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배 이미선 정계선 편향성 제기, 정계선 기피신청 기각…‘자신들 안위 도모, 윤에 오히려 불리’ 예측
#국민의힘, 헌재 편향 시비
‘내란 우두머리’ 혐의가 적시된 윤석열 대통령 수색영장이 발부되기 하루 전인 1월 6일 국민의힘에서는 헌재 폐지 주장이 나왔다. 이날 권성동 원내대표와 3선 이상 중진 의원들은 헌재를 항의 방문했다. 권 원내대표는 헌재가 민주당과 ‘짬짜미’로 탄핵 심판을 편향적이고 불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판사 출신인 조배숙 의원은 “헌재가 너무 정치 편향적이다. 헌법재판소를 없애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이후 권 원내대표는 헌재와 민주당 내통 의혹을 꾸준히 제기했다. 1월 16일 비상대책위원회에서는 “대통령 탄핵심판은 민주당이 바라는 대로 토끼 뛰듯이 처리하고, 한덕수 국무총리를 포함한 다른 탄핵심판은 민주당이 원하는 대로 거북이 걷듯 처리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측은 불공정 재판 배경에 민주당과 우리법연구회 출신 법관들의 ‘정치·사법 카르텔’이 있다고 의심한다. 우리법연구회는 진보 성향 법관 모임으로 알려져 있다. 문형배 헌재 소장 권한대행, 이미선·정계선 재판관 등이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문 권한대행은 사법연수원 동기다. 둘은 2011~2013년 사이 SNS(소셜미디어)로 최소 7차례 정치적·개인적 현안에 대해 얘기를 나눴던 사실이 공개됐다.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인 2011년 7월 문 권한대행 페이스북에 “문판(문형배 판사)님 잘 계시죠? 마나님께 안부를”이라고 댓글을 달았다. 그러자 문 권한대행은 “시장님 고생 많으시죠”라고 답했다.
문 권한대행이 과거 SNS에 올린 글도 논란이 됐다. 문 권한대행은 판사 시절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냈다. 2010년경 그는 당시 트위터(지금의 X)에 “굳이 분류하자면 우리법연구회 내부에서 제가 제일 왼쪽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같은 해 블로그에는 유엔군 참전 용사 묘역을 다녀온 다음 “전쟁의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려는 자들”이라는 글을 게시했다. 유엔군 희생을 폄훼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문 권한대행은 “전쟁의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려는 자들은 북한을 가리키고, 통일을 핑계 댄 그들의 침략을 규탄한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권 원내대표는 문 권한대행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가까운 인물이기 때문에 공정한 탄핵 심판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권 원내대표는 문 권한대행이 2020년 이재명 민주당 대표 모친상 때 문상을 갔고, 이 사실을 ‘자랑삼아’ 헌재 관계자들에게 이야기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고 말했다.
헌재는 문 권한대행이 문상을 가거나 조의금을 낸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권 원내대표는 “내가 잘못 전해들은 것 같다”고 말을 거둬들였다. 그러나 이 대표와 문 권한대행이 가까운 사이기 때문에 탄핵 심판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입장은 고수했다.
국민의힘은 이미선·정계선 재판관도 탄핵 심판에서 빠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둘이 우리법연구회 출신이고, 가족들이 탄핵 심판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어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없다는 이유다.
국민의힘은 이미선 재판관 친동생인 이상희 변호사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윤석열 퇴진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고 밝혔다. 특위는 최상목 권한대행의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 임명 보류가 위헌이라며 헌재에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특위 측은 재판관이 임명되지 않아 헌법 제27조에 규정된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계선 재판관의 남편 황필규 변호사는 윤 대통령 탄핵 촉구 시국선언에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변호사는 국회 측 대리인단 공동대표인 김이수 변호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공익 재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정 재판관은 인사청문회에서 “김 전 재판관이 사회봉사 일환으로 해당 법인에서 이사장직을 맡은 걸로 알고 있고 이해관계 충돌은 없다”고 했다.
여권에선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심판 결과를 두고도 재판관들이 이념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증거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 위원장 탄핵안은 기각됐다. 문형배 이미선 정정미 정계선 재판관이 인용 결정을 내렸고, 김형두 정형식 김복형 조한창 재판관은 기각 의견을 냈다.
#기피신청 하루 만에 기각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헌재 탄핵 심판 1차 변론기일 전날인 1월 13일 정계선 재판관에 대한 기피신청서를 제출했다. 윤 대통령 측 윤갑근 변호사는 정 재판관이 우리법연구회 회원이고, 배우자 황필규 변호사가 활동하는 재단 이사장 김이수 변호사가 국회 측 대리인단에 속해 있다고 했다. 정 재판관이 인사청문회 때 탄핵 심판에 대한 강한 예단을 드러냈다고도 했다. 국민의힘이 거론한 의혹과 일맥상통하는 주장이다.
1월 14일 헌재는 정계선 재판관을 제외한 7명의 일치된 의견으로 기피신청을 기각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불공정한 심판이 될지도 모른다는 당사자의 주관적인 의혹만으로는 기피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기피 사유는 통상인의 판단으로 재판관과 사건의 관계로 보아 불공정한 심판을 할 것이라는 의혹을 갖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인정될 만큼의 객관적인 사정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전원 일치 기각은 헌재가 편향성 의혹을 일축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한 교수는 “한국은 ‘관료적 법관제’를 취하고 있다. 적어도 ‘형식적 합리성’을 추구한다. 법관의 정치적 성향이나 태도나 가치관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그렇게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헌재 재판관 판결 성향을 분석한 결과 재판관들은 자기를 지명한 사람에 충성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했다. 재판관 개인의 정치적 성향에 앞서 지명자의 성향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재판관 지명권자는 국회·대법원장·대통령이 각각 3명씩 지명할 수 있다. 한 교수는 “지명권자를 다양화시켜 재판관들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결정을 만들어내겠다는 게 기본 취지”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공세를 늦추지 않는 모습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1월 30일 편향성 의혹을 다시 거론하며 “헌재법 제24조는 공정한 심판이 어려울 경우 재판관 회피나 기피를 규정하고 있다”며 “우리법연구회 출신 재판관들은 법률가로서 양심을 지킬 것인지 아니면 좌파 세도정치를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헌재 심판 불복도 염두에 두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탄핵심판을 했을 경우 과연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겠느냐. 깨끗하게 승복할 수 있겠느냐는 차원에서 봤을 때 스스로 회피를 신청해야 마땅하다”고 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노골적으로 헌재 흔들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1월 30일 이건태 민주당 법률 대변인은 “국민의힘은 문형배 헌법재판관이 오래전 쓴 글이나 15년 전 연수원 동기인 이재명 대표와 SNS에서 나눈 짧은 안부 글을 문제 삼아 헌법재판소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공격했다”며 “이런 식이면 윤석열과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인 헌법재판관 7명도 재판에서 손을 떼야 마땅하다”고 했다.
이건태 대변인은 “극우 유튜버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한심한 주장”이라며 “되지도 않을 음모론을 유포하며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을 모욕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힘이 헌법재판소 흔들기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며 “윤석열에 대한 탄핵 인용을 대비해 불복할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에선 이 같은 헌재 흔들기가 서부지법 폭동과 유사한 폭력 사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부지법 폭동 때 윤 대통령 극렬 지지자들은 국민의힘 의원들의 발언을 보며 행동 동력을 얻는 모습을 보였다. 헌재에서 윤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면 극렬 지지자들이 권성동 원내대표 등의 발언을 인용하며 집단으로 반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헌재 결정은 최종 판단이다. 뒤집을 법적 절차는 없다(관련기사 트럼프의 ‘큐아논’처럼? 서부지법 ‘폭동의 밤’ 앞장선 극우 커뮤니티 실체).
한 교수는 “(헌재의 정치적 편향 의혹 제기는) 윤석열 피청구인을 위한 행동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피청구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 같다”며 “이는 헌재와 헌법 질서를 뒤흔들면서 자신의 정치적 안위만 도모하는 행태라고 봐야 된다”고 분석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조경태 의원은 1월 30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권 원내대표 발언은) 아주 불순한 의도라고 생각한다”며 “헌법재판소에서 판결이 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저는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간에 인정하고 수용해야 된다는 그런 입장”이라고 말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31일 정례브리핑에서 “대통령 탄핵 심판의 심리 대상은 피청구인(윤 대통령)의 행위가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 되는지와 그 위반 정도가 중대한지 여부다. 이에 대한 판단은 헌법과 법률을 객관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이뤄지는 것이지 재판관 개인 성향에 의해 좌우되는 건 아니다”라며 “정치권과 언론에서 재판관의 개인 성향을 획일적으로 단정 짓고 탄핵 심판의 본질을 왜곡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한 사법부 권한 침해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바이다”고 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