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미래 아닌 현재 상황…온실가스 감축 ‘공시’ 방안 등 아직 논의 수준에 그쳐
지난 8월말, 헌법재판소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하고 있는'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을 내렸다. 탄소중립기본법 제7조 제1항은 파리협정과 같이 2050년까지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제8조 제1항을 보면 감축 목표와 그에 따른 정부 위임사항은 2030년까지만(2018년 대비 35% 이상)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번 헌법불합치 결정의 핵심 요지는 탄소중립기본법이 2030년 이후부터 2050년 이전까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지 않았으므로, 국민의 환경권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번 결정은 기후위기를 헌법상 기본권 문제로 인식하고, 나아가 현행 탄소중립기본법이 헌법에 어긋남까지 지적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결정이라고 할 만하다.
헌법불합치 결정이나 탄소중립기본법이 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하기는 어렵다. 기본권을 보호할 의무는 기업과 같은 사적 주체가 아닌 국가에게 있고, 탄소중립기본법 역시 정부의 탄소중립 의무와 그 이행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진심으로 헌법과 법률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을 시도한다면, 배출량이 가장 많은 영역인 산업활동과 기업이 당연히 제도적 접근의 주요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그에 부합하는 대응이 없었을 뿐이다.
기업 차원에서 그나마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영역은 '공시'다. 특히 기업으로 하여금 온실가스 감축 목표나 탄소중립 이행 계획 등이 담긴 기후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이미 많은 기업이 기후정보를 이른바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공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대체로 기업이 자율적으로 기후정보를 작성하고 공개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어느 정도 강제성을 부여하고, 체계적인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는 공시 기준 도입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나아가 실제로는 이행하지 않았거나 이행할 계획이 없는 기후정보를 공시하는 '그린워싱(green washing)'을 통제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여러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 논의 중에서는 단순히 온실가스 배출량이나 감축 목표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 해당 기업의 주요 상품이나 서비스가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할 수 있는지 △ 각종 투자가 기후변화를 고려해 이루어지고 있는지 △ 기업이 기후변화 관련 제도적 환경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로비활동을 얼마나 어떻게 벌이고 있는지 등을 기후정보에 담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눈여겨볼 만하다. 특정 기업이 자신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활동이 갖는 간접적인 영향력이나 파급효과가 오히려 사회 전체의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서는 훨씬 중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기차는 많은 우려를 낳고 있기도 하지만, 전반적인 온실가스 감축 기여도를 고려할 때 여전히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유력한 대안이다. 반면, 내연기관차는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아무리 감축한다고 하더라도 감축 기여도 측면에서 후한 점수를 주기가 어렵다.
한편, 금융회사는 제조업에 비해 직접적인 온실가스 배출량은 크게 적지만, 기후정보를 투자의사결정에 얼마나 어떻게 반영하느냐에 따라 오히려 더 큰 파급력을 가질 수도 있다. 석유회사나 전력회사는 그 자체로도 상당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그러나 이들은 에너지 전환의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이자 핵심 주체인 만큼, 정책결정자를 상대로 하는 로비활동을 어떠한 방식으로 벌이고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로비활동에 관한 정보도 공개돼야만 이들 기업의 기후정보가 유의미할 수 있다.
아쉽게도 이러한 내용은 대체로 논의 수준에 그치고 있다. 기후정보의 적극적인 작성 및 공개를 통해 실제로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킨 사례도 흔치 않다. 국내외 유력한 기업들이 내놓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만 보면, 온실가스 감축이 이른 시일 내에 충분히 이루어질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 온실가스 배출 추이와 구체적인 이행 계획을 보면, 과연 공시대로 기후변화 대응이나 온실가스 감축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그린워싱이 만연한 상태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이미 심각하게 진행 중인 현재의 위기이지, 결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업에도 경쟁력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좌우하는 핵심요인이다. 우리 기업은 기후변화 대응에 과연 얼마나 진심일까. 앞으로 그 답은 기후정보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노종화는 회계사이자 변호사다. 현재(2017년 5월~) 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 3월부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상근)으로도 재직 중이다.
노종화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