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내 이름이 왜 명단에…?
▲ 체육교수포럼의 박근혜 후보 지지선언.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최준필 기자 |
▲ 문화예술인 지지선언에 참석한 문재인 후보.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사진제공=문재인 |
지난 11월 25일 한국비보이연맹이라는 단체가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다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러나 이날 오후 자신을 비보이라고 밝힌 트위터리언 정 아무개 씨가 “이번 자리에 참여한 크루의 리더와 이야기를 나눴다”며 “한마디로 더러운 정치 놀음의 희생양이 된 것”이라는 글을 게재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에 따르면 단순한 공연 목적으로 섭외된 비보이들이 기자회견 내용도 전달 받지 못한 채 뒤에만 서 있어 달라는 주문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국비보이연맹 이성복 총재는 연맹의 회원이 전국적으로 5000명 이상이라고 밝혔지만 이들의 공식 홈페이지 회원 수는 25일 기준 26명에 불과했다. 현재 비보이로 활동하고 있는 김 아무개 씨는 “비보이가 5만 명이 넘는다. 그런데 ‘비보이연맹’이라는 건 처음 들었다”며 “즐기며 하는 것이 비보이다. 연맹을 만들어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후보도 지지선언과 관련해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지난 11월 11일 영호남지역교수 2000여 명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특히 새누리당 텃밭으로 알려진 영남 지방의 교수들이 지지선언에 나섰다는 소식에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내 전남대 교수 2명이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고 이어 조선대 교수 1명이 지지선언을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민주당 광주시선대위 측은 “교수 가운데 지지철회를 요청한 몇몇 교수의 명단을 시선대위가 최종 확인하지 못했던 점이 있었다”며 “실무적인 실수로 인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거리를 제공한 점에 대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명의도용 논란 진화에 나섰다.
이처럼 지지선언이 ‘세 불리기’나 ‘세력 과시용’으로 이용되면서 이에 따른 잡음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개인적인 참여가 특정 단체의 지지선언으로 호도되거나 대표성을 갖지 못한 일부의 지지선언이 단체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둔갑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부마민주항쟁 기념사업회는 얼마 전 경남동지회를 창립했다. 부산지역의 일부 회원이 ‘부마항쟁’의 이름을 걸고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후부터다. 부마민주항쟁 기념사업회 측은 “지지선언을 한 23명 중 한 명이 평소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며 “별도의 협의과정은 없었다. 지지선언 발표를 하는 날까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부마항쟁부산 동지회 측은 “새누리당의 부마항쟁특별법이라는 정책에 대한 지지를 한 것”이라고 대응했다.
지지선언과 관련한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1월 20일 전 민주당 의원 20여 명이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 입당 전력이 있어 ‘철새 정치인’ 논란이 다시 한 번 도마에 올랐다. 또한 ‘4월혁명국가 유공자단’이라는 명칭으로 박근혜 후보 지지선언을 한 단체는 기자회견 당일 단체명이 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620여 명의 회원이 소속된 4월혁명 단체 ‘4월회’ 측은 “발표한 분 중 2명이 단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안다. 지지선언 내용 또한 우리와 관계없다”라고 논란을 일축했다.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했던 정봉주 전 의원 팬카페 ‘정봉주와 미래권력들’(미권스)은 카페지기가 사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미권스 카페지기였던 ‘민국파’는 ‘문재인 지지여부’를 묻는 공지사항을 게시한 후 지지선언을 했다.
정봉주 의원은 선거에서 ‘중립’을 지킬 것을 요구하며 민국파의 사퇴를 요구했다. 이에 민국파는 미권스 게시판을 통해 “미권스 카페의 의사결정 과정을 독단적으로 운영해 회원 여러분들과 진보진영의 많은 분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카페지기를 사퇴했다. 이 사퇴문은 정봉주 전 의원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17대 대선에 비해 18대 대선에서 유독 무리수를 두는 지지선언들이 넘쳐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정치컨설턴트 김대진 조원씨앤아이 대표는 “17대는 이명박의 지지율이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지율의 차이가 근소하다”며 “서로의 ‘끝단’에 있는 세력을 결집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한 쪽에서 지지선언을 하는 단체가 등장하면 나머지 한 쪽에서도 지지선언을 하는 경쟁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이런 소모적인 지지선언이 계속되면 중립이 없어진다. 대선 이후의 통합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배해경 인턴기자
▲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연예인 홍보단. 사진제공=박근혜 |
연예인 홍보단-젊은층 ‘통’할 수도
지지선언은 주로 명망있는 정치가들의 전유물이었다. 11월 24일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가 박근혜 후보 지지를 공식적으로 선언했고, 진보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가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했다. 이들의 지지선언은 지지율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정치분야 여론조사 전문 업체 리얼미터 관계자는 “이회창의 박근혜 후보 지지선언 이후 박근혜의 지지율이 소폭 상승하긴 했다. 하지만 지지선언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박근혜를 지지하는 보수성향의 유권자를 결집시키는 효과는 있겠지만 중도성향의 유권자는 이탈할 수도 있다. 결국 상징적 의미의 문제다”라고 말했다.
정치인에 이어 연예인들도 대선후보 지지선언에 동참했다. 새누리당은 유세단을 꾸리면서 연예인 홍보단을 만들었다. 민주통합당은 별도의 연예인 발대식은 없었지만 가수 이은미, 작곡가 김형석, 배우 김여진과 권해효 등이 멘토단으로 확정됐다. 이들의 지지선언이 유권자들의 표로 이어질 수 있을까. 정치컨설턴트 김대진 씨는 “안철수의 거취가 정해져야 연예인들의 영향력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젊은 층에서는 연예인 홍보단이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겠지만 30대 중반 이후부터는 연예인보다 주변의 평가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