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부인·다툼’ 전략 구사 구심점 노려…박근혜 탄핵 때 ‘분열’, 이번엔 단일대오 양상
#민심 들어보니 “진짜더라”
국민의힘 지지율은 12·3 비상계엄 선포 후 더불어민주당에 일방적으로 밀렸다. 하지만 설 연휴 전 발표된 복수의 여론조사에선 민주당과 비등하거나 심지어는 앞선다는, 골든크로스까지 연이어 나왔다. 오히려 계엄 이전보다 더 민주당과의 격차를 벌린 수치까지 있었다.
여권 잠룡들과 민주당 이재명 대표 간 가상 대선 대결에서도 박빙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찬성 의견도 최근 들어서는 떨어지는 추세다. 이로 인해 일부 조사에서는 정권연장을 원하는 응답자 비율이 정권교체보다 더 높은 기현상도 나타나는 중이다.
이러한 흐름이 지역구 설 민심 청취에서 직접 확인됐다는 목소리가 설 연휴 직후 여당 내에서 쏟아졌다. 지역구에서 설 민심을 듣고 온 여권 의원들은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국민의힘 핵심 지지층이 밀집해있는 영남권뿐 아니라 수도권 의원들조차 “여당이 기운을 차리라”는 목소리가 많았다면서 상기된 표정을 보이는 이들이 다수였다.
서울이 지역구인 나경원 의원은 1월 28일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설 연휴 지역 곳곳을 돌며 민심을 만나니 응원과 걱정이 많으셨다”며 “민주당의 사기 줄탄핵, 대통령 불법 수사·기소로 나라가 위기인데 왜 다들 조기 대선 잿밥에만 관심이 있느냐. 열심히 싸우라”고 꾸짖었다고 설명했다.
나 의원은 “거리의 2030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당 지지율이 그나마 나아지니 기회주의자들이 왜 나서느냐”라며 “민주당 사기탄핵에 동조했던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고 전했다. 당내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의원들에 대한 질타가 있었다는 의미였다.
대구·경북(TK)이 지역구인 국민의힘 한 의원은 “12·3 계엄 사태 직후 TK 중도층 여론은 ‘아무리 야당이 잘못해도 군대를 동원한 계엄은 아니지 않느냐’는 의견이 많았다”며 “하지만 최근 민심을 들어보면 ‘야당이 상식 밖의 심각한 국정혼란을 부추겼고 오죽했으면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까지 했겠나’라는 우호 여론으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윤, 여권 구심점 노린다
여권 지지율이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상승세를 보이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여당 1호당원 구심점이 건재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탄핵 소추된 것은 물론,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체포·구속까지 됐는데도 윤 대통령은 방어권을 행사하면서 다양한 메시지를 발신, ‘옥중 정치’에 나섰다. 탄핵 소추된 뒤 청와대 관저에서 칩거하며 두문불출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다른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내란 혐의에 대해 강력히 부인했다. 1월 28일 석동현 변호사는 서울구치소에 수용된 윤 대통령을 접견한 뒤 “(윤 대통령이) ‘이번 계엄이 왜 내란이냐, 어떻게 내란이 될 수 있느냐’고 말했다”고 전했다.
석 변호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거대 야당이 지배하는 국회 독재 때문에 나라가 위기에 처한 것으로 대통령으로서 판단해 주권자인 국민에게 위기 사항을 알리고 호소하고자 헌법상의 권한으로 계엄을 선포했다”며 “국회가 헌법에 정한 방법으로 해제를 요구함에 따라서 즉각 해제했다. 모든 게 헌법 테두리 내에서 이뤄진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또 “유혈 사태가 있었나. 인명 사고가 단 한 건이라도 있었느냐. 정치인들 단 한 명이라도 체포하거나 끌어낸 적이 있느냐. 그런 시도라도 한 적이 있느냐. 이게 어떻게 내란이 될 수 있느냐”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석 변호사는 밝혔다.
윤 대통령은 처음부터 계엄 사태를 오래 유지한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도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계엄을 유지하려고 하면 계엄 상태에서 행정·사법을 어떻게 운영한다는 정치 프로그램이 있어야 할 것인데 그런 프로그램을 전혀 준비한 적도 없고 실제 없지 않았냐”고 했다고 석 변호사는 얘기했다.
윤 대통령은 최근 늘어난 2030 지지층을 향한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석 변호사는 “대통령은 자신의 고초에는 아무 말도 안 했다”면서 “다만 무엇보다 나라의 앞날이 걱정되고, 국민 중에 하루하루가 지내기 어려운 분들이 많은데 추위와 생계에 얼마나 힘이 들까 하는 걱정과 꿈을 키워야 하는 청년들 미래 세대들이 현실에 좌절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더 걱정된다”는 말도 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부인 전략’ 외에도 법조인 출신답게 ‘다투는 전략’도 적극 구사하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가 불법이므로 검찰의 기소 또한 불법의 연장”이라고 거듭 주장하는 것은 그 연장선이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1월 27일 입장문을 내고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에 대해서는 그로 인해 파생된 증거 역시 위법하다는 독수독과 이론을 들어 “독이 있는 나무에는 독이 있는 열매가 맺힐 뿐”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독수의 과실 이론은 적법 절차에 따르지 않은 위법행위를 기초로 증거가 수집된 경우 이 증거뿐 아니라 이를 토대로 획득한 2차적 증거도 증거능력이 부정된다는 이론이다. 판례도 원칙적으로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입장이다.
변호인단은 이번 입장문을 통해 향후 재판에서도 내란죄 수사권의 위법성, 그런 위법 수사에서 비롯된 기소의 문제점 등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을 둘러싼 주장을 펼칠 것을 예고했다. 변호인단은 “대통령에 대한 수사권이 없던 검찰과 공수처는 직권남용을 지렛대로 삼아 대통령 수사를 시작했다”며 “정작 수사권이 있는 직권남용에 대한 수사는 제쳐두고 내란 몰이에만 집중했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 탄핵 심리에 윤 대통령이 직접 나오는 것도 ‘다투는 전략’의 일환이다. 윤 대통령은 헌재 탄핵 심리에 직접 나와 계엄에 이르게 된 불가피성을 적극 설명하는 한편, 내란이 아니라는 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법조인 출신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윤 대통령은 8년 전 국정농단 특검팀 수사팀장으로 수사를 총지휘, 박 전 대통령 탄핵 인용의 법리적 근거를 제공한 주역이었다. 현직 대통령 수사 과정 및 탄핵 심판을 법률가로서 면밀히 들여다봤다. 이제 입장이 정반대로 바뀌었으니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정면 대응하고 있는 것이고 이런 경험이 현재 윤 대통령의 자신감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다.”
윤 대통령 중심으로 여당이 결집하는 모습도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국민의힘 ‘탄핵반대 당협위원장 모임’에 속한 원외 당협위원장 80명은 설 당일인 1월 29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윤석열 대통령에게 새해 편지를 전달했다. 이들은 편지에 “구치소에 계시니 전국 방방곡곡에서 찾아온 당원 시민들과 인사와 덕담을 나눌 수도 없고 참으로 안타깝고 애통하다”며 “대한민국의 역사와 밝은 미래를 위해 대통령님과 한마음으로 언제나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적었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2월 초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윤석열 대통령 접견을 추진한다.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 전·현직 참모들도 설 연휴 이후 윤 대통령 접견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접견이 잦아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윤 대통령의 ‘옥중 여론 정치’는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윤 대통령의 메지지 발신, 그리고 윤 대통령을 방문한 정치인들의 전언 정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면서 윤 대통령 스피커는 더 늘어나는 모양새다.
#여당은 단일대오
8년 전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여당은 분열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 한 달여 만인 2017년 1월 24일,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에서 갈라져 나온 바른정당은 중앙당 창당대회를 열었다. 현역의원 31명을 둔 원내 제4당으로 올라선 바른정당은 여권을 완전히 쪼개 놨다. 현재 국민의힘 원내대표인 권성동 의원, TK 대표 정치인 중의 한명인 주호영 현 국회부의장도 당시 바른정당 주축이었다.
분열의 결과는 뻔했다. 이내 닥쳐온 조기 대선 국면에서 여권 대선 후보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가 손쉽게 승리를 가져갔다. 요즘 연일 스피커를 가동하는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를 두고 ‘거저먹었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8년 전 기억을 되살리자”는 구호를 연일 외치면서 “분열만은 안 된다”고 뭉치는 형국이다. 구심력은 강하게 작용하고 있고 원심력이 설 공간은 없어 보인다.
설 민심 확인을 통해 기세가 오른 여당은 자신감에 찬 행보도 보이고 있다. 여당은 조기 대선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지만, 물밑에서는 선거의 승패를 가를 중도층 공략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당 전략기획특별위원회는 ‘보수 진영 재건 및 당 지지기반 확대’를 기조로 설 연휴 이후 당 개혁 릴레이 세미나를 개최한다. 최근 지지율 추이 등을 분석한 정기 보고서 발간도 계획 하고 있다. 경제활력민생특별위원회와 정책위원회는 2월 중 구체적인 민생·경제 정책 발표를 목표로 활동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이번 설에 만난 지역구민들은 ‘젊은 청년들이 탄핵 반대 시위에 나선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목소리를 많이 냈다”며 “자고 나면 과거만 들춰내며 툭하면 탄핵을 하는 민주당으로는 우리나라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젊은이들의 비명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고 이 대안으로 유능한 여당을 다시 지지하는 것이며 만약 조기 대선이 열린다면 전망이 정말 밝다”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