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신랑 ‘여대생 알몸’ 찍다 결혼 쨍그랑
서울 소재 유명 명문여자대학교 수영장 샤워실을 상습적으로 몰래 촬영한 20대 남성이 붙잡혔다. 여대 샤워실 현장이 적나라하게 촬영된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11월 26일 서대문경찰서는 ‘A 여대 수영장에 잠입해 환풍기 구멍 사이로 여대생들이 샤워하는 모습을 몰래 촬영한 윤 아무개 씨(28)를 성폭력특별법위반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윤 씨는 지난 6월부터 약 3개월 동안 이른바 ‘몰카’를 수차례 촬영해왔다. 경찰 조사결과 드러난 몰카 사진은 총 176장이며 이 가운데엔 동영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군다나 윤 씨는 한 제약회사의 ‘잘나가던’ 영업사원으로 내년엔 결혼까지 앞둔 예비신랑이었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예비 신랑’이 행복한 결혼을 코앞에 두고 상습적으로 여대 샤워실을 훔쳐보게 된 사연을 알아봤다.
여자대학교 수영장이 가져다주는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문제의 ‘샤워실 몰카’ 사건이 일어난 해당 여대 수영장에 등록된 회원들은 대부분 여성이라고 한다. ‘여대 수영장’이란 타이틀답게 소속 학교 여대생들과 근처 여자고등학교 학생, 동네 주민인 40~50대 여성, 이렇게 주로 여성들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었다.
그런데 지난 5월 중순 평범한 외모의 한 20대 후반 남성이 이 여대 학교수영장에 방문해 회원등록을 하면서 문제는 시작했다. 당시 수영장 근처에 위치한 모 제약회사에 소속된 윤 씨는 영업파트 직원답게 언제나 반듯한 양복 차림이었다고 한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까지 있던 윤 씨에게 부족함은 없어보였다.
수영장 관계자 B 씨는 “키 170cm 중반의 굉장히 평범한 외모의 남성이었다. 옷도 깔끔하게 입고 인상도 나쁘지 않아서 운동으로 자기 관리를 하는 전형적인 모범 청년으로 보였다”며 당시 윤 씨의 인상을 전했다.
그런데 윤 씨가 이 수영장에 회원 등록을 한 지 약 한 달 정도 지난 후부터 일이 생겼다. 평온했던 여대 수영장에 ‘기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여대의 수영강사 C 씨(남)는 “지난 7월부터 동료 수영강사들이 ‘회원 중에 변태가 있는 것 같다. 샤워할 때마다 누가 훔쳐보는 것 같다. 불안하다’며 도움을 요청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C 씨는 “한번은 윤 씨가 비오는 날에 나타나 수영장 근처를 서성이다가 수영강사인 나도 모르는 문 쪽으로 걸어가더라. 나중에 알아보니 기계실 쪽이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없게 조치돼있던 곳이라서 ‘설마 멀쩡한 사람이 이상한 짓 하겠어’라는 심정으로 지나쳤다”고 덧붙였다.
그 시간 윤 씨는 수영장 지하로 들어갈 수 있는 기계실 근처 철문을 찾아내 준비해간 망치로 자물쇠를 부수고 내부로 침입한 것으로 경찰은 추측했다. 유독 비가 세차게 오던 날에만 수영장을 찾은 데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근처 행인들이 우산을 쓰고 있다 보니 시야 확보가 어려워 윤 씨의 모습이 발견될 가능성이 낮을 뿐더러 비 소리 때문에 여러모로 윤 씨가 은밀히 수영장 내부로 접근하는 데 유리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윤 씨가 여자 샤워실 내부를 도촬한 날로 밝혀진 지난 8월 10일 역시 비가 전국적으로 많이 내렸다.
▲ 사건이 벌어진 여대 수영장.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
C 씨는 “(윤 씨는) 어떻게 알아냈는지 여대생들이 교육받는 시간에만 나타났다. 일례로 주말의 경우 일반인에게 개방하는 시간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고, 여대생한테만 개방하는 시간은 오후 5시부터 저녁 9시까지다. 윤 씨는 우연인지 계획인지 유독 오후 4~5시 쯤 나타나 여대생들로만 가득한 수영장 공간에 있는 것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의혹 끝에 결국 경찰 수사를 의뢰한 결과 여자 샤워실 환풍기 근처에서 윤 씨의 지문이 여러 차례 발견되면서 윤 씨의 몰카 촬영은 끝을 맺게 됐다.
현장에서 자신의 지문까지 나왔지만 조사과정에서 윤 씨가 보인 행동은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는 게 경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수사를 받는 사람답지 않게 맞선 자리에 나온 것마냥 말끔한 차림으로 경찰서에 나타나 ‘회사 일 때문에 바빠 죽겠는데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로 수사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시종일관 불쾌해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윤 씨는 담당 조사관을 앞에 두고 ‘허’ 하며 비웃음도 자주 내비쳤다는 후문이다. 윤 씨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려는 듯 하루는 직장 동료와 함께 나타나 수사를 받는 여유마저 보였다고 한다. 윤 씨의 한 직장동료는 “평소 모범적인 이미지로 회사 내 평판이 좋았던 윤 씨가 경찰 수사를 받는 모습이 어색했다”고 털어놨다.
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 수사관 이 아무개 씨(34)는 “한 번은 윤 씨가 자신의 컴퓨터를 압수한 것에 대해 여러 차례 항의하면서 ‘당신들 때문에 회사 생활에 지장을 받고 있다’며 경찰을 심하게 비난하는 모습도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종일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윤 씨의 당당한 태도는 경찰의 수사 의지를 더욱 불태우는 꼴이 돼버렸다. 한 경찰관은 “윤 씨가 이미 컴퓨터에 있는 자료를 삭제한 상태여서 복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 윤 씨가 자신의 결백을 강하게 주장해온 만큼 우리 쪽도 그에 걸맞은 성실한 수사를 해줬다. 두 달 넘게 매달려 (컴퓨터를) 복구한 끝에 176장의 몰카 사진들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사진에는 여대생들이 샤워하는 모습이 파노라마 형태로 자세히 찍혀 있었다. 여대생들의 얼굴과 상반신 나체가 그대로 촬영돼 있어 만약 유출될 경우 그 파장이 엄청나게 클 것이라고 경찰은 보고 있다.
증거 사진이 발견되자 윤 씨는 꼬리를 내리고 자신이 예비신랑이란 점을 언급하며 경찰들에게 선처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고 한다. 수사를 담당한 경찰은 “윤 씨가 ‘몰카 촬영 혐의로 수사를 받는 바람에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면서 “개인적인 호기심 때문에 촬영한 것일 뿐 다른 목적은 없었다”고 벌금형에서 끝내주기를 바랐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 측은 곧바로 윤 씨의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현재 A 여대 수영장 측은 대량의 몰카 사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철통 보안 상태에 들어간 상태다. 수영장의 한 관계자는 “여대 수영장이라는 특성 때문에 범죄 대상이 된 것 같아 안타깝다. 이번엔 운 좋게 윤 씨를 잡아낼 수 있었지만 이전에 윤 씨처럼 기계실 등을 통해 샤워실 환풍기 쪽으로 접근한 이들이 아예 없었을 것이라고 솔직히 말 못하겠다. 이 사건을 계기로 또 다른 피해 사실이 불거져 나올까봐 겁이 난다”고 말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