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러 파병’에 심기 불편 기류…시진핑 방한 및 주한 중국대사 급 격상 거론
11월 1일 중국 외교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일방적 무비자 정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일방적 무비자 정책 대상으로 선정된 국가 여권 소지자는 중국에서 15일 동안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다. 한국을 비롯해 슬로바키아,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안도라, 모나코, 리히텐슈타인 등 9개국이 일방적 무비자 정책 대상국이다. 이 정책은 2025년 12월 31일까지 유효하다. 대한민국 국민은 11월 8일부터 무비자로 중국을 여행할 수 있다.
중국이 일방적 무비자 정책에 한국을 포함한 것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파격적인 조치다. 주한 중국대사 자리가 공석인 가운데, 외교 당국자 간엔 비자 면제와 관련한 논의가 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중국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한국을 단기간 비자 면제 대상국에 포함했다.
중국이 한국에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한 배경으론 복잡한 국제정세가 거론된다. 한 전직 외교 당국자는 “한미일 협력이 강화하는 상황에서 북한과 러시아가 밀착하고 있다. 중국 입장에선 선택의 시간이 도래하고 있다”면서 “중국이 그동안 북한을 ‘한반도 지렛대’로 삼아왔는데, 이제는 그 중심축을 한국으로 바꿀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에 대해 중국 내부에선 불편한 기류가 감지된다. 북한 역시 러시아와 밀착하면서 중국과 거리두기에 나서는 모습이이다. 북한 TV를 통해 방송되던 중국 콘텐츠들이 더 이상 방영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중국은 북한을 ‘병아리’로 비유했다. 중국은 ‘병아리를 품는 암탉’ 역할을 자처했다. 북한에 돌발상황이 발생할 경우, 중국이 적극 개입해 북한 대동강 이북 지역을 장악 및 안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작전계획도 존재한다. 이른 바 ‘모계(母鷄) 계획’이다. 암탉이 병아리를 품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명칭이다.
중국 한 소식통은 “북한을 ‘병아리’로 생각하며 언제든 품을 생각을 하던 ‘암탉’ 중국이 최근 각종 국제정세에서 나타나는 북한 행보에 분노감을 표출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그 일환으로 북한이 적대국으로 명시하고 있는 한국과 우호 체계를 정립하는 데 본격적으로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고 했다.
소식통은 “중국은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한반도 문제 해결사를 자처해왔지만, 6자회담에서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북핵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면서 “여기다 한국 정부가 최근 들어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면서 중국이 갑작스러우면서도 파격적인 양상으로 한국 쪽에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중국이 북러와 관계에 있어 밀착을 하든 거리를 두든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건 ‘거리두기’ 쪽으로 중국이 입장을 정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바라봤다.
또 다른 중국 소식통은 “중국 경제가 바깥에 보이는 것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면서 “21세기 들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던 중국 경제가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저성장 국면에 들어섰고, 제조업 부동산 금융 등에서 연쇄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됨에 따라 미중 무역전쟁이 재발발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면서 “트럼프 2기가 중국 경제에 새로운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는 상황에서 중국은 위기대응을 위해서라도 우호적인 관계를 지닌 국가를 만들 필요성이 생겼다”고 했다.
이 소식통은 “경제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한반도 주요 파트너로 북한보다 한국을 선택하는 것이 중국 입장에서 득이 되는 상황”이라면서 “일방적 무비자 정책으로 갑작스럽게 선물 보따리를 푼 중국이 시진핑 주석 방한을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현재 주한 중국대사를 공석으로 두고 있다. 국내에서 ‘사고뭉치’로 불렸던 싱하이밍 전 주한 중국대사를 갑작스럽게 소환한 뒤 3개월 동안 신임 주한 중국대사를 임명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중국이 주한 중국대사 ‘급’을 격상시키면서 한중 우호 무드를 심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의 전직 외교 당국자는 “그동안 한국에 파견되는 중국대사는 통상 외교부 국장급이었다”면서 “최근 흘러가는 상황을 살펴보면 중국이 한국에 대한 외교적 비중을 높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바라봤다.
당국자는 “싱하이밍 전 주한 중국대사 임기가 원래 12월까지로 예정돼 있었는데, 이 기간 이후에 본격적인 주한 중국대사 인사가 단행될 것으로 본다”면서 “중국 내부에서도 강성 성향이었던 싱 전 대사가 한국에서 말 한마디만 하면 트러블메이커로 부각되는 상황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국제정세를 비롯해 한국 정부의 대중국 스탠스가 바뀌면서 ‘강성 중국대사’에 대한 회의론이 부각됐고, 그 결과는 싱 전 대사의 갑작스런 본국소환으로 이뤄졌다”면서 “중국 당국이 다음 주한 중국대사로 한중 우호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인물로 고를 공산이 큰데, 그 과정에서 기존 ‘외교부 국장급’이던 주한 중국대사의 격을 ‘차관보급’이나 ‘차관급’으로 높일 수 있다”고 했다.
대북 소식통은 “남북한에 파견된 주한 중국대사의 급은 북한이 상당히 신경쓰는 부분이 있다”면서 “그동안은 주북 중국대사 급이 주한 중국대사보다 높았고, 이런 부분은 북한의 자존심 중 하나”라고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주북 중국대사로는 ‘공산당 중앙당 부부장급’이 파견됐다. 2015년 취임한 리진쥔 전 주북 중국대사와 2021년 취임한 왕야쥔 주북 중국대사 모두 중국 공산당 중앙대외연락부 부부장을 지내다 북한으로 건너갔다. 공산당이 국정 운영 주축인 중국 입장에서 공산당 부부장급은 차관급에 해당한다.
비슷한 시기 주한 중국대사로는 국장급 인사가 주로 파견됐다. 2014년 주한 중국대사로 임명된 추궈홍 전 중국대사는 중국 외교부 섭외안전사무사 사장을 지내다 한국으로 파견됐다. 생소한 이름을 가진 이 직책은 대외안전사무국장 격 보직으로 국장급이다.
2020년 취임한 싱하이밍 전 대사는 주로 해외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2008년 주한 중국대사관 참사관으로 임명됐고, 몽골에서 대사를 지낸 뒤 주한 중국대사로 파견됐다.
2024년 들어 북중관계가 악화하는 흐름과 더불어 왕야쥔 주북 중국대사 활동 반경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북한과 외교관계를 조율하기보다 북한 현지 화교들과 교류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정권수립일인 9·9절엔 왕 대사가 휴가를 쓰면서 북중관계 미묘한 기류가 부각되기도 했다.
앞서의 중국 소식통은 “북한이 ‘삐딱선’을 타는 강도가 커질수록 한국에 우호적인 중국대사가 임명될 가능성이 높은데, 북한이 ‘삐딱선’을 타는 수위가 최고조로 접어들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소식통은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에 더 집중할 것이라는 시그널을 여러 요소에서 주고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대목이 ‘일방적 무비자 정책’에 한국을 전격 포함시킨 것”이라면서 “이는 상당히 유의미한 시그널”이라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