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 다지며 체력 비축…새 ‘엔진’ 찾아라
▲ 현대백화점의 후계자 정지선 부회장(왼쪽)과 동생 정교선 전무. | ||
하지만 할인점 업태를 뺀 백화점 업태만으로 치자면 백화점 업계는 3강체제다.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
공교롭게도 세 백화점은 모두 경영권이 이동 중이거나 이동을 완료한 직후다. 이 중 경영권 승계에서 가장 앞선 그룹은 현대백화점그룹이다.
현대백화점의 후계자인 정지선 부회장은 지난 2003년 1월에 부회장에 취임했고, 지난 연말 인사에서는 정 부회장의 부친인 정몽근 명예회장이 정식으로 은퇴해 사실상 현대백화점그룹의 총책임자가 됐다.
최근 신세계의 정용진 부회장이 부모로부터 신세계 주식을 물려받은 뒤 사상 최고의 증여세를 납부해서 화제가 되고 있지만 정지선 부회장의 경우 이미 그 전에 1130억 원에 달하는 증여세를 완납했다. 정 부회장은 부친으로부터 현대백화점 주식을 증여받은 뒤 지난 2년 반 전부터 단계적으로 190억 원, 2004년 11월 800억 원, 2006년 8월 140억 원 등을 증여세로 내 지분 승계 작업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정 부회장의 동생인 정교선 전무까지 더하면 두 형제는 현대백화점 지분을 물려받는 대가로 1714억 원을 세금으로 냈다.
백화점 업체 중 가장 먼저 말끔하게 승계작업을 마무리하고 2세 체제를 출범시킨 것.
때문에 현대백화점 그룹은 편법승계 등 재산승계 과정에 놓여있는 다른 그룹의 고민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현대백화점의 한 가지 남은 고민은 후계자 승계 문제가 아닌 성장 가능한 새로운 동력 찾기가 지지부진하다는 점이다.
롯데백화점은 신동빈 부회장 체제가 들어선 이후 할인점 사업과 명품점 확장, 홈쇼핑 채널 인수, 석유화학 사업 확대 등 전방위적으로 몸집을 불려가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역시 정용진 부회장 시대를 전후해 기존 할인점 사업 강화로 양적인 측면에서 롯데백화점을 거의 따라잡았고 스타벅스 사업 확대, 기존 본점 재개점, 명품점 강화 등으로 기세를 올리고 있다.
▲ 삼성역에 위치한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의 전경. | ||
강점이라면 신세계와 롯데에 없는 홈쇼핑 채널을 일찌감치 확보했고 케이블방송사업(SO)에서 태광그룹에 이어 강자로 떠올랐다는 점 정도다. 이마저도 롯데가 최근 홈쇼핑 사업에 진출해 빛을 잃을 위기에 놓여져 있다. 강남에 압구정 본점과 무역센터점, 목동점 등으로 신흥 부촌의 상권을 주도한다는 명성도 신세계 강남점의 성공으로 흠집이 났다.
때문에 현대백화점이 유통업계의 새 엔진으로 꼽히는 할인점 사업에 뛰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돌기도 했다. 실제로 현대백화점이 까르푸를 인수한다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지만 이랜드그룹에서 수거해갔고 농협과의 전략적 제휴도 이렇다할 가시적 성과가 나오고 있지 않다.
물론 현대백화점이 그동안 아무것도 안한 것은 아니다.
2세 승계 과정에서 경영권 안정을 위해 투자를 유보하고 내부체력을 강화했다는 게 현대백화점 쪽의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계열회사인 HCN이 1600억 원의 외자유치에 성공하기도 했다. 현대백화점 쪽의 설명으로는 “새로운 사업을 위한 실탄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떤 대상을 향해 ‘실탄 발사’를 하느냐는 것이다.
현대백화점은 유통업계의 격전장이 되고 있는 할인점 사업에 ‘올인’하고 나설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신세계 이마트와 롯데마트의 난투극에 뛰어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다만 입지에 따라서 ‘백화점+할인점’ 형태로 진출할 계획은 있다고 밝혔다.
오는 2010년께 아산신도시와 청주에 문을 여는 배방점과 청주지웰시티점은 각각 연면적 4만 평과 3만 5000평에 달하는 매머드급 점포다. 이곳에 백화점과 할인점을 함께 출점시키겠다는 게 현대백화점의 복안이다.
판교프로젝트는 오는 5~6월께 공개입찰을 통해서 사업자가 선정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죽전에 새 점포를 연 신세계보다는 롯데와 현대가 최대 경쟁자로 맞붙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 쪽에서도 판교점이 분당 용인 수지 등을 아우르는 신흥상권의 핵이라는 점에서 공을 들이고 있다. 일산 킨텍스몰의 경우 아산 배방 컨소시엄 주간사인 SK건설이 주도하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현대백화점의 참여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미 킨텍스몰에는 까르푸(현 홈에버)가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보듯 현대백화점은 2세 체제에서도 여전히 기존에 우위를 보이고 있는 백화점 사업 투자에 더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또 정 부회장의 동생인 정교선 전무 관할인 홈쇼핑 사업 쪽에서도 HCN을 통해 외자유치를 성공시킨 점이 주목을 받고 있다. 현대의 MSO인 HCN은 태광, 씨앤엠, CJ에 이어 4위 규모로 115만 가구를 가입자로 확보하고 있다. 1위인 태광을 뺀 나머지 MSO의 가입자 규모는 고만고만하다. FTA로 미국 미디어 기업의 국내 진출 문턱이 낮아져 SO 위주인 현대 쪽의 방송사업은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또 정 전무 관할의 현대H&S는 기존의 기업납품 업무를 벗어나 소형 가전을 주문자상표방식으로 판매를 시작하는 등 사업을 확장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롯데와 신세계 등 두 강자의 외연확대 경쟁에 눈에 띄지 않았을 뿐 내용적으로 현대백화점은 후계 승계 구도를 제일 먼저 마무리하고 2세 체제를 정식으로 가동하기 시작했다.
기존 백화점 사업과 방송 사업 강화 등으로 모습을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는 현대백화점 2세의 선택이 할인점 사업 강화를 기치로 내걸고 있는 롯데와 신세계 2세 체제와 맞붙어 어떤 성과를 거둘지 주목받고 있다.
김진령 기자 kj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