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보수 지지층 소구, 오세훈 윤 대통령과 선 그어…이준석 유승민 등 빅텐트 시나리오도 거론
인물난 속에서 중도 확장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여권 핵심 지지층이 몰려 있는 대구·경북(TK) 맹주 홍준표 대구시장 투톱 대결로 보수의 대진표는 일단 흘러가는 모양새다. 하지만 탄핵이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언제든지 플랜B, 즉 보수 빅텐트 구성 시도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보수’ 업은 홍준표, ‘윤’과 선 긋는 오세훈
초침·분침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한 대선 스케줄에 가장 빨리 보폭을 맞추고 있는 여권의 잠룡은 홍준표 시장이다. 대구시청 공무원들은 홍 시장의 차기 대권 도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들 사이에선 홍 시장의 대권 도전 공식 선언이 임박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공식 발표에 대한 언론의 문의에 대해서도 “안 한다”가 아니라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언급이 나오는 중이다.
홍 시장은 12월 19일 공개된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초짜 대통령 시켰다가 대한민국이 폭망했잖나”라고 반문하며 “윤석열 효과로 경륜 있고, 정치력 있고, 배짱 있고, 결기 있는, 그런 사람을 찾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험으로 따지고 보면 여권 내에서 유일무이의 대선후보라는 설명이다. 홍 시장의 대권 도전 의지가 반영된 말이기도 하다.
홍 시장은 “어차피 내가 다시 한 번 대선에 나갈 거라는 것은 국민 대부분이 알고 있을 테니까”라며 “지금 대한민국 정치는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로 전부 진영 대결이 됐다. 아무도 그걸 깨지 못하고 있는데, 이번 대선을 통해 이걸 한번 깨보고 싶다”고 했다. 대선 출마의 명분까지 내놓은 셈이다.
그러면서 “정치를 30년 하면서 좌파 정책도 도입해 봤다. 호남 사람들도 국민의힘에 대한 반감은 있어도 나에 대한 반감은 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수 핵심 지지층은 잡고 있을지 몰라도 중도 내지 호남 확장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한 강한 반론 제기로 읽힌다. 홍 시장의 부인 이순삼 여사는 전북 부안 출신으로 홍 시장은 기회가 될 때마다 호남과의 연고를 강조해왔다.
홍 시장은 보수 핵심 지지층의 강력한 지원을 바탕으로 경부선 열차에 승차한 뒤 수도권으로 북상하며 바람몰이를 하는 전략을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홍 시장은 탄핵 국면 속에서도 보수 지지층의 정서를 반영하는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고 있다. 그는 12월 17일 윤석열 대통령 내란 혐의와 관련,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내란죄는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어야 한다”면서 “윤 대통령은 국가 정상화를 내걸었기 때문에 목적범인 내란죄는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적극적인 홍 시장과 달리 오세훈 서울시장은 신중한 입장이다. 오 시장은 서울시청 측근 등 주변 사람들에게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비쳤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의 모습을 보면 사실상 결심을 굳힌 모양새다. 정치권에선 꼼꼼한 성격으로 알려진 오 시장이 당내 경선, 그리고 본선에서의 승산을 따져본 결과, ‘전망이 밝다’는 결과치를 얻어냈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오 시장은 12월 18일 의미심장한 페이스북 글을 남겼다. 오 시장은 이날 글에서 “계엄에는 반대하지만 ‘대통령 이재명’도 수용할 수 없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국민이 훨씬 많다”고 강조하면서 “이분들께 희망을 드려야 한다”며 여당인 국민의힘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오 시장은 “국민의 사랑과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당은 죽은 정당”이라며 “핵심 지지층과 국민 일반 사이 간극이 크다면 당연히 보편적 시각과 상식을 기준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 당은 절체절명의 갈림길에 서 있다”면서 “확장지향형 정당의 길로 회생을 도모할 것인가, 축소지향형 정당으로 스스로 고립의 길을 걷다가 역사 속에서 사라질 것인가, 국민의힘은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오 시장의 이런 움직임을 읽어보면 홍 시장과는 방향성이 확연히 다르다. 홍준표 시장처럼 윤 대통령을 비호하는 입장에 머물러선 안 되고, 중도 민심을 향해 나아가야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다는 게 오 시장 측 판단이다. 오 시장은 탄핵 국면에선 홍 시장과 달리 찬성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여권에선 현재 홍 시장과 오 시장 외에 추가적으로 출사표를 던질 후보는 없는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본적으로 경선에 나가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고정표가 있어야 하는데 홍·오 시장에 필적할 만큼 고정표를 가진 후보는 눈에 띄지 않는다. 나경원 의원은 대선보다는 당권 쪽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비대위원장도 경륜 있는 사람이 들어와야 한다는 의견이 당내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차기 여당의 대선 후보도 가장 최우선적인 역량이 안정감과 경험이다. 보수의 최대 강점인 국정 운영에 대한 역량 부분에서 오·홍 시장 두 사람이 모두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강점을 갖고 있는 터라 경선에서부터 한치 앞을 예측하기 힘든 치열한 승부가 벌어질 것이다.”
#궁지 몰린 보수, 승산 있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파면 직후 진행된 제19대 대선(2017년 5월 9일)에서 당초 예상과는 달리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득표율 41.08%에 그쳤다. 탄핵 국면이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낸 민주당 대선 후보의 압도적 승리가 예측됐지만 표는 골고루 분산됐다.
문 후보가 과반을 얻지 못한 가운데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24.03%,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21.41%,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6.76%,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6.17%를 각각 획득했다. 결과론이지만 보수진영으로 분류되는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후보가 연대했다면 결과는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형국이었다.
정치권에서는 당시 문재인 후보에 대해 정당 선호도를 뛰어넘지 못하는 개인 지지율 때문에 과반 획득이 어려웠다고 평가한다. 진보 정당 후보에 압도적 지지를 허락하는 호남조차 문 후보에 대한 불안감을 비쳤다. 그 결과 광주에서 안철수 후보가 30.08%(문재인 61.14%)의 득표율을 올렸고 전남에서도 안철수 후보가 30.68%(문재인 59.87%)의 표를 가져갔다.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과거 전례를 소환하면서 만약 조기 대선이 실현된다면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내놓는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사법 리스크에 휩싸여 있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비토 기류도 많아 과반 득표가 쉽지 않고 보수와 진보의 박빙 승부가 예상된다는 이유다.
이런 연장선에서 국민의힘 안팎에서 “해볼 만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비록 지금은 초상집 분위기이지만 대선 정국이 시작되면 반전될 수 있다는 기대다. 특히 정치 경험이 많은 홍준표 대구시장은 도저히 뒤집기가 불가능할 것 같은 대선에서 대역전극이 일어났던 김대중 정부 집권 사례를 갖다놓으면서 자신감을 표출하고 있다.
1993년 YS(김영삼 전 대통령) 집권으로 '3김 정치'는 끝났다는 판단이 나왔고 YS에게 패한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영국으로 떠났다. 그러나 DJ는 1995년 지방선거 직후 정계에 복귀했고 국민회의를 창당했다. 1996년 총선은 DJ 정치 재기의 시험대였지만 여당 신한국당이 139석을 얻는 동안 DJ의 국민회의는 79석에 그쳤다. DJ는 끝났다는 비관론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DJ는 포기하지 않았고 JP(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손을 잡는 DJP연합을 통해 집권에 성공했다. DJP연합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큰 그림이었다. 여기에 이인제 후보가 뛰쳐나오는 여당의 분열까지 겹쳐지면서 이회창 대세론을 무너뜨리고 DJ는 대통령의 꿈을 이뤘다.
당시를 기억하는 국민의힘 한 전직 재선의원은 “DJ가 1996년 총선에서 졌을 때 DJ 퇴진론까지 나왔다”며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DJ는 쉽사리 흥분하지도 않고 쉽게 포기하지도 않으면서 때를 노려 결국 성공했는데 지금 여당도 대역전이 결코 어렵지는 않다”고 내다봤다.
# 보수 빅텐트, 플랜B 꿈틀
여권에서는 중도 흡입력이 좋은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 가세하고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다시 여당으로 들어와 함께하는 그림도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온다. 흥행을 위해서는 더 많은 후보들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실제로 유 전 의원은 최근 열심히 입을 풀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붙여진 오명부터 떼려는 듯 ‘배신자 프레임’에 대한 맹렬한 비판부터 쏟아내고 있다. 그는 12월 1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가 국민의힘 내에서 한동훈 전 대표를 향해 배신자 공격이 쏟아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 “누가 누구를 배신했다는 말이냐. 중한 죄를 저지른 대통령을 끝까지 감싸다니, 우리가 무슨 조폭이냐”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유 전 의원은 “배신자라는 프레임은 정말 나쁜 프레임”이라며 “이 프레임은 정면으로 깨부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유 전 의원은 “한 대표가 탄핵에 대해 ‘찬성하자’ ‘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 걸 가지고 배신자라니, 누가 누구를 배신했다는 거냐”며 “그걸로 배신이라고 하는 프레임을 덮어씌우는 건, 8년 전에도, 지금도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여러 언론에 대선 출마 의사를 이미 내놨다. 대선 출마 나이 제한도 곧 풀려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올 채비를 그는 갖추고 있다.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도 정가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윤석열 대통령 최측근이자 정치권에서 합종연횡 전문가로 불리는 김한길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이 나서 이재명 대표에 대해 날을 세워온 이낙연 전 국무총리까지 영입하는 반 이재명 보수·중도 연합 빅텐트 얘기도 나온다.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개연성 있게 받아들이는 이도 적잖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이제 탄핵 심판 심리가 막 시작됐고 수사도 초기 단계라 앞을 예측할 수 없다”며 “너무 변수가 많아 넘겨짚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정치는 생물이라 상황에 맞게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