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주민 의견 모아 영화 촬영지 및 전시·공연·체험 장소 조성…폐공간이 지역 문화자원으로 재형성

장흥군은 2019년 1월 약 32억 원을 들여 옛 교도소 터를 사들였다.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 ‘2020년 유휴공간 문화재생사업’ 공모에 선정돼 사업비 103억 원이 투입됐고 현재 빠삐용집을 조성 중(현재 부분 개장된 상태로 오는 5월 전체 개장 예정이다)이다. 조성 중이라고 해도 이미 영화인들에게는 잘 알려진 장소다. 지난 5년간 약 70편에 달하는 영화와 드라마의 교도소 촬영지였다. ‘더 글로리’, ‘슬기로운 감빵생활’, ‘1987’, ‘밀수’ 등 영화·드라마를 이곳에서 촬영했다. 그래서인지 이유 없이 익숙하다는 느낌마저 드는 곳이다.
빠삐용집 조성 추진 과정도 흥미롭다. 장흥군은 이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전문가와 지역 문화예술단체, 주민배심단으로부터 옛 장흥교도소 활용에 대한 의견을 모았고 심지어 어린이의회의 의견도 수렴했다. 모인 내용은 “예술 전시관과 청소년 체험시설 등 특성에 맞는 문학 공간”, “영화 촬영지, 영화제 행사장”, “휴게 공간과 문화예술 전시·공연 공간” 등이었고, 이를 최대한 반영한 공간으로 빠삐용집 프로젝트를 추진했다고 한다.
빠삐용집은 옛 교도소 건물 전체 중 6동을 리모델링하였다. 내부 시설 중 전시관은 장흥교도소 아카이브, 교정 역사전시관이 현재 준비를 마쳤고, ‘접견 체험장·글감옥(일명 글빵)·영화로운 책방’ 등이 본격 오픈을 예정하고 있다.
‘영화로운 책방’은 영화강좌나 관련 서적이 있는 복합공간이다. 이곳에는 자주 찾는 영화인들을 위해 한국영상자료원과 업무협약을 맺어서 ‘고전 한국 영화’ 및 ‘영화 대본’은 영상자료원을 방문하지 않고도 무료로 열람 가능하다. ‘교정역사전시관’은 일제강점기 감옥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는 교정시설의 역사를 관람할 수 있고, ‘글감옥(일명 글빵)’은 여성 죄수들이 수용됐던 공간으로서 1일 최대 6시간까지 머무르며 글을 쓰는 장소로 바뀐다. 이색적인 체험숙박시설(프리즌 호텔)도 운영을 준비 중이다. 원래 미결수들의 공간인데 이러한 감옥 콘셉트를 지닌 숙박시설에서 새로운 문화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아 보인다. 주민친화형 프로그램으로 ‘마음은 콩밭’도 있다. 교도소 담장 안쪽의 공터에 텃밭을 만들어 직접 콩 농사를 짓는 동아리형 농사체험 프로그램이다.
#빠삐용집은 문화자원이자 지역공동체 중심 공간
이런 빠삐용집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유휴공간 문화재생사업’이 있다. 이 사업은 방치된 시설이나 폐시설을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사업으로써 지역문화 활성화와 지역주민의 문화 시설 제공이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유휴공간이란 과거 산업시설, 군부대 시설, 폐교, 면사무소 등 현재 사용치 않는 공간이나 고가차도 하부공간 등 활용 가능한 공간 모두를 말한다. 이런 문화재생사업 대표 사례로 청주시 '동부창고'를 많이 언급한다. 동부창고는 1940년대 세워진 청주연초제조창을 리모델링해 시설의 일부를 시민생활문화,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한 공간으로 현재 주민의 인기가 높은 공간이다.

이 때문에 이런 폐공간들이 지역의 문화자원으로 재형성되는 일은 중요하다. 문화자원은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하나로 묶어주어 지역 정체성을 형성할 수도 있고, 다양한 콘텐츠로 변용돼 관광산업처럼 지역발전 수단으로 활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화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하는 전략도 중요해졌다. 그래야 균형감 있는 문화 발전이 잉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라는 말 자체에는 공동체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 공동체는 같은 관심과 의식으로 생활환경을 공유하는 사회집단이다. 동질감과 소속감을 느끼고 구성원으로서 상호 간 영향력을 끼치며 욕구를 충족하는 곳이 바로 공동체다. 하지만 이런 사회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자산인 문화자원이 점점 지역에서 사라지고 도시에서 독점적으로 활용된다면, 문화자원은 모두의 것이 아니라 도시의 문화 독점권력으로 변질된다.
그렇기에 국가의 지역균형발전 측면에서 문화자원의 배분은 중요하게 다뤄진다. 특히 지역균형발전이 목적인 정책 사업을 서울 대 비서울, 수도권 대 비수도권으로 나누어 지역에 집중 지원함으로써 정책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이런 거시적인 문화자원 배분 전략을 통해서 사회적 안정화와 통합의 효과를 거두자 하는 것이 ‘유휴공간 재생 사업’의 본질적 목적이라 할 수 있다.

문화에 대한 정의는 매우 폭이 넓다. 사람의 생활에 필요한 모든 유무형인 것을 문화라고 말한다. 문화를 통한 작용은 사람을 모으는 일, 사람을 연결하는 일 그리고 사회를 통합하는 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회적 참사나 국가의 중대사가 있을 때는 문화예술이 늘 등장했다. 이념이나 여타 분쟁이 있는 세계 어디든지 화합이 필요할 때 문화예술이 앞장선다. 왜냐하면 문화가 가지는 속성, 즉 ‘사람을 모으고 사람을 연결하며 사람을 통합하는 성질’ 때문이다. 이는 오직 문화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어느 공간이 지역사회에서 의미를 부여받고 사랑받는 공간이 되면 그 공간에 생명이 부여된다. 여기서 생명이란 서로의 생각과 행동이 영향을 끼치며 권유, 질문, 소통, 환대 등이 나타나면서 나아가 동질감을 교환하는 일이다. 이런 방식으로 공간 하나에서 사회통합이 유기적으로 일어난다. 유휴공간 문화재생이라는 게 그저 못 쓰는 공간을 보기 좋게 만드는 것인 줄 알았는데 의외의 굉장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프랑스 철학자)는 공간은 사회적 관계와 문화적 정체성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 ‘사회적인 공간의 형성’을 이야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공성의 실현 및 일상성의 회복이 필요한데, 바로 ‘사회적 네트워크’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공간과 사회적 관계는 상호 보완적·일상적이 되면서 공공성이 발현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김영현 옛 장흥교도소 문화재생단장 역시 “교도소가 지역 문화자원으로써 재사용된다는 것은 지역주민의 결속을 다시 강화한다는 의미가 있다”면서 공간의 사회적 역할에 무게를 두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유휴공간 활용의 여러 사례가 많이 있다. 아무리 단순한 공간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주민의 인식 속에서 지역의 상징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공간은 사람과 지역을 바꾸는 원동력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도 각자의 지역에서 그런 공간이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자. 만약 그런 문화공간이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현재 우리 공동체에는 건강함이 진정으로 필요한 때니까 말이다.
진형우. 예술단체, 세종문화회관, 문화도시센터장을 역임한 문화예술 기획자다. 문화에는 ‘동기, 방법, 움직임, 강렬함, 행동’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모습으로 정의돼야 한다고 믿으며 하루를 가치 있게 사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 중이다.
진형우 문화예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