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경영 VS 현장중시 피는 못속여
대한민국 대표 기업집단 삼성과 현대차. 이병철 정주영 두 창업주 시대부터 두 재벌은 늘 비교의 대상이었다. 이 두 재벌은 이제 이건희 정몽구라는 2세대를 거쳐 3세대로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3세대 주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와 정의선 기아자동차 사장. ‘대관식’을 앞둔 두 ‘황태자’를 오프닝 게임으로 맞붙였다.
80년대 중반까지 한국 재계의 중심이 이병철 회장(87년 작고)이었다면 중공업시대가 열린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말까지는 중공업의 화신인 현대 정주영 회장(2001년 작고)의 시대였다.
정주영 회장의 작고 이후 현대그룹이 분할되면서 재계 1위는 다시 삼성이 됐다. 동력은 반도체.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이병철 회장 생전에 투자결정을 내린 삼성의 신수종 사업, 진출 이후 20여년 만에 화려한 꽃을 피운 셈이다.
삼성과 현대는 공교롭게도 3세대에 접어들면서 비슷한 시기에 ‘권력 이양’을 준비 중이다. 이재용 전무와 정의선 사장은 각각 이건희 회장과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이다. 아들 중심의 한국 정서에서 볼 때 대권 승계는 ‘잡음’ 소지가 거의 없다. 삼남인 이건희 회장의 총수 등극과 ‘형제의 난’이 있었던 정몽구 회장. 아버지 세대와는 한참 다른 셈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맞장’을 떠보자.
이 전무는 1968년생 원숭이띠로 올해 39세. 경복고등학교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나왔다. 이후 일본 게이오대학교에서 경영관리연구 석사를 땄고 미국 하버드대학교 비즈니스스쿨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이 전무보다 두 살 어린 정의선 사장은 1970년생 개띠. 휘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를 했다.
경영수업은 형뻘인 이 전무가 훨씬 빨랐다. 이 전무는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 2001년 상무보를 거쳐 2003년 상무로 승진했고 올 1월 전무(최고고객책임자·CCO)가 됐다. 정 사장은 이 전무보다 8년 늦은 1999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했지만 승진은 빨랐다. 2001년 상무, 2002년 전무, 2003년 부사장, 2005년에 사장 직함을 달았다. 두 사람의 3세대 경영체제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두 ‘황태자’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얘기는 언제나 재계의 핫뉴스다. 이들의 경영권 승계는 어디까지 왔을까.
▲ 2003년 8월 고 정몽헌 회장 빈소에서 만난 정의선 사장(왼쪽)과 이재용 전무. | ||
정 사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은 이 전무보다 훨씬 더디고 힘겨워 보인다. 현대차그룹도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로 지배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지금껏 정 사장은 비상장 계열사를 상장, ‘실탄’을 만들어 핵심 계열사 지분을 늘리는 방식으로 승계 작업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이 와중에 현대차 비자금 사건이 터졌고 세무조사까지 받고 있다. 이 세무조사가 승계 작업까지 파헤칠 것이라는 시각도 크다. 꼬여도 심하게 꼬인 셈이다.
지금 승계 작업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두 사람이 삼성과 현대차라는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집단을 물려받을 것이라는 사실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결국 이들의 활약에 따라 한국경제의 미래가 좌우되는 셈이다. 그래서 이들이 어떤 생각을 품고 어떻게 움직일지는 벌써부터 관심의 대상이다.
대내외의 평가를 보면 이들은 역시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철학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이 전무는 할아버지의 창업이념인 ‘인재경영’을 중시한다고 전해진다. 그의 집무실에는 <삼국지>의 유비가 제갈공명을 얻기 위해 행한 ‘삼고초려도’가 걸려있을 정도다.
할아버지가 끔찍이 아껴 늘 곁에 뒀다는 정 사장도 정주영 명예회장 스타일을 닮으려 노력한다. 바로 ‘현장경영’. 물론 이는 부친 정몽구 회장에 이어서 내려온 것이기도 하다. 정 사장은 국내 공장뿐 아니라 해외 공장도 자주 찾는 것으로 알려진다.
밖으로 알려진 스타일 역시 대조적이다. 이 전무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삼성라이온즈를 응원하러 가기도 하는데 그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섬세, 가정적’이란 수식어가 덧붙는 순간이다.
정 사장은 회사 직원들과 어울려 산행을 갔다가 허물없이 어울리며 뒤풀이 시간에 마이크를 잡고 노래 한자락을 뽑아내는 사진이 유출된 적이 있다. ‘소탈, 격의없음’이란 수식어를 얻게 된 셈.
이 두 사람은 정주영 회장의 빈소에서 몇 시간씩 붙어앉아 얘기를 나누는 등 의기투합했다고 한다. 그들의 리더십에 따라 한국 양대 재벌의 미래와 한국 경제의 미래가 달려있기에 이들의 행보는 더욱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