 선도했지만 현재 글로벌 완성차 업체 다수가 수소차 개발 로드맵을 가지고 연구개발 중”이라고 설명했다.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자동차업계 다른 관계자는 “수소차가 미래차인 것은 맞지만 현재는 전기차에 집중하는 시대고, 수소차는 그 다음 시대”라며 “현재는 일종의 테스트베드로 미래 시장을 선점한다는 정도지 수소차 자체가 특별히 어떻다고 평가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수소차의 향후 전망이나 미국 시장 변수와 관련해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