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서 ‘황우석 줄기세포’ 배양중?
▲ 황우석 박사 | ||
‘중국발 쇼크’로 증권시장이 폭락세를 연출하던 지난 3월 초, 에스켐이라는 한 코스닥 기업이 연일 ‘나홀로 상한가’를 기록하며 증권가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지난해 3분기까지만 해도 적자기업이었던 이 회사는 지난 2월 22일 제3자 배정방식으로 유상증자를 실시하면서 갑자기 급등세를 타기 시작했다.
에스켐의 유상증자에 참가한 인물은 수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박병수 씨. 그는 기존 대주주인 에스에프인베스트먼트로부터 이 회사 지분을 1주당 4680원에 총 85만 주를 인수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박 이사장은 에스켐 지분 11.72%를 보유, 2대 주주로 등극하게 됐다. 에스에프인베스트먼트는 지분을 자신들이 인수한 값보다 30% 정도 할인된 값에 박 이사장 쪽에 넘김으로써 박 이사장 측과 손잡고 에스켐을 바이오 회사로 함께 변모시킬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언뜻 보면 별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는 이 거래가 주목을 받은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바로 박 이사장이 줄기세포 파문의 장본인인 황우석 박사의 후원자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
증권가와 바이오 업계는 박 이사장의 에스켐 유상증자 참가가 사실상 황 박사의 연구자금 조달을 위한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줄기세포 파문 이후 황 박사는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연구활동을 계속해 왔다. 그는 서울대에서 파면된 후 한동안 박병수 이사장이 설립한 수암생명공학연구원에 둥지를 틀었다. 황 박사와는 고향(충남 부여) 선후배 사이로 알려진 박 이사장은 스마젠이라는 에이즈 신약개발 회사의 회장을 맡고 있었고, 황 박사 역시 스마젠의 지분 일부를 보유한 주주로 활동했다. 박 이사장이 설립한 수암재단은 총 재산이 25억 원 규모로 과학기술부로부터 허가까지 받아낸 이 재단 덕분에 황 박사는 한동안 서울 구로구 구로디지털단지에 150평 규모의 번듯한 연구실을 마련하고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황 박사의 구로동 연구실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가 이곳에서 재기를 노린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연구실의 위치가 노출돼 지지자는 물론 반대파들까지 방문객들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황 박사는 친인척이 소유한 경기도 용인 소재 모 골프장 내 건물로 연구소를 옮겼다. 일반 사무실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나 드나들 수 없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는데 적합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문제는 또 있었다. 첨단장비와 실험용 재료 등을 구입하는 데 들어가는 막대한 연구비를 조달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황 박사의 주변에는 대전고와 서울대 선후배 등 여전히 그를 지지하며 십시일반으로 힘을 보태는 지인들이 남아있었지만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감당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병수 이사장의 이번 유상증자 참가는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타개해 보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박 이사장이 활로를 여는 데는 김정실 에스에프인베스트먼트 회장도 한몫했다. 김정실 회장은 통신업체인 자일랜을 공동 창업해 지난 96년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뒤 프랑스의 통신장비업체 알카텔에 20억 달러에 매각,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귀국한 이후에는 소프트포럼, 더존비즈온 등 코스닥 상장사에 투자했으며 이들 중 소프트포럼은 에스에프인베스트먼트 최대주주로 김 회장 산하기업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김 회장은 박 이사장이 유상증자에 참가하기 불과 20여 일 전인 지난 2월 1일 에스켐을 전격 인수했다. 당시 에스에프인베스트먼트는 에스켐의 기존 대주주 지분 34.73%, 약 218만 주를 1주당 6855원씩에 사들였다.
양측은 화학제품이 주력이던 에스켐을 바이오업체로 변모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이 계획의 중심추 역할은 사실상 황우석 박사가 맡을 거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박 이사장 측이 스마젠 등 바이오 업체를 운영하긴 했으나 지금은 사실상 손을 뗀 분야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박 이사장은 지난 2005년 말 스마젠을 코스닥 상장업체인 큐로컴에 매각한 뒤 회사를 떠났다. 지금도 약 4%가량의 이 회사 지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고 있다. 사실상 박 이사장 측이 현재 보유한 바이오 관련 역량은 황 박사와 황 박사팀의 연구능력이 대부분인 셈이다.
이에 관해 에스에프인베스트먼트 측은 극도로 말을 아끼고는 있다. 에스에프 측 관계자는 “현 단계에서 황우석 박사의 거취에 대해 말할 입장은 아니다”라며 “분명한 것은 에스켐을 인수하고 박 이사장을 유상증자에 참여시킨 것은 바이오사업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에스켐과 에스에프인베스트먼트 관련 주식들은 연일 상한가 행진을 벌이며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유상증자 전날인 2월 21일 주가가 하루만에 6% 이상 떨어져 5200원이었던 에스켐은 이날 상한가로 돌아선 뒤 3월 8일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상한가 행진을 벌였다. 덕분에 에스켐의 주가는 이미 2만 원을 돌파했다.
김정실 회장이 소프트포럼 역시 2월 26일부터 3월 6일까지 연속 상한가를 치며 한 주당 60원에 불과하던 주가가 현재는 10배가 넘는 800원대 후반까지 뛰어올라 있다. 또 김 회장이 투자했던 회사인 위지트도 2월 28일과 3월 2일 이틀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위지트는 김상철 회장이 소프트포럼 회장을 맡기 전 대표를 맡았던 회사이기도 했다. 현재 서로 보유 중인 지분은 많지 않지만 도곡동에서 소프트포럼과 같은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이 건물에는 에스에프인베스트먼트도 입주해 있다.
이뿐 아니다. 에스켐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거나 심지어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주식들도 바이오 업체라는 이유만으로 초강세를 기록하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박병수 이사장이 주주로 남아 있는 큐로컴이 3월 2일 장중 한때 상한가를 기록하는가 하면, 메디포스트와 바이로메드, 엔케이바이오 등의 바이오 주식들이 급등했다가 하락하는 모습도 연출됐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증권전문가들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단지 황 전 교수의 측근인 박 이사장이나 김정실 회장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오른 주가는 언제든지 거품이 꺼질 수 있다는 얘기다.
김희성 한양증권 연구원은 “만에 하나 황 박사의 연구가 기업에 귀속된다고 하더라도 연구결과가 단시간 내에 상업화될 수 없기 때문에 투자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