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진 따돌리고 창원지검 향해…“경솔한 언행 죄송” 여론조작 등 혐의는 부인
명 씨의 페이스북 메시지 분위기도 변했다. 11월 7일 명 씨는 “저의 경솔한 언행 때문에 공개된 녹취 내용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으신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라며 “녹취를 폭로한 (강혜경 씨는) 의붓아버지 병원비 명목으로 2000만 원을 요구했고, 운전기사 김 씨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요구하며 협박했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강혜경 씨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11월 8일 검찰 조사 당일 오전 8시 15분에는 새로운 게시물이 올라왔다. 명 씨는 어느 절에서 ‘학업성취 100일 관음기도’를 하고 있는 사진을 올렸다. 명 씨는 “못난 아버지 용서해 줘. 사랑해”라고 덧붙였다. 어린 딸에게 전하는 말로 풀이된다.
이날 명 씨가 사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에는 명 씨를 기다리고 있는 소수의 기자들이 있었다. 명 씨 검은색 차량 맞은편에는 취재차량도 있었다. 그러나 명 씨가 나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가끔 사진 기자들이 와서 명 씨의 검은색 차량을 촬영하는 정도였다.
갑자기 일부 기자들이 웅성거리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명 씨가 다른 출구로 빠져나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명 씨 차량은 지하 2층에 주차돼 있었다. 명 씨는 엘리베이터 지하 1층과 2층 버튼을 모두 눌렀던 것으로 전해졌다. 기자들이 지하 2층에서 대기하는 사이 명 씨는 지하 1층에서 내린 것으로 보인다. 지하 1층에 있던 다른 차를 타고 빠져나간 것이다.
오전 9시 40분경 명 씨가 탄 차량이 창원지검에 도착했다. 검은색 차량에서 명 씨와 변호인인 김소연 변호사가 내렸다. 명 씨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명 씨를 찍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명 씨 옆에는 “창원대학교 명태균 선배님 부끄럽습니다! 윤·건희 국정농단 규탄한다”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든 창원대학교 학생들이 서 있었다. 11월 4일 창원대에 대자보를 붙인 학생들이었다. 이 대자보에는 “창원대를 졸업하신 명태균 선배님. 선배님은 창원대의 수치입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명 씨는 2011년 창원대에 입학해 2015년 졸업했다. 1000만 원 이상 후원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명예의 전당 ‘창조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창원대 조선해양공학과에 다니고 있는 이주화 씨는 일요신문에 “창원대학교 학생으로서 선배라는 분이 국정농단으로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는 모습을 보니 부끄럽다는 말밖에는 안 나오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 씨는 “(명 씨) 혼자서 한 게 아니라 김건희 여사와 윤석열 대통령과 직접적으로 소통했기 때문에 현 정부가 (명 씨의) 국정농단에 연루돼 있고,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 생각한다. 너무 화나고 부끄럽다”고 토로했다. 이 씨는 피켓 디자인과 문구는 전날 만들었다고 전했다.
명 씨가 기자들 앞에 서자 이 씨와 동행한 다른 학우가 사과하라는 취지의 구호를 외쳤다. 그러자 김소연 변호사가 “조용히 해. 시끄러. 반말하지 마!”라고 날카롭게 맞받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친 야권 성향 유튜버가 반발하는 목소리를 냈고, 짧은 언쟁이 발생했다. 명 씨가 기자의 질문에 답변을 시작하자 언쟁은 잦아들었다.
명 씨는 “국민 여러분께 저의 경솔한 언행으로 민망하고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질문에 대해서는 검찰 조사에서 소명하겠다고 했다. 특정 후보에 유리하게 여론조사를 조작하거나 공천을 받아주는 대가로 금전적 이득을 취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는 “단 돈 1원도 받아본 적 없다”고 부인했다. 명 씨는 5분가량 입장을 밝힌 뒤 검찰청사로 들어갔다.
김 변호사도 기자들의 질문에 같은 취지의 답변을 되풀이했다. 명 씨는 2022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창원의창 선거구에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받아내는 대가로 김 의원 당선 뒤인 2022년 8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세비 9000만여 원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를 받고 있다. 2022년 지방선거 때 국민의힘 소속 군수·시의원 예비 후보자 2명으로부터 2억 4000만 원을 받았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2023년 발표된 창원국가산단 선정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김 변호사는 명 씨가 한 일련의 작업은 ‘건강한 지역 주권자로서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에 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돈 관리 책임은 모두 강혜경 씨에게 있다고 했다. 김 전 의원을 2022년 창원의창 재보궐 선거 공천에 추천한 것은 일반 국민도 할 수 있는 일이고, 윤 대통령은 일반 국민이 한 말을 경청하고 귀담아들어 줬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미래한국연구소의 여론조작 관련 의혹의 책임은 김태열 소장에게 돌렸다.
김 전 의원을 윽박지른 내용이 나온 녹취록에 대해서는 국회의원을 압박하기 위해 ‘더 센 권력’을 이용했을 뿐이라는 취지의 답변을 내놨다. 그러면서도 윤 대통령 부부와 몇 차례 연락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힐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 변호사가 검찰청사로 들어가자, 붉은색 옷을 입은 한 국민의힘 지지자는 자신의 키보다 긴 태극기를 들고 연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난하는 발언을 시작했다. 그러자 이 대표를 지지하는 유튜버도 소리를 치며 맞섰다. 고함을 치는 두 사람을 말리는 법원 직원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정치브로커 혹은 풍수지리사로 불리는 명 씨의 첫 검찰 출석 현장의 풍경이었다.
세간의 이목이 쏠린 것에 비해 이웃 주민들은 명 씨에게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분위기였다. 한 주민은 “기자들이 오가는 것을 보기는 했다. 명태균 이름은 뉴스로 봐서 알고 있는데, 그렇게 관심은 없다”며 “김건희 명품백 몰카부터 명태균 녹취까지 요즘 너무 많은 일이 터져서 햇갈리기만 한다”고 말했다.
한 택시기사도 “몇 주 전에는 명태균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잘 안 하는 것 같다”며 “주변 사람들을 봐도 그다지 관심을 두지는 않는 것 같다”고 전했다.
창원=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