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조기 탄핵 불리 불구 위법 행태 심각 판단한 듯…‘대안부재’ 강조하지만 검사 출신 프레임 발목
#한동훈, 탄핵 찬성으로 선회
한동훈 대표는 12월 3일 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15분 만에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는 입장문을 냈다. 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 18명도 모두 친한계로 분류되는 의원이었다.
한 대표는 계엄 해제 직후인 12월 4일 기자들과 만나 “오늘의 참담한 상황에 대해 집권 여당으로서 국민들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는 “윤석열 대통령은 이 참담한 상황에 대해 직접 소상히 설명하고, 계엄을 건의한 국방부 장관을 즉각 해임하는 등 책임 있는 모든 관계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야권의 윤 대통령 탄핵 시도에 대해 한 대표와 친한계가 동참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정치권에서 쏟아졌던 배경이다. 하지만 12월 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당 대표로서 이번 탄핵은 준비 없는 혼란으로 인한 국민과 지지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통과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탄핵 찬반 여부에 대해 장고에 들어갔던 한 대표가 계엄 사태 이후 윤 대통령 탄핵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힌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한 대표는 이날 “계엄 선포 당일보다 어제, 오늘 새벽까지 더 고민이 컸다”며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을 털어놨다. 전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윤 대통령을 엄호하는 그림으로 비칠 수 있다는 염려였다.
한 대표는 “대통령의 위헌적인 계엄을 옹호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라며 “저는 계엄 선포 최초 시점부터 가장 먼저 이번 사태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애국심에 함께했고, 앞으로도 함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을 비롯해 위헌적 계엄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피해를 준 관련자들은 엄정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또 12월 4일 윤 대통령과의 면담 결과를 소개하면서 “대통령은 민주당의 폭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상계엄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며 “대통령의 이 사태에 대한 인식은 저의 인식과, 국민의 인식과 큰 차이가 있었고 공감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과 자신은 ‘다른 사람’이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내세운 것이다.
한 대표는 “민주당의 폭거는 극심하고 반드시 심판받아야 하지만,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고 거듭 강조한 뒤 “당 대표로서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탄핵은 저지하지만 윤 대통령과의 이별은 불가피하다는 취지였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대통령 옹호라는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탈당 요구로 희석시키려 한 걸로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12월 5일 밤 기류가 바뀌기 시작했다. 계엄 선포를 앞두고 윤 대통령이 위법적 지시를 했고, 이를 전해들은 한 대표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2월 6일 아침 한 대표는 예정에 없던 긴급 최고위원회를 소집, “계엄령 선포 당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요 정치인 등을 반국가 세력이라는 이유로 체포하도록 지시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윤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집행 정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한 대표는 “대통령이 정치인 체포를 위해 정보기관을 동원했던 사실을 신뢰할 만한 근거를 통해서 확인했다. 그렇게 체포한 정치인들을 과천에 수감하려고 했던 구체적인 계획이 있던 것으로 파악했다. 여러 경로로 공개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탄핵안이 통과되지 않게 노력하겠다고 말씀드렸지만, 새로이 드러나고 있는 사실 등을 감안할 때 대한민국과 국민을 지키기 위해 윤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집행 정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한 대표의 이런 발언은 사실상 탄핵에 찬성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친한계 한 의원은 통화에서 “자신까지 체포 명단에 있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들었다. 윤 대통령이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고, 이로 인해 국정을 더 이상 이끌고 가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탄핵이 되면 한 대표의 대권가도엔 좋을 게 없다. 박근혜 탄핵 후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결국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다. 한 대표로선 이재명 ‘사법리스크’도 계산에 넣었을 것이다.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게 한 대표에게 유리할 수 있었다. 탄핵에 찬성한다고 했다가 부결될 경우 리더십에도 상처가 난다. 그럼에도 탄핵 찬성으로 급변한 것은 그만큼 윤 대통령의 위법적 행태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검사 출신’ 프레임 발목
탄핵 정국이 시작되면 차기 대선 시계도 빨라진다. 박근혜 대통령 사례를 보면 탄핵 발의부터 헌재 결정까지 불과 3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는 차기 도전이 유력한 한 대표에겐 불리한 지형이다. 또한 당내의 비토 분위기도 한 대표 앞에 놓인 산이다.
한 대표는 취임 후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공을 들였지만 결국 ‘검사 출신’ 프레임은 그의 발목을 잡을 전망이다. 모든 사안을 선과 악으로 양분, 검거와 처벌에 주력하는 검찰 특유의 성향이 정치와는 융합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윤 대통령이 야당을 악으로 규정하면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계엄 선포 카드를 꺼낸 것만 봐도 검사 정치의 한계는 명확하다는 말이 나온다.
국민의힘 소속 김태흠 충남도지사의 지난 10월 발언은 ‘검사 한계론’과 연계된다. 김 지사는 10월 23일 한동훈 대표와의 전화 통화 내용을 소개했었다. 그는 이날 서울 영등포구 공군호텔에서 열린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주최 세미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한 대표로부터 항의 받은 얘기를 전했었다.
김 지사에 따르면 10월 20일 한 대표를 향해 “검찰스러움, 순발력 있는 말솜씨와 가벼움, 관종 같은 행동이 아니라 진중하고 미래를 통찰하고 준비하는 당 대표가 되길 바란다”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뒤 한 대표로부터 직접 항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김 지사는 당시 “내가 ‘듣기 거북한 말을 해서 서운해서 전화했느냐’고 물었더니, 한 대표가 서운한 게 아니라 욕이죠라고 하더라. 검찰스러움, 관종이라고 한 게 욕이라더라”고 말했다.
이어 “내가 ‘듣기 거북해도 욕은 아니다’라고 했더니, 한 대표는 당원이 어떻게 대표에게 욕을 할 수 있냐고 하더라”고 전했다. 김 지사는 “그런 게 검찰스러운 것”이라며 “대표도 잘못했으면 당원들에게 비판받고 해야지, 그런 것 하나를 감당 못 하면서 어떻게 대표를 하나”라고 거듭 한 대표를 때렸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12월 5일 페이스북 글에서 한동훈 대표를 겨냥해 “당과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철부지 용병에게 사태 수습을 맡길 수 있겠나. 당 꼬락서니하고는 쯧쯧쯧”이라고 적었다. 이날은 한 대표와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후속책을 논의한 다음날이었는데 두 사람 모두에 대해 싸잡아 질타했다. 홍 시장은 “두 용병이 반목해 당과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그중 용병 하나가 저 용병 탈당시키면 내가 사태를 수습하겠다고 한다”고 적으면서 한 대표를 비판했다.
대구·경북 출신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계엄 사태와 이에 맞닿은 탄핵 표결을 보면서 보수 핵심 지지층에서는 보수가 사람을 키우지 못했고 외부에서 초보 정치인을 데려다 급하게 땜질 정치를 하다 보수가 결국 만신창이가 됐다는 각성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한 대표도 국민의힘이라는 거함을 이끌어갈 선장 면허증이 과연 있는지 사실 의구심이 더 크다”고 털어놨다.
#이번에도 대안부재론?
한동훈 대표 약점이 거론되고 있기는 하지만 당내에서는 대안부재론도 감지된다. 윤 대통령이 사실상 힘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차기를 준비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한 대표를 대신할 인물도 없다는 논리다. ‘검사 출신’이라는 비판 역시 민주당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가 부각될 경우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는 말도 친한계에선 들린다.
대안부재론은 제법 긴 기간 국민의힘을 지배해왔다. 2023년 말 법무부 장관 한동훈을 급작스럽게 비대위원장에 올릴 때도, 지난 봄 총선 직후 참패에도 불구하고 다시 당대표로 한동훈을 등판시킬 때도, 대안부재론이 작동했다. 대안부재론 앞에서 초보, 검사 불가론은 힘을 잃었다.
하지만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대안부재론 실패 사례로 한 대표와 경력이 겹치는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를 호명한다. 검사 출신으로 탄핵 당한 박근혜 정부 법무부 장관으로 일해 여러 핸디캡이 존재하는데도 “저만한 사람이 없다”는 논리가 만들어지면서 입당 43일 만에 당대표가 됐던 그였다. 하지만 당시 황 대표는 좌충우돌하다 2020년 총선에서 힘없이 무너져 내리며 보수정당을 떠났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오세훈 홍준표 나경원 원희룡 등의 정치인들이 우리 당에는 많아 국민들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다”며 “경북 출신으로 민주당 간판인 이재명 대표에 비해 한동훈 대표는 지역 기반·경력 등에서 확장성이 크게 떨어지는 만큼 이번 기회에 전략적으로 보수정당의 차기 간판으로 누가 가장 적합한지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