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데 ‘삽질’…“투자금 돌려줘”
▲ 현대건설이 충남 서산 간척지 A 지구 ‘간월호 농촌정비사업’과 관련해 개인 투자자에게 수억 원대의 손해배상 청구를 당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이번 소송의 빌미가 된 정비사업은 2005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현대건설(사장 이지송)은 원고인 K 씨 외 2인과 A 지구 간월호 농촌정비사업과 관련해 합의서를 작성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합의서에 따르면 △본 건 정비사업의 인허가는 현대건설 명의로 신청하고 K 씨 등의 책임과 비용으로 추진한다 △K 씨 등은 현대건설 명의의 인허가를 득하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 일체를 부담하기로 하고 예상비용 10억 원을 현대건설에 예치한다. 현대건설이 인허가를 득하는 경우 인허가에 소요된 비용은 사업수익에서 우선적으로 반환하되 이자는 지급하지 않기로 한다 △본 건 정비사업을 실제로 수행하고 모래를 판매하는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사업자는 K 씨 등으로 한다 등의 항목이 명시돼 있다.
이 합의서에는 현대건설 대표이사 이지송을 ‘갑’으로 K 씨 등 사업자를 ‘을’로 하는 서명날인이 돼 있다. 원고인 K 씨는 이 합의서에 근거해 2005년 6월 14일에 본인의 출자금액인 2억 5000만 원을 현대건설에 입금했다.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았던 정비사업은 현대건설이 사업 인허가를 받지 못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투자금을 입금했는데도 사업 진척이 없자 K 씨는 2007년 8월 농림부 장관을 상대로 정비사업과 관련해 질의서를 보냈다. K 씨는 질의서를 통해 ‘간월호’ 관리권자인 현대건설이 인허가 관청으로부터 사업시행인가를 직접 받아 시행할 수 있는지, 또한 현대건설이 ‘간월호’ 준설사업 시행사로서 수의계약이 가능한지 여부를 질의했다.
▲ 현대건설 본사 사옥. 일요신문 DB |
결론적으로 현대건설은 본 정비사업 시행사 자격이 없는데도 투자금을 유치해 준설사업을 위한 측량 및 환경성 검토 등에 상당한 비용을 낭비한 셈이다.
사업이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음을 인지한 K 씨는 현대건설을 상대로 투자금 반환을 요청했다. 하지만 현대건설 측은 투자금 반환을 차일피일 미뤘다. 2007년 10월경에는 당시 김종학 부사장이 투자금을 반환하기로 구두 약속까지 했지만 변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현대건설 측은 태안기업도시 고문변호사단인 법무법인 ‘율촌’ 측에 투자금 변제 문제를 의뢰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 ‘현대건설은 준설사업 시행사 자격이 없다’는 내용의 농림부 회신. 현대건설과 K 씨 등 투자자 간의 합의서 사본. K 씨가 현대건설을 상대로 낸 소장. 현대건설 고문변호사단인 율촌이 현대건설 측에 법률자문한 회신서(왼쪽부터). |
율촌 측의 답변서를 종합해 보면 △이 사건 합의는 처음부터 목적 달성이 불가능한 원시적 불능의 계약이므로 당연무효라고 판단된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계약 체결에 책임이 있는 당사자는 상대방에 대하여 계약체결상의 과실책임을 지는지 여부가 문제될 수 있다 △K 씨 등이 귀사(현대건설)를 상대로 비용상환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할 경우 담당 재판부로서는 원시적 불능인 계약에 있어서 대규모 건설회사인 귀사가 기투입비용에 대하여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은 형평성에 반하는 것이라는 전제하에 귀사에게 책임이 있는 것으로 결론을 유도해 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손해의 공평하고 합리적인 분담이라는 전제하에 이 사안에서 귀사와 K 씨 등이 부담해야 할 손해의 비율을 살펴보면, 대규모 건설회사인 귀사가 7을 부담하고 K 씨 등이 3을 부담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사료되지만 분쟁의 신속하고도 원만한 해결을 위해서는 귀사가 위 기준보다 더 부담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K 씨 등이 귀사의 관계자들을 형사 고소한다면 그 내용이 무고에 해당할 정도로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귀사 관계자들이 수사기관에 상당한 정도로 소환을 당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사기관은 이 건은 인허가와 관련된 것인 만큼 투입된 비용의 사용처와 관련해 혹시라도 부정한 의도나 목적하에 사용된 것은 없는지 의혹을 가지고 그 부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조사를 벌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고 자칫 엉뚱한 방향으로 사건이 전개될 위험도 있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현대건설 측의 변호인단이 현대건설의 귀책사유에 힘을 싣고 투자금 상환의 필요성 및 원만한 해결을 위해 현대건설 측의 적극적인 해결을 자문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율촌 측의 자문에도 불구하고 K 씨 등에게 투자금을 상환하지 않았고 이 사건은 결국 소송전으로 비화됐다. K 씨는 2008년 8월경에 현대건설 측으로부터 ‘변제 불가’ 통보를 받고 같은해 10월 법적 투쟁에 돌입했다. K 씨는 당시 이지송 사장을 비롯해 현대건설 관계자들을 사기 및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지만 검찰은 이들에게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해 K 씨는 “검찰이 현대건설 측에 불리한 자료들을 증거물로 채택하지 않는 등 형평성에 어긋나는 수사를 했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 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에 검찰이 ‘봐주기’ 수사를 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고 항변했다.
예상치 못한 ‘검찰의 벽’에 부딪힌 K 씨는 억울하지만 투자금만이라도 상환받기 위해 2010년 10월 당시 사장이었던 김중겸 현대건설 대표이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 일부 승소(50 : 50 판결)를 한 K 씨는 지난 11월 대전고법에 항소장을 다시 제출해 현재 재판에 계류 중이다.
1심 판결에 대해 K 씨는 “현대건설 측이 충남도청에 준설사업허가 신청(2002년)을 했다가 반려된 조사기록 및 준설사업시행사 자격이 투자자들에게 설명해 준 조사기록 등 핵심 자료가 누락돼 완전 승소를 하지 못했다”며 “항소심 재판부에는 1심 때 누락된 자료를 포함해 핵심 자료들을 증거물로 제출한 만큼 반드시 승소하리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K 씨는 오는 12월 12일로 예정된 공판에서는 자신에게 변제를 약속한 김종학 전 부사장을 증인으로 출석시켜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한 상태다.
대기업인 현대건설을 상대로 힘겨운 소송전을 펼치고 있는 K 씨는 “대기업인 현대를 상대로 4~5년째 힘겨운 소송을 벌이고 있다”고 전제한 뒤 “대기업의 횡포에 내 인생이 망가졌다. 어머니가 2008년경에 뇌출혈로 쓰러져 세상을 떠난 것도 현대건설과의 분쟁 때문이다. 억울하고 분하다. 대기업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 하지만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믿음으로 진실을 밝히고 물질적·정신적 보상을 받아낼 생각이다”고 말했다.
K 씨는 특히 “현대건설은 태안기업도시 건설사업에 참여해 수백억 원대의 이익을 챙긴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대 측이 사업 과정에서 민원해결과 환경단체 설득 등을 위해 ‘안면도 반핵항쟁’을 주도했던 저를 사업에 끌어들인 뒤 토사구팽시킨 게 아닌가 싶어 분통함을 억누를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K 씨의 이러한 주장에 현대건설 측 관계자는 27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법원 판결에 따라 처리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며 “배상문제 또한 법원 결정에 따라 정리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대기업인 현대건설이 일개 투자자를 상대로 장기간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업 이미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대건설이 법원의 판단에만 의지할 게 아니라 원만한 합의를 위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유되고 있는 현대건설과 K 씨 간의 지리한 법정 다툼이 어떤 결과물을 도출할지 자못 궁금하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