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헬로키티 의존 한때 실적 부진…‘키티보다 어린’ 창업주 손자 경영개혁 V자 반등, 시총 1조엔 돌파
#‘전설의 고양이’ 탄생 비화
산리오는 1960년 창립했다. 야마나시현 소속 공무원이던 쓰지 신타로가 자본금 100만 엔(약 923만 원)으로 설립한 ‘야마나시 실크회사’가 그 전신이다. 원래는 지방 특산물을 팔다가 점차 잡화사업으로 전환했다. 계기는 1962년 판매한 딸기무늬 손수건이었다. 상품에 귀여운 일러스트를 붙이자 판매량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 훗날 신타로는 “평범한 생활용품에 예쁜 캐릭터 하나만 들어가도 누군가를 감동시킬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1973년에는 회사명을 ‘산리오’로 바꾸고, 디자이너를 채용해 본격적으로 캐릭터 상품 개발에 나섰다. 그리고 1974년 ‘헬로키티’가 탄생한다. 당시 24세였던 디자이너 시미즈 유코가 빨간 리본을 단 하얀 고양이를 만든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듬해 헬로키티가 그려진 동전 지갑을 선보이자 반향은 컸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대히트였다.
이후 산리오는 캐릭터 전문기업으로 변모했다. ‘마이멜로디’ ‘리틀트윈스타’ 등 새로운 캐릭터가 속속 탄생하면서 헬로키티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1980년 3대 디자이너로 발탁된 야마구치 유코가 새 숨결을 불어넣으며 인기는 부활한다. 항상 앉아만 있던 키티가 일어나 테니스를 치고, 테디베어를 껴안는가 하면, 학교에도 갔다. 패셔너블한 모습에 사람들은 다시 헬로키티에 환호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의하면 “1984년 산리오의 매출은 717억 엔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해 가정용 게임기 ‘패밀리컴퓨터’를 막 출시한 닌텐도가 677억 엔, 완구대기업 반다이도 600억 엔 정도였으니 가히 산리오의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일본 시장과 달리 해외에서는 오랫동안 고전했다. 산리오는 1974년 미국에 자회사를 설립, 이후 1986년 창업주가 아들 쓰지 구니히코를 미국 자회사 사장으로 보낼 때까지 누적적자는 36억 엔에 달했다. 구니히코는 카탈로그와 상품을 트렁크에 담아 미국 대륙을 오가며 끈기 있게 판로를 넓혀갔다. 주로 오락거리가 적은 지방 도시를 중심으로 매장을 열었고, 산리오의 소품을 계속 제공했다.
‘일본에서 온 귀여운 고양이’를 좋아하던 아이들은 어느덧 어른이 됐고, 추억을 되새기며 다시 소비했다.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친구 같은 존재인 ‘키티’를 손에 쥐어줬다. 헬로키티는 이렇게 여러 세대를 아우르며 미국 시장에 침투해 갔다.
2000년대 후반에는 루이비통, 스와로브스키 같은 고급 브랜드와의 협업을 진행했다. 여기에 머라이어 캐리, 패리스 힐튼, 레이디 가가 등 유명인들의 간접 홍보도 해외 인기를 얻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들은 소셜미디어(SNS)에서 ‘헬로키티의 마니아’를 자처하며 키티에 대한 애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바닥 찍고 V자 부활한 비결
특히 10년 전 산리오는 뼈아픈 경험을 했다. 당시 북미를 중심으로 ‘헬로키티 열풍’이 일었고, 월마트를 비롯한 미국 내 기업들의 라이선스 덕분에 수익이 증가했다. 2014년 3월에 종료된 회계연도에는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헬로키티에 대한 의존도가 산리오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2014년 미국 월트디즈니 영화 ‘겨울왕국’이 크게 히트하자 헬로키티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수익이 점차 감소했고 산리오는 실적 부진에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더욱이 코로나 사태가 겹치면서 2021년 회계연도에는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에 빠졌지만, 이듬해 2022년 V자 반등으로 돌아섰다. 현지에서는 그 배경으로 “새로운 최고경영자(CEO)의 전략이 매출을 회복시켰다”라는 분석이 많다. 2020년 92세였던 산리오의 창업주는 손자인 쓰지 도모쿠니에게 회사를 물려줬다. CEO 교체는 1960년 회사 창립 이래 처음이었다. 당시 도모쿠니는 31세로 일본 상장기업 중 최연소 CEO였다. 1974년 탄생한 헬로키티보다는 14세나 어렸다.
일대 전환기를 맞아 도모쿠니는 개혁을 이어나갔다. 외부에서 젊은 인재들을 영입해 산리오 이사진의 평균 연령은 종전 65세에서 50세로 훨씬 젊어졌다. 의사결정 구조도 뿌리부터 바꿨다. 수뇌진이 결정하고 하부 조직에 지시하는 권위적인 방식이 아니라 숫자와 논리에 근거하고 소통을 중시하는 쪽으로 전환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디지털화는 물론, 글로벌 확장 전략도 적극 추진했다.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세계적인 브랜드와 타 업종과의 협업을 늘렸고, 로열티 수입액 확대로 단기간에 실적을 호전시켰다. 그 결과, 산리오 주가는 도모쿠니 CEO 취임 이후 10배 상승했다. “기대치를 뛰어넘는 놀라운 회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헬로키티에 대한 의존도도 대폭 낮췄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캐릭터의 인기와 인지도를 올리는 데 중점을 뒀다. 동영상 플랫폼 틱톡을 통해 산리오의 캐릭터 ‘쿠로미’가 크게 유행한 것도 훈풍으로 작용했다. 해외 매출에서 헬로키티가 차지하는 비중은 10년 전만 해도 90%가 넘었지만, 2024년 3월 회계연도에는 50%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탄생 50주년을 맞이한 헬로키티는 ‘포켓몬’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돈을 많이 버는 미디어 프랜차이즈가 됐다. 미국 CNN 방송에 의하면 “지금까지 헬로키티가 벌어들인 매출은 800억 달러(약 117조 원) 이상”이라고 한다. ‘해리포터’와 ‘스타워즈’를 뛰어넘는 인기다.
도모쿠니 CEO는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산리오에게 가장 유명한 자산은 헬로키티라는 사실을 여전히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역사를 거듭해도 질리지 않고 사랑받는 헬로키티가 되도록 브랜드를 지켜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는 것이 그의 각오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