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땐 굴뚝에 연기만 모락?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77)의 재기설이 또 다시 피어오르고 있다. 지난 2007년 특별사면 이후 김 전 회장의 경영 복귀설 혹은 재기설은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김 전 회장은 1999년 10월 대우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해외로 도피, 2005년 귀국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6년 징역 8년 6월과 벌금 1000만 원, 추징금 17조 9253억 원을 선고받아 사실상 재기가 물 건너 간 셈이었다. 그럼에도 김 전 회장의 재기설은 끊이지 않았다. 최근에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친동생 박지만 EG 회장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대선 결과에 따라 대우건설 인수설까지 나올 만큼 꽤 구체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도대체 가능하기는 한 걸까?
최근 흘러나온 김우중 전 회장 재기설의 배경엔 박지만 EG 회장이 있다. 지금의 박 회장이 있기까지 김 전 회장의 도움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김 전 회장은 1990년 박 회장이 EG(당시 삼양산업)의 최대주주가 되는 과정에서 자금을 대준 바 있다. 또 김 전 회장의 부친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대구사범고등학교 스승이기도 하다.
‘박정희-박태준-김우중’으로 이어지는 인연은 매우 끈끈하다. 박지만 EG 회장이 방황을 끝내고 정착하는 데 ‘박태준-김우중 라인’이 큰 역할을 했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 같은 인연으로 오는 19일 치르는 대선 결과에 따라 김 전 회장이 재기할 수 있는 길이 열릴지 모른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전직 대우 임직원들이 주축이 된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김 전 회장의 ‘세계경영’의 이념을 이어가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점도 김 전 회장 재기설에 힘을 보태고 있다. 김 전 회장이 재기한다면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그 발판이 될 수밖에 없다. 대우그룹 출신 임원들의 모임인 ‘우인회’도 건재하다. 김 전 회장 역시 올해와 지난해 대우그룹 창립기념행사에 꼬박꼬박 참석할 만큼 옛 ‘대우맨’들과 인연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짧은 일정이긴 하지만 베트남에 거주하며 옛 대우맨들과 접촉하는 것을 단순히 보아 넘길 수는 없다.
김 전 회장과 가장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측은 “회장님께서는 재기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며 “여생 동안 본인이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조언해주는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창립기념행사 참석과 관련해서는 “대우그룹 창업자로서 자리를 빛내 주십사하고 초대하는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이번에 등장한 김 전 회장의 재기설에서 주목할 점은 김 전 회장이 대우건설을 인수하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의 숙원사업 중 하나였던 베트남 하노이 신도시 개발을 대우건설이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 전 회장이 주인 없는 대우건설을 찾아온다면 옛 대우그룹을 재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산업은행이 최대주주로 있는 대우건설의 재매각은 불가피한 상태다. 베트남에 인적 네트워크가 풍부하고 현재 베트남에 거주하고 있는 김 전 회장이 하노이 신도시 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대우건설을 손에 넣는다면 옛 대우그룹의 재건은 시간문제가 된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의 대우건설 인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는 재계 인사가 대부분이다. 재계 관계자는 “추징금도 내지 못한 김 전 회장이 무슨 자금으로 대우건설 인수전에 뛰어들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설사 뛰어든다 해도 비판 여론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며 인수 가능성을 일축했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의 뜻과 관계없이 몇몇 전직 임원이 김 전 회장을 끌고 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금화 대우세계경영연구회 국장은 “차라리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며 “누가 인수해서 회장님을 전문경영인으로 모셔 가면 모를까 지금으로선 터무니없는 소문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증권가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김 전 회장의 대우건설 인수설은 실은 엉뚱한 곳에 기인한다는 주장도 있다. 과거 대우그룹 시절 그룹의 마지막 구조조정본부장을 지냈던 김우일 대우M&A 대표(대전 우송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우건설이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온다면 대우M&A가 적극적으로 인수를 추진하겠다는 얘기가 와전됐다고 주장한다. 김 대표는 현재 대우건설 인수를 준비하기 위해 해외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해외 투자자들이 김우중 전 회장의 존재를 언급하며 불확실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
김 대표는 “김 전 회장이 경영에 참여하거나 대우건설 인수를 지휘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인수가 성사됐을 경우 김 전 회장을 명예회장 형식으로 영입해 해외 마케팅 능력과 브랜드 네임 등을 활용할 의향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같은 점들을 해외 투자자들에게도 다 털어놓았다”며 “이것이 증권가를 중심으로 와전돼 마치 김 전 회장이 대우건설을 인수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퍼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대표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김 전 회장의 뜻을 기리고 김 전 회장과 접촉도 가장 많은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측이 김우일 대표의 존재와 발언들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측은 “우리와 교류가 없는 사람이고 그의 말을 믿지도 않는다”며 “그 사람이 대우건설을 인수하려 하든 말든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간간이 튀어나오던 김우중 전 회장의 재기설은 대부분 과장된 것으로 판명됐다. 그렇다고 김 전 회장이 1999년 해외도피를 시작하면서 전혀 재기를 꿈꾸지 않았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1999년 대우그룹이 무너지자마자 도피생활을 시작했던 김 전 회장이 6년 만인 2005년 귀국한 것은 실은 국내에서 재기를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베트남에 인적 네트워크가 풍부한 김 전 회장은 베트남 하노이 신도시 개발사업을 기반으로 재기를 꿈꾸었다는 것.
하지만 인터폴 수배자의 신분으로 재기하기 어려워 신변과 법적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귀국했지만 ‘쉽게 풀릴 것’이라는 귀국 전의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은 징역형과 추징금까지 맞으면서 재기의 꿈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는 것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