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초호황’ 시총 6조 원대로 성장…물적분할 대신 인적분할, 지분율 37.22% 그쳐
HD현대일렉트릭의 주가는 지난해 4월 3만 원대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20만 원에 육박하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의 폭발적인 주가 상승은 실적 개선 덕분이다. HD현대일렉트릭은 2021년 매출 1조 8060억 원, 영업이익 97억 원에 그쳤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매출 2조 7028억 원, 영업이익 3152억 원으로 실적이 수직 상승했다. 증권가에서는 HD현대일렉트릭의 올해 실적을 매출 3조 3457억 원, 영업이익 4331억 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호황기 맞은 전력기기 시장
HD현대일렉트릭의 전신은 1978년 설립된 현대중전기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미쓰비시중공업을 방문하고 난 후 현대중전기를 설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현대중전기는 1980년대 중화학업종 구조조정 과정에서 전력기기 판매업 중단 결정이 내려진다. 당시 정부가 중복·과잉투자를 막기 위해 대기업 사업영역을 조정해 변압기는 효성, 차단기는 금성계전(LS산전)으로 단일화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현대중전기는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해외시장 개척을 노렸다. HD현대일렉트릭으로서는 해외 생산시설 및 영업망 구축 효과로 호황 국면에서 더 많은 이득을 벌어들이게 됐다.
전력기기 시장은 2022년부터 호황기를 맞았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도입으로 전기 사용량이 늘었고, 신재생 에너지 정책으로 인해 들쑥날쑥한 전압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초고압 변압기 수요가 대폭 증가했다. 여기에 인터넷 플랫폼 및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과 맞물려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설립이 급증했다.
지역별로도 긍정적인 소식이 많았다. 중동 지역에서는 석유화학 등 플랜트 증설, 네옴시티 등 신도시 건설이 추진됐다. 북미 지역은 제조기지 리쇼어링(생산시설의 국내 복귀)에다 노후 설비 교체 이슈가 겹쳤다. 이런 가운데 초고압 변압기, 초고압 차단기 등은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구매자들은 2028년 공급 물량까지 논의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HD현대일렉트릭의 목표주가를 23만 8000원으로 설정했다. 성종화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초고압 변압기 시장은 최소 3~4년은 호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고, 1~2년 뒤부터 배전반시장 호황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HD현대일렉트릭은 진작부터 매출처 다변화를 이뤄냈다. HD현대일렉트릭의 국내 매출 비중은 2021년 53.7%에서 2023년 38.7%로 15%포인트(p) 줄었다. HD현대일렉트릭의 늘어난 매출은 대부분 북미와 중동 지역에 집중됐다.
NICE신용평가는 3월 28일 HD현대일렉트릭에 대한 신용등급을 ‘A-/긍정적’에서 ‘A/안정적’으로 상향 조정했다. 박현준 NICE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다변화된 매출처를 바탕으로 성장세가 중단기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며 “운전자금 부담은 당분간 계속되겠으나 실적 개선을 바탕으로 차입금 부담이 점진적으로 완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때 물적분할 선택했다면…
다만 HD현대그룹 입장에서 안타까운 것은 지주회사 HD현대의 HD현대일렉트릭 지분율이 37.22%에 그친다는 점이다. HD현대그룹이 2017년 기업 분할 과정에서 HD현대일렉트릭을 물적분할해 지분 100%를 가진 자회사로 만들었다면 지배구조 관련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됐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나오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당시 회사를 현대중공업, 현대일렉트릭, 현대건설기계, 현대로보틱스(현 HD현대) 등 4개 회사로 인적분할했다. 인적분할이란 분할 전 주주들에게 주식소유 비율대로 분할 후의 회사 주식을 배정하는 형태다. 게다가 HD현대일렉트릭은 분할 비율이 0.048%에 그쳤다. 현대중공업 본체의 기업가치가 100이라고 하면 HD현대일렉트릭은 4.8에 그쳤던 것이다.
HD현대일렉트릭의 시가총액은 2020년 2000억 원 안팎이었지만 현재는 6조 원대로 성장했다. HD현대그룹이 HD현대일렉트릭을 물적분할해 100% 자회사로 만들었다가 HD현대일렉트릭이 재상장했다면 HD현대의 지분 가치는 2조~3조 원이 늘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현대중공업처럼 재분할하는 방안도 있었다. HD현대그룹은 분할된 현대중공업을 한국조선해양과 HD현대중공업으로 재분할한 후 HD현대중공업 기업공개(IPO·상장)를 진행해 목돈을 쥔 바 있다.
HD현대그룹의 4개사 분할 작업에 관여했던 한 관계자는 “당시 기업분할은 지주와 현대중공업을 나누는 과정이었고, 그 외 사업은 100% 자회사로 하나 인적분할을 하나 큰 의미가 없었다”며 “결과적으로 보면 그때 HD현대일렉트릭은 물적분할하는 것이 훨씬 유리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사실 한 단계 더 생각해 보자면 내부에 전력기기 사업을 잘 아는 누군가가 있어 성장성을 확신했다면, 아예 정기선 HD현대그룹 부회장한테 지분을 몰아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며 “CJ그룹 후계자도 CJ올리브영 지분이 있듯이, HD현대도 솔직히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아이디어였는데 시기를 놓쳤다”고 꼬집었다.
HD현대그룹 입장에서는 정기선 부회장의 지분 승계가 큰 과제다. 정 부회장은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경영 능력은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지분 상으로는 지배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정 부회장이 보유한 HD현대 지분은 5.26%에 불과하고, 계열사 지분은 수백 주 수준에 그친다. 아버지인 정몽준 아산재산 이사장의 HD현대 지분(26.60%)을 물려받는 것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방법이다. HD현대 관계자는 정기선 부회장의 지분 승계와 관련해 “현재로는 정해진 것이 없다”고 밝혔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