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처리하겠다” 문자 보내고 생활 반응 연기도…7일 신상정보 공개 결정됐지만 이의 신청으로 유예
#시신에 돌 넣고, 가짜 문자 보내고…
10월 25일 오후 3시쯤 과천 국군사이버작전사령부 소속 남성 중령(진) A 씨(38)는 같은 부대 소속 임기제 여성 군무원 B 씨(33)와 말다툼을 벌이다 부대 내 주차장 자신의 차량 안에서 목 졸라 살해했다. 시신에 옷가지를 덮어놓고 근무 복귀한 A 씨는 퇴근한 뒤 유유히 부대를 빠져나왔다. 그는 부대 인근 철거 예정 건물에서 미리 준비해온 도구로 시신을 훼손했다. 경찰의 압수수색이 이뤄졌을 때 해당 건물 옹벽과 바닥은 이미 철거된 상태였다.
SBS 보도에 따르면 A 씨는 시신 훼손 장소를 물색하다가 부대 인근 공사장에서 “주차가 가능하냐”고 태연하게 물었다고 한다. A 씨의 부대 인근에서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추진하는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지구 조성을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해당 공사 현장 한 관계자는 “사건 관련 얘기가 언론에서 많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경찰에서도 찾아왔지만 말씀해 드릴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시신을 훼손한 A 씨는 자신이 10여 년 전 근무했던 강원도 화천군 소재의 부대 인근 북한강변에 시신이 나눠 담긴 8개의 봉투를 유기했다. 이때 시신이 빨리 떠오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돌을 넣어서 밀봉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A 씨는 “화천군까지 이동하는 길을 국도로만 다녔으며, 중간에 시신 훼손에 사용된 범행 도구를 버렸다”고 진술했다. 또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차량 내부를 세차한 흔적도 발견됐다.
10월 27일 A 씨는 B 씨의 휴대전화로 부대 측에 “휴가 처리해달라”고 통보했다. 다음 날 출근해야 하는 B 씨의 행방이 의심받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A 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B 씨의 휴대전화를 켰다 껐다 하면서 생활반응이 있는 것처럼 꾸며냈으며, B 씨의 가족과 친구에게 '어디 가서 머리를 좀 식히고 오겠다'는 취지의 문자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A 씨는 B 씨 휴대전화를 서울 강남구 일원역 일대 한 주차장 배수로에 투기했다. 발견 당시 B 씨의 휴대전화는 디지털 포렌식을 통한 복구가 어려울 정도로 파손된 상태였다.
10월 28일 서울 송파구의 한 부대로 전근 발령을 받고 첫 출근한 A 씨는 평범하게 근무를 이어갔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11월 2일 “북한강에 시신이 떠올랐다”는 화천군 인근 주민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은 즉시 현장으로 출동해 시신과 피의자의 신원을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먼저 시신 등에 남겨진 지문을 감식한 뒤 DNA를 감정하고, B 씨의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조회해 A 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A 씨는 훼손한 시신을 나눠 담아 돌을 집어넣는 등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려고 시도했지만, 무거운 돌 탓에 오히려 시신이 떠내려가지 않아 경찰의 수색을 도왔다. 또 A 씨는 시신이 부패하면서 발생하는 가스와 틈으로 들어온 물이 시신에 화학반응을 일으켜 삼투압 현상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A 씨는 11월 3일 서울 강남구 일원역 지하차도에서 살인, 사체손괴, 사체유기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중요한 건 두 사람 사이 관계"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을 인정했지만 우발적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A 씨는 “죽일 생각은 없었다. 말다툼 중 화가 나 목을 눌렀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사망한 상태였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결과 A 씨와 B 씨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등 가깝게 지내온 사이였으나 최근 들어 갈등이 불거져 범행으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A 씨는 10월 28일 전근이 예정돼 있었고, 임기제 공무원이었던 B 씨는 10월 31일부로 계약이 만료되는 상황이었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11월 5일 YTN라디오에 출연해 “자신이 근무하는 부대의 주차장, 다른 사람도 볼 수 있는 곳에서 대단히 신속하고 빠르게 살인한 뒤 빠르게 무엇인가 결정했다는 것은 이 사람의 심리 상태가 대단히 위험한 상태라는 걸 얘기할 수 있다”면서 “사람이 아무리 살인 기술자라 하더라도 사람 시선이 있는 곳에서는 쉽게 살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애초에 계획하고 (범행)하지 않았을까 의심이 된다”고 덧붙였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A 씨와 B 씨의 관계”라면서 “A 씨는 살해 이후에 치밀한 모습을 보이지만 살해 과정 자체가 계획됐다고 보려면 이전에 둘 사이에 상당한 원한 관계 등이 존재해야 한다. A 씨는 평일 오후 3시 자신의 근무지에서 B 씨를 살해했다. 계획된 살인이었다면 조금 더 눈에 띄지 않는 시간과 장소를 택했을 것이다. 업무상 관계만 있었던 건지 사적인 관계가 또 있었는지 먼저 밝혀져야 판단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11월 5일 춘천지법은 A 씨에 대해 살인, 사체손괴,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은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 사유를 밝혔다. 5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A 씨는 ‘혐의를 인정하느냐’ ‘피해자 유족에게 사과할 생각 없느냐’ 등 취재진 질문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강원경찰청 형사기동대는 11월 6일 A 씨와 함께 현장 검증에 나섰다. 이날 오전 살해 장소인 부대 내 주차장과 시신 훼손 장소였던 부대 인근 건물에서 A 씨는 각각 살인과 사체 훼손 과정을 재연하며 현장 검증을 했다. 이어 경찰은 A 씨와 이날 오후 4시쯤 북한강 하류 인근을 찾았다. A 씨는 다리 위에서 10여 분 동안 훼손된 시신이 담긴 봉투를 강 아래로 떨어뜨리는 사체 유기 범행 상황을 재연했다.
경찰은 A 씨의 구체적인 범행 동기를 밝히기 위해 프로파일러를 조사에 참여시켜 범죄 행동을 분석 중이다. 6일 강원경찰청은 A 씨의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방범용 CCTV 등을 살펴보고 통신조회도 했지만 현재까지 조력자나 A 씨 차량 동승자는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강원경찰청은 11월 7일 오후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A 씨의 이름, 나이, 사진 등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2010년 신상정보 공개 제도 도입 이후 군인 신분 피의자가 심의 대상이 된 첫 사례다. 하지만 A 씨는 신상정보 즉시 공개에 이의 신청을 해 경찰은 오는 12일까지 최소 5일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결정했다. A 씨가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고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등 법적으로 다툴 경우 법원의 판단에 따라 신상정보 공개가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