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학생 부모 성남시의원 학폭위 개입 의혹 부인…학부모들 운영위원 ‘해임 시위’도 계획
#처분까지 3개월? “학급 분리도 안 돼”
경기도교육청 등에 따르면 성남 A 초등학교 여학생 5명이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같은 학급 여학생 1명에게 모래 섞인 과자를 강제로 먹게 하고, ‘식인종 놀이’라면서 식칼을 가슴 쪽에 대며 위협하는 등 가혹 행위를 일삼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를 통해 학폭 사실을 전해들은 피해 학생 학부모는 학폭 신고를 했다.
약 2개월 뒤인 9월 11일이 돼서야 A 초등학교 학폭전담기구회의가 개최됐고, 이 자리에서 가해학생 4명에게 출석정지 5일 처분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측은 교장선생님과 담임선생님 등에게 수차례 학급 분리를 요청했지만 학급 분리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9월 30일 피해자 측은 가해자 5명을 상해죄 등으로 형사 고소했다.
최초 신고 뒤 3개월이 지난 10월 8일 교육당국은 성남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를 열어 가해 학생 2명에 대해 서면사과와 학급 교체 조치를 내렸다. 또 학폭 가담 정도가 덜한 2명은 각각 서면사과와 봉사 4시간, 서면사과 조치를 받았다. 앞선 4명과 함께 심의 대상으로 지목된 1명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징계에서 제외됐다. 인천일보 보도에 따르면 피해 학생이 도리어 학급 교체 조치를 받았다고 한다.
A 초등학교 관계자는 “피해자가 가해 학생의 학급 분리 조치를 원했던 것은 맞다”면서도 “하지만 학폭 전담기구인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가해 학생 2명과 피해 학생의 학급 교체 조치를 결정해 그 결과를 이행해야 했다. 학교 측에서는 피해 학생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가해자의 출석 정지, 학급 내 분리 조치, 피해자와의 거리 유지, 연락 등 접촉 금지 조치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모래 학폭’ 가해자들이 ‘솜방망이 처분’을, 그것도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받은 이유가 무엇이냐며 의문을 품었다. 그러다 가해 학생 학부모 가운데 한 명이 A 초등학교 학부모회장을 역임한 성남시의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공분이 확산했다. 성남시의회 누리집 자유게시판에는 가해 학생 부모인 B 의원의 사퇴를 촉구하는 의견글이 연달아 올라오기도 했다. 10월 18일 오전 한때 성남시의회 누리집이 마비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B 의원은 17일 사과문을 통해 “피해를 입은 학생과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시민 여러분께도 매우 죄송하다는 말씀 드린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B 의원은 “부모 된 도리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저의 책임이 크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절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 아이도 이번 일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의 탈당 요구를 받은 B 의원은 21일 국민의힘을 탈당했다.
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피해자 측은 가해자의 사과가 진정성이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표면적인 사과, 말 그대로 문구만 사과인 사과가 오긴 했지만 진정성 여부는 다른 문제”라고 언급했다. 또 B 의원이 사과문에서 ‘뒤늦게나마라도 연락 준 것이 고맙다’는 아이 할아버지의 말을 인용한 것과 관련, 할아버지는 ‘지금이라도 전화를 준 건 고맙지만, 이미 내 손을 떠났다’고 말했는데 B 의원이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발췌했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일부 누리꾼들은 B 의원이 본인의 학부모회장 이력 등을 이용해 A 초등학교 학폭위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B 의원은 아이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학폭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SBS 보도에 따르면 B 의원은 “제 아이 잘못 키운 거는 잘못했다. (학폭위 결과는) 그냥 처분대로 기다렸던 것밖에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A 초등학교 관계자는 “학폭 심의와 관련해 최대한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학교가 아닌 경기도교육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결정을 내린다. 교장선생님과 친분이 있든 시의원이든 학부모회장이든, 심의위원회 위원들이 결정하는 조치 결과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22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경기도교육청 국정감사에서 문정복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부모의 직함이 심의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론된다”고 지적하자 “그렇게 의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과가 늦게 나온 부분에 대해 전부 감사를 지시했다”면서 “특정인이라고 해서 처벌 수위를 미온적으로 처리한 게 있는지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가해자 OUT” 지역 학부모들의 시위 움직임
10월 23일부터 분당지역 학부모 카페를 중심으로 이번 학폭 처분에 대해 항의하는 근조화환 시위가 벌어졌다. A 초등학교 앞에는 용인, 성남 등 다양한 지역 학부모가 보낸 120여 개의 근조화환이 설치됐으며, 근조화환에는 “학폭 피해자의 고통을 잊지 마세요” “학급이동은 솜방망이식 처벌, 학폭 부모 시의원 사퇴하라” “학교폭력은 범죄입니다. 가해자 OUT” 등의 문구가 적혔다.
A 초등학교 4학년과 1학년에 재학 중인 두 학생의 할머니라고 밝힌 C 씨는 “피해자의 정신적, 신체적 트라우마가 크게 남을 것 같은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하다”면서 “가해자 학부모들이 학교와 무슨 사이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아이를 여러 명이 그렇게 잔혹하게 괴롭혔다는 것에 대해서 속상하다. 학교 폭력은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말했다.
23일 오전 한때는 근조화환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등장했다. 한 여성이 근조화환 앞에서 “왜 학교 앞에서 우리 아이들 상대로 이런 조화를 갖다 놓는 것인지 이런 발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간다”면서 “피해 학생 가족이 이러한 시위를 원치 않는다”고 고성을 질렀다. 이 여성은 자신이 A 초등학교 학부모회장이자 피해 학생 할아버지의 지인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복수의 학부모 제보에 따르면 화환 일부가 파손된 것으로 나타났다.
A 초등학교 관계자는 “화환 철거에 대한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절차상 하자 없이 진행된 시위이고, 학교 밖의 시설물이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해당 근조화환 시위를 주도한 맘카페 회원은 “근조화환 시위가 긍정적 효과를 낳고 있기는 하지만 일부 주민들께서 학교 앞에서 고성과 함께 철거를 요구하셔서 교육활동에 차질을 빚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또 분당구청 등 관련 당국도 이러한 분들의 민원으로 여간 힘든 모습이 아니었다”면서 “피해 학생 학부모에게 24일 오후 5시까지만 근조화환을 설치해두고 화환을 자진 수거, 현장 정돈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성남 지역 학부모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B 의원의 D 중학교 운영위원 해임을 요구하는 침묵 피켓시위를 준비 중이다. 해당 시위는 29일 오후 2시 30분 D 중학교 앞에서 열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D 중학교는 B 의원의 다른 자녀가 재학 중이다. 성남 지역 학부모들은 다음 달 초 서현역에서 이번 학폭 사건을 규탄하는 시위를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커뮤니티 여론은 B 의원의 국민의힘 탈당으로 모래 학폭 사건이 마무리돼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짙다. 성남 주민 E 씨는 “학부모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그동안 쌓였던 게 터졌다고 본다. 이번 학폭 사건이 공론화되지 않았다면 시의원의 탈당은커녕 쉬쉬하면서 넘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