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와인 무단 시음에 SNS 인증까지…업주 ‘와인 모임 중단’ 결정
이번 사건은 와인 모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고객들이 테이스팅을 위해 가져온 고가의 빈티지 와인들을 서빙해달라며 레스토랑 측에 맡겨뒀다. 고객들 와인을 시음하는 과정에서, 업주가 고객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와인을 몇 차례에 걸쳐 시음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 와인은 2013년산 샤블리 프리미에 크뤼(Chablis Premier Cru) 하브노 등으로, 한 병당 100만 원이 넘는 고가의 빈티지 와인들이었다. 12월 2일 문제를 블로그를 통해 제기한 A 변호사는 “업장에서 와인을 테이스팅 하는 이유는 보관 상태가 안 좋을 경우 다른 와인으로 바꿔주려고 미리 한 모금 맛을 보는 거다. 콜키지로 가져온 와인을 미리 마셔보는 이유가 뭐냐. 상태가 안 좋다고 바꿔줄 것도 아니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A 변호사는 “한 모금을 시음한 다면 적어도 양해를 구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가져온 와인을 소믈리에가 마시라고 허락한 적이 없다. 내 와인을 소믈리에가 나눠 마시라고 허락한 적은 더더욱 없다. 이 경우 절도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A 변호사는 “남의 업장와서 돈 안내고 업장 음식 먹는 건 죄고, 업장 오너가 손님 음식 먹는 건 죄가 아닌가. 나는 서빙해달라고 와인을 맡겼지, 내 와인을 맛보라고 맡긴 적 없다”고 지적했다.
A 변호사는 “백번 양보해서 첫 잔을 마실 때 매우 당황했지만 눈 감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두 번째 잔, 나아가 직원이 마실 와인까지 따라 마시는 걸 보고도 이걸 테이스팅이라고 할 수 있나. 이 정도면 와인을 가져온 일행들이 마신 양과도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 와인을 50ml로 파는 업장이 있다면 최소 잔당 10만 원 이상은 받을 거다”라고 덧붙였다.
논란이 증폭된 건 레스토랑 운영자가 무단 시음한 와인들에 대해 마치 자신의 와인 컬렉션인 것처럼 상세한 테이스팅 노트를 작성하여 인스타그램에 게시했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고객의 신뢰를 저버린 중대한 배신행위”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12월 3일 해당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운영자 B 씨가 장문의 사과문을 게재했다. 사과문에서 B 씨는 “와인 모임을 진행하면서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시작했다.
B 씨는 “시음을 하다 조금 더 따라와 마신 적도 있다. 늘 허락을 구하던 습관이 사라졌다는 것에 스스로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고 정확히 자각했다. 와인 주인의 마음이 상했다면, 이 부분은 명백히 해당 고객분을 기만하는 것이고 잘못된 행동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B 씨는 “내 인스타에 업로드 된 모든 와인은 고객 분께서 직접주고 함께 테이스팅하며 행복한 기억이 있는 와인만 업로드 한것으로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와인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단순한 실수로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런 방식으로 몰래 손님 와인을 테이스팅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곳에 대해 ‘나도 당했다’는 얘기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는 것도 실수로 보기 힘든 배경이다.
또한 B 씨가 ‘인스타에 업로드 된 와인은 고객 분이 직접 준 와인이다’라고 한 말도, A 변호사와 말이 엇갈리고 있다. A 변호사는 “사실이 아니다. 내 와인을 허락 없이 마시고, 인스타그램에 올려둔 걸 이미 캡처해뒀다”라고 반박했다.
A 변호사는 “모쪼록 ‘관례’ 라는 이름으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업계에서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B 씨는 1월부터 업장에서 와인 모임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B 씨는 “와인 모임에서 일어난 일이니 만큼 앞으로 와인 모임을 하면 안된다 생각했다. 와인 모임으로 이슈가 된 공간인 만큼 지속적으로 와인 모임 예약을 유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반성의 기미도 없으며 불특정 다수를 기만하는 행동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1월부터 그만한다 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