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굶겼으면 위장이 텅텅 비었나”
▲ 창원서부경찰서는 지난 3일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뒤 주남저수지에 시체를 유기한 친엄마 최 아무개 씨(37)와 함께 현장검증을 실시했다. |
최 씨는 가정불화로 인해 아버지가 어머니를 칼로 찔렀고 병원으로 후송하는 과정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해 부모님을 모두 잃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이후 최 씨는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았으나 어디를 가도 ‘재수 없는 아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녀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둘째 아이만 데리고 나온 것도 이러한 기억 때문이었다. 최 씨는 유독 자신을 닮은 둘째 아이를 안타까워했다. 최 씨는 경찰에서 “둘째 아이가 엄마를 닮았단 이유로 아빠로부터 사랑도 못 받고 대소변도 제대로 가리지 못해 가족들의 구박을 받았다. 만약 혼자 집을 나간다면 둘째 아이는 이런 이유로 더욱 학대를 받을 것이고, 이를 걱정해 데리고 나왔다”면서 “하지만 집을 나온 후 아이가 음식도 잘 먹지 못하고 구토를 자주 하는 등 힘들게 해 같이 죽으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몇 해 전 최 씨 부부와 함께 살던 이웃도 “박 씨가 심성은 착한데 술만 마시면 딴 사람으로 변해 최 씨가 마음고생을 했다. 최 씨가 하소연할 때마다 둘째 아이 이야기도 했다. 자신을 닮아 남편이 아이를 싫어한다며 걱정했었다”고 말했다.
결국 최 씨는 범행 한 달 전부터 동반자살을 생각했고 부쩍 아이를 구타하는 횟수가 늘었다. 일주일 전엔 폭력이 더욱 심해졌다. 정 씨도 학대 사실을 알았지만 딱히 해결책을 찾진 못했다. 그러던 중 최 씨는 돌연 둘째 아들을 아빠에게 데려다 주겠다며 정 씨 부부에게 차를 태워줄 것을 부탁했다. 11월 25일 최 씨는 그렇게 아들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고 진해구의 한 공원 화장실과 인근 숲에서 아이를 손발로 구타해 뇌출혈로 사망케 했다.
이후 최 씨는 아이를 미리 준비해왔던 가방에 넣어 한 시간 뒤 자신을 데리러 오기로 했던 정 씨 부부의 차를 타고 주남저수지로 향했다. 아들을 보내 기분이 우울하다는 핑계로 드라이브를 하다 주남저수지에 도착한 최 씨는 남편이 주고 간 자신의 옷가지를 버리겠다며 가방을 들고 내렸다. 둑으로 내려간 최 씨는 가방 속에서 무거운 돌 두 개를 집어넣으려 했으나 공간이 여의치 않자 아들의 시신을 꺼내 겉옷을 벗기는 대담함도 보였다.
이처럼 완전범죄를 꿈꾸던 최 씨의 범행은 사건 이튿날 사체가 발견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방송을 본 정 씨가 최 씨를 추궁했고 결국 자수하기에 이른 것. 최 씨는 처음 경찰 진술에서는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설명했으나 조사 결과 계획적인 살인으로 밝혀져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됐다.
이렇게 사건은 마무리되는가 싶었지만 아버지 박 씨는 최 씨가 자신의 범행을 합리화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며 진실을 밝히고자 나섰다. 박 씨가 기억하는 둘째 아들의 모습은 유난히 아빠를 따르는 ‘밝은 아이’였다. 연년생으로 태어난 삼형제 덕분에 집안도 늘 시끌벅적했다. 아이들 모두 직업군인인 아빠를 좋아해 퇴근 후나 주말이면 늘 붙어 지냈다. 어린 아이들을 집에만 가둬둘 수 없었기에 나들이를 떠나거나 친척집을 방문하는 일도 잦았다.
특히 박 씨의 여동생이자 아이들의 고모가 유독 조카를 귀여워해 자주 만남을 가졌다. 연년생이다 보니 엄마 혼자서는 아이들을 돌보기가 벅차 고모 집에서 생활하는 날도 많았다. 고모는 직접 기저귀도 갈아주는 등 친자식이나 다름없이 조카들을 함께 키웠다고 한다. 이 때문에 고모 박 아무개 씨는 “내가 어떻게 그 아이를 키웠는데 누구 마음대로 죽인 것이냐”며 “자기 자식 죽일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위자료를 내놓으라고 하는지 그 뻔뻔스러움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박 씨도 둘째 아들이 구박을 받았다는 말은 오로지 본인의 생각일 뿐이라고 못 박았다. 박 씨는 “둘째 아들이 유독 엄마를 닮아 내가 평소에도 구박을 했다고 말하는데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 친척들도 세 아이 모두를 아꼈다. 오히려 둘째 아들은 내가 없으면 밤에 잠도 못 자는 아이였다. 아이들이 얼마나 솔직한데 내가 구박을 했으면 어찌 그렇게 날 잘 따랐겠느냐”고 반문했다.
아이의 행동발달에 대한 부분도 의문을 품었다. 최 씨는 아이가 평소 대소변도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음식섭취도 원활하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박 씨는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박 씨는 “우리와 함께 살 때는 아이의 몸무게가 15kg이나 나갔다. 간혹 심하게 울면 구토를 하기도 했지만 이는 보통의 아이도 마찬가지다. 먹는 걸 좋아하던 아이인데 위장에서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니 애 엄마가 얼마나 굶긴 것인지 속상할 뿐이다”고 말했다.
오히려 박 씨는 아이가 집을 나가면서 정서적인 불안에 시달렸을 것이라 주장했다. 박 씨는 “아빠가 없으니 잠도 제대로 못 잤을 것이고 남의 집이라 눈치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얼마나 불안했으면 잘 가리던 대소변 실수도 했겠느냐. 아이를 데려오고 싶어 몇 번이나 연락을 시도했지만 이혼소송이 잘 마무리되면 보내 줄 테니 걱정 말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런데 이렇게 시신으로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힘겹게 인터뷰를 진행하던 박 씨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유치장에 있던 최 씨를 면회했지만 아무 말도 못 들었다. 도대체 왜 애를 죽인 것인지 모르겠다. 부디 아이가 편히 쉴 수 있도록 충분한 죗값을 치르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