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토류’ 등 막대한 자원, 북서항로의 관문, 중·러 견제 군사적 중요성도…덴마크·그린란드 강력 반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78)이 과거 1기 행정부 시절 가진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다. 당시 그가 눈독을 들였던 건 바로 그린란드다. 당시 트럼프는 공공연하게 그린란드를 사들이겠다며 매입 의사를 밝혔지만 결국 덴마크와 그린란드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물러설 트럼프가 아니었다. 재임에 성공하자 다시 그린란드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트럼프는 이번에는 1기 행정부 때보다 더 노골적으로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 그린란드가 미국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라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트럼프는 왜 그린란드를 욕심내는 걸까. 그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과연 이런 구상 자체가 실현 가능한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기도 하다.
그린란드는 북극해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이다. 총면적은 약 216만km²로 거대하지만, 섬의 5분의 4가 얼음으로 뒤덮여 있을 만큼 척박해 인구 규모는 적은 편이다. 현재 인구는 약 5만 7000명이며,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 밖에 그린란드의 주요 산업으로는 관광업과 광업 등이 꼽힌다.
300여 년간 덴마크의 식민 지배를 받았지만 1953년 식민통치에서 벗어났고, 1979년 자치권을 부여받아 덴마크 자치령이 됐다. 2009년부터 자치 정부를 운영하고 있으며, 독립국에 준하는 자치권을 보장받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독립을 선언할 수 있다. 다만 경제적으로는 아직 자립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 부분을 덴마크 정부의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현재 덴마크의 지원 규모는 그린란드 전체 예산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연간 약 6억 달러(약 8700억 원) 정도다.
이처럼 이름만 ‘그린’란드이지 사실상 황무지와 다를 바 없는 척박한 땅이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트럼프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그린란드 매입을 재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트럼프는 “이는 국가 안보와 전세계의 자유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라고 주장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트럼프는 “그린란드는 놀라운 곳이며, 만일 미국의 일부가 된다면 엄청난 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매우 악랄한 외부 세계로부터 그린란드를 보호하고 소중히 여길 것이다. 그린란드를 다시 위대하게!(MAKE GREENLAND GREAT AGAIN!)”라며 노골적인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린란드와 더불어 파나마 운하의 소유권까지 되찾겠다고 밝힌 트럼프는 이를 위해 군사 개입이나 경제적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에 모호한 답을 내놓았다. 그저 “확실히 말할 수 없다”라거나, 두 지역이 “미국의 경제안보와 국가안보에 중요하다”라고만 답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혹여 그린란드 주민들이 덴마크로부터의 독립이나 미국으로의 편입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를 실시할 경우 이를 덴마크가 방해한다면 덴마크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니 지난 7일, 트럼프의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개인 전용기를 이용해 그린란드를 방문하자 덴마크와 그린란드는 물론, 전세계가 긴장했다. 비록 관광, 혹은 팟캐스트 영상 촬영차 방문했다고 말하면서 수도 누크에서 4~5시간 머물다 간 게 전부였지만, 과연 진짜 이유가 그것이었는지 의심하는 사람들은 많다.
트럼프 부자의 이런 도전적이고 저돌적인 행보에 덴마크 정부는 즉각 성명을 통해 불쾌함을 내비쳤다. 메테 프레데릭센 총리는 “그린란드는 판매 대상이 아니다”면서 “그린란드의 미래를 결정하고 정의내릴 수 있는 건 오직 그린란드뿐이다”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덴마크 왕실 역시 트럼프의 노골적인 태도를 비난하고 나섰다. 왕실 문장에 있는 북극곰을 크게 키워서 눈에 띄게 배치한 새로운 디자인의 왕실 문장을 선보이면서 앞으로도 그린란드가 덴마크 영토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 왕실 문장에서 북극곰은 그린란드를 상징한다. 또한 프레데릭 10세 국왕은 신년 연설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로 단결되어 있다…우리는 하나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린란드 역시 트럼프의 발언에 펄쩍 뛰고 있긴 마찬가지다. 무테 에게데 총리는 “그린란드는 우리의 땅이다. 우리는 매각 대상이 아니며, 앞으로도 결코 매각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다만 다른 한편에서는 언제든 독립을 선언할 수 있는 만큼 이참에 덴마크로부터 완전히 독립해야 한다는 조심스런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북극 안보 정치 및 외교 전문가인 마크 야콥센은 “그린란드가 과거 트럼프의 제안에 어떻게 반응했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령 2019년에는 트럼프의 제안을 ‘신식민주의적 도발’로만 여겼지만, 이번에는 ‘그린란드와 미국의 양국 관계를 강화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야콥센은 “2019년 트럼프의 제안 이후 북극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그린란드는 국제 정치에서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됐다”면서 “이는 그린란드의 독립을 향한 노력에 있어 중요하다. 물론 오늘날 대다수 그린란드 정치인들은 그린란드가 매각 대상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경제를 개선하려는 데는 관심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그린란드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요컨대 섬을 통째로 사기 위해서는 얼마를 지불해야 할까. 현재 시장에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가치 평가는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2019년 ‘워싱턴포스트’는 그린란드의 잠재적 가치를 약 1조 7000억 달러(약 2500조 원)로 추산한 바 있다. 또한 세계은행이 2021년 발표한 그린란드의 국내총생산이 32억 달러(약 4조 6000억 원)라는 점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 CNN은 그린란드의 가치는 미국이 얼마나 절실히 원하고, 왜 원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그린란드에 관심을 보인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가 처음은 아니다. 17대 대통령인 앤드류 존슨은 1867년, 그린란드 매입을 고려했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단, 비슷한 시기에 관심을 보였던 알래스카는 러시아로부터 매입하는 데 성공했다. 매입 금액은 720만 달러로, 오늘날의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약 1억 3000만 달러(약 1900억 원) 수준이다. 그 후 다시 그린란드 인수를 검토한 대통령은 해리 트루먼이었다. 1946년 트루먼은 덴마크에 1억 달러의 금을 제안했으며, 이는 현재 가치로 환산할 경우 약 14억 달러(약 2조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그럼 대체 미국은 왜 이렇게 그린란드에 집착하는 걸까. 최근 몇 년 동안 치열한 국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북극권에 위치한 그린란드는 오래 전부터 강대국들 사이에서 긴장의 고리였다. 그 이유로는 첫째, 희토류를 비롯한 광물과 석유, 천연가스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다는 점, 둘째, 북극 항로의 거점이라는 점(북극 얼음이 녹으면서 북극 항로가 열리기 시작하자 최단 거리로 유럽에서 아시아로, 또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통행할 수 있게 되면서 물류비용을 절감하게 됨), 셋째,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라는 점 등이 있다.
먼저 천연자원의 경우를 보자. 그린란드의 내륙 빙하는 전세계 담수 자원의 7%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방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또한 수백 혹은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석유와 천연가스는 북극권에서 세 번째로 많이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보다 중요한 사실은 미국이 ‘전략적 중요 광물’로 지정한 50가지 광물 가운데 37종이 그린란드에서 중간 또는 높은 수준으로 매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전자기기, 신재생 에너지, 군사 기술 분야 등 다양한 산업에 반드시 필요한 희토류는 현재 중국이 생산을 주도하고 있는 만큼 미국 입장에서는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자원이기도 하다.
둘째, 근래 들어 기후 변화에 따라 북극 빙하가 빠르게 녹아내리기 시작하면서 북서항로의 동쪽 관문에 있는 그린란드의 위치는 지정학적으로 더욱 중요해졌다. 실제 지구온난화로 인해 지난 30년 동안 그린란드에서는 약 2만 8500km²의 빙상과 빙하가 녹아내렸으며, 이는 매사추세츠주 크기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이 추세가 지속될 경우 북극 항로가 열리는 기간, 즉 여름이 점점 더 길어진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럴 경우 화물선이 그린란드의 영해인 북서항로를 통과하는 것이 가능해지며, 바로 이 점이 세계 강대국들이 그린란드에 관심을 기울이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그린란드를 통제하면 자연히 북서항로의 통제권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실제 최근 북극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해빙이 진행됨에 따라 지난 10년 동안 북극의 선박 통행량은 3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의 전 국가안보보좌관인 로버트 C. 오브라이언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그린란드는 북극에서 북미, 그리고 미국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다.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북극은 앞으로 가장 중요한 전장이 될 것이다. 기후가 점점 따뜻해지면서 북극은 파나마 운하를 대신할 수 있는 항로가 될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이런 점에서 그린란드는 군사 전략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있다. 특히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 반드시 차지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미 1951년부터 북극권에서 약 1200km 떨어진 최북단에 툴레 공군기지(현재 피투픽 우주 기지)를 운영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만일 미국이 그린란드를 인수한다면 북극권의 방위 인프라를 강화할 수 있게 되고, 이는 미국, 러시아, 중국 간의 지정학적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 될 수 있다.
물론 그린란드처럼 거대한 땅덩어리는 사겠다고 해서 덥석 살 수 있는 그런 매물은 아니다. 우선 재정적 측면에서 그렇다. 런던대학교 미주연구소의 이완 모건은 ‘CNN비즈니스’ 인터뷰에서 “골프장을 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라며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설령 매입을 한다고 해도 그 후 그린란드의 재정을 감당할 수 있는가도 문제다. ‘이코노믹타임스’에 따르면, 그린란드의 1인당 가처분 소득은 알래스카의 3분의 1 미만 수준이며, 이는 러시아를 제외한 북극 지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아울러 ‘이코노믹타임스’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왜 굳이 소유하려 하는가?’이다”라고 지적했다. 지정학적 측면에서 보면 이미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데다 1951년 덴마크와 맺은 방위 조약에 따라 사실상 그린란드를 방어하고 있는 셈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만일 광물 자원 확보가 목표라면, 실제 채굴 비용을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천문학적 금액을 지불하고 탐사권을 매입하는 건 시작에 불과하다. 그런 다음에도 노동력, 인프라 건설 등 막대한 추가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더욱이 북극의 혹독한 날씨는 자원 개발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미국 본토에서 1년이면 끝날 작업이 그린란드에서는 3~4년 걸릴 수 있고, 결국 개발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또한 ‘이코노믹타임스’는 미국이 가장 관심을 보이고 있는 희토류 매장지가 북극권 아래에 위치한 그린란드 남단 주변에 위치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굳이 그린란드 섬을 통째로 매입하는 게 합리적인지 의문을 던졌다. 이를 가리켜 ‘어쩌다 한 번 펜트하우스를 사용하기 위해 건물 전체를 매입하는 것과 같다’고 비꼬기도 했다.
트럼프의 야망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미국 내에서 넘어야 할 산도 많다. 트럼프 혼자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헌법상 이를 위해서는 우선 의회의 승인을 거쳐야 하며, 이에 따른 예산 책정도 필요하다. 다만 변수도 있다. 이미 트럼프가 지난 임기 때 의회의 예산권을 우회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트럼프는 의회가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예산을 승인하지 않자 국방부 예산을 통해 자금을 마련한 바 있다.
억만장자 말에 ‘팔랑’? 트럼프의 진짜 속내
트럼프는 정말 희토류 광물, 군사 기지 확보, 혹은 북극 항로 개척을 염두에 두고 그린란드를 탐내는 걸까.
사실 그린란드를 사들이겠다는 구상은 트럼프의 오랜 친구이자 에스티 로더 화장품 기업의 상속자인 로널드 로더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로더는 지난 정부 시절 트럼프와 이 문제에 대해 논의했으며, 이를 위해 덴마크 정부와 비공식적인 협상을 하는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었다.
이와 관련, MSNBC는 로더의 제안에 트럼프가 이렇게 집착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최근 들어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 트럼프의 성향을 엿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즉, 전문가들의 조언보다 동료 억만장자들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트럼프가 누군가의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향 때문에 그린란드에 집착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2019년 이미 한 차례 트럼프를 향해 거부 의사를 밝힌 덴마크 정부에 대한 반감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부동산 개발업자의 시각으로 그린란드를 바라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개발 가치가 있는 ‘금싸라기 부동산’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의 피터 베이커는 트럼프가 과거 인터뷰에서 한 발언을 소개했다. 당시 트럼프는 “나는 ‘왜 우리가 이걸 갖고 있지 않지?’라고 물었다. 지도를 보라. 나는 부동산 개발업자다. 길모퉁이를 보면서 ‘내가 짓고 있는 빌딩을 위해 저 가게를 사야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이 일도 그리 다를 게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트럼프는 “나는 지도 보는 걸 좋아한다. 이 크기를 보라. 엄청나지 않는가. 이건 미국의 일부가 돼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다만 베이커는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트럼프의 경력에 비추어 볼 때 그린란드에 대한 집착은 아이러니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요컨대 그린란드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미끼 상품이자 사기 부동산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 때문이다. 가령 대부분은 얼음으로 뒤덮인 척박한 땅인데도 불구하고 정착을 유도하기 위해 ‘푸른 땅(그린란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점이 그렇다.
또한 대부분의 일반 지도에서 보이는 그린란드의 크기는 극도로 왜곡되어 있다. 평면 지도에서는 거대한 땅덩어리처럼 보이지만, 이는 구형인 지구를 평면으로 펼치는 과정에서 생긴 시각적 왜곡 현상이다. 물론 그린란드가 큰 섬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트럼프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거대하지는 않다는 의미다.
다른 한편으로는 트럼프가 역사에 획을 긋는 업적을 남기려는 욕망 때문에 그린란드에 집착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런던대학교 미주연구소의 이완 모건은 2019년, “만일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 자신의 업적으로 삼기 위해 그린란드 인수를 더 강하게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으며, ‘월스트리트저널’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알래스카를 49번째 주로 승격해 업적을 남겼듯 트럼프 역시 그린란드를 자신의 치적으로 남길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