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권 색깔빼기 VS 점령군 물먹이기
▲ 2008년 2월 18일 차기 정부 국무위원 후보자와 청와대 수석 내정자, 인수위 간사가 ‘이명박 정부 국정운영에 관한 합동워크숍’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발언을 요약한 비디오를 보는 모습. 일요신문 DB |
정치컨설턴트 김대진 조원씨앤아이 대표는 “인수위는 결국 하나의 ‘작은 정부’다. 각 부서별로 한 무더기의 책상들이 놓여진다. 그 책상 무더기 하나가 결국 훗날의 정부 부처가 된다고 보면 된다. 인수위는 60일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차기 정부 조직의 밑그림을 그리고 독자적인 ‘색’을 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인수위는 향후 5년간 그 정부의 기조와 방향이라 봐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국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1992년 12월, YS 취임을 앞둔 시점에 제정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설치령’에 의거해 운영되기 시작했다. 그 이전 노태우 정권 취임 당시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라는 조직이 있었지만 이는 인수위의 ‘아류’에 불과했다. 전직 대통령이 조직원을 추천해 차기 대통령이 임명하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인수위를 통한 당선자의 독자적인 운영 자체가 불가능했다.
국내 첫 인수위라 할 수 있는 14대 인수위는 인수자인 YS와 인계자인 노태우 전 대통령 간에 기 싸움이 처음부터 치열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인수위의 명칭을 두고 기존 명칭인 ‘취임준비위원회’를 주장했지만 YS는 끝까지 ‘정권인수위원회’라는 이름을 고집했다. 당시 상도동계 비서 라인에 있었던 한 인사는 “YS는 군사정권을 배제한 최초의 문민정부를 이룩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정권인수위원회’라는 명칭을 통해 자신이 민주세력에 의한 실질적인 ‘정권 교체자’라는 것을 대외적으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고 지적했다. 결국 양측의 절충안을 찾는 선에서 조직 명칭은 지금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로 명명된다.
당시 인수위원장을 맡은 이는 정원식 전 국무총리였다. 1988년 노태우 정부 시절 문교부 장관으로 입각한 정 전 총리는 장관 재직 시절, 전교조 창립을 강력하게 봉쇄하면서 정권 내에서 추진력을 인정받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사실상 정 전 총리가 조직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한다. 인수위 인사들은 박관용, 이해구, 장영철, 서정화 등 현역 의원을 주축으로 100% 정치인 일색이었다. 전문성도 없었을뿐더러 ‘문민정부’라는 캐치프레이즈만을 앞세운 그저 그런 ‘홍보 조직’에 불과했다.
DJ의 15대 인수위는 앞서의 14대 인수위보다 인원도 늘고 조직도 세분화됐지만 구성 인원 대부분이 정치인들이라는 점에서 전 인수위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당시 인수위원장은 이종찬 전 의원이었다. 15대 인수위에서 가장 눈 여결 볼 점은 역시 DJP연합정부의 인수위라는 것이다. 당시 인수위 안에는 김현욱, 이동복(이상 통일외교안보), 이건개(정무), 조부영(경제), 최재욱, 김종학(이상 사회문화), 함석재, 이양희(이상 정책) 등 JP 측 자민련 인사가 대거 참여했다.
▲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2003년 1월 23일 인수위에서 국정과제 보고 및 토론회를 열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DJ는 JP라는 내부의 적은 물론 인계자인 YS와도 싸워야 했다. 특히 YS는 IMF사태의 책임론 때문에 당시 정부 경제실정과 관련한 국정자료 상당수를 폐기했다는 의혹을 받았었다. 그때 DJ는 이에 대해 “자료폐기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며 엄포를 놓기도 했다. 지난 인수위와 비교해 권한이 강화된 15대 인수위에 대해 홍사덕 당시 정무장관은 “인수위가 사정기관을 넘어선 월권을 행사하고 있다. 마치 국보위 같다”며 견제에 나서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의 16대 인수위는 앞서의 인수위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조직으로 개편됐다. 이는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태생적인 한계 탓이었다. 본인 스스로 “인수위에 민주당 인사를 중용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현실적으로 중용할 만한 당내 인사도 없었다. 위원장직은 당시 현역이었던 임채정 전 의원이 맡았지만 구성원 상당수는 결국 학계와 시민사회 인사 등 자신의 지지기반 세력에서 영입된다. 당시 인수위 내에는 윤영관, 이종석, 서주석 교수(이상 외교통일안보), 김병준, 이은영 교수(이상 정무), 이정우, 허성관 교수(이상 경제) 등 모두 12명의 교수가 참여했는데 모두 노 전 대통령의 후보 시절부터 정책브레인 활동을 해오던 개혁성향의 학자들이었다.
16대 인수위 주재회의는 사상 처음으로 TV 생중계까지 진행되면서 투명성을 키웠으며 심지어 인수위 내 ‘국민참여센터’를 설치해 인수위 운영 과정에서 민원을 접수하는 시도까지 했다. 16대 인수위는 노 전 대통령의 뜻에 따라 기존 정치와의 단절과 쇄신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던지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당 기반이 워낙 없었고 여당 당선자임에도 불구하고 집권당의 지원 역시 부족했기 때문에 정부조직 개편 등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는 없었다.
가장 최근인 MB의 17대 인수위는 위원장 이경숙 숙명여대 전 총장을 비롯한 학계 인사와 김형오 부위원장을 비롯한 정계 인사들이 골고루 배치됐었다. ‘실용정부’라는 기치 아래 무엇보다 조직 개편에 신경을 썼다. 인수위 논의 과정에서 기존의 14부 4처 18청의 정부 조직을 13부 2처 17청으로 개편을 단행했다. 하지만 일각에서 극단적인 정부개편이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정치권 안팎에서 많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특히 조직개편에 민감한 정부 기관들은 인수위에 자료 전달 자체를 꺼렸을 만큼 저항이 심했다고 한다. 또 무엇보다 이경숙 전 총장, 강만수 KDB금융 회장, 곽승준 고려대 교수 등 인수위 인원 상당수가 소망교회 교인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인사 문제가 거론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번 차기 정부의 인수위는 어떤 ‘색깔내기’와 ‘밑그림’이 그려질 까.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둘 중 누가 되든 공통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경제민주화’와 ‘통합’이라는 두 가지 개념이다. 앞서의 김 대표는 “양 후보 모두 인수위를 구성한다면, 반드시 인수위 운영 과정에서 각기 공약으로 내세웠던 ‘경제민주화’에 대한 국정 방향을 보여줘야 한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이 때문에 인수위원장직에 경제권 인사가 영입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래서 벌써 정치권 안팎에서는 김종인과 같은 인물이 거론되고 있는 거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또 한 가지는 ‘통합’의 측면이다.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 전 후보 진영의 인사들에 대해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박근혜 후보 역시 대선 기간 동안 호남권 인사 등용 등 ‘탕평인사’를 약속했다. 이 때문에 이번 차기 정부의 인수위 과정에서는 제각기 주축세력 이외의 외부세력과의 통합적 조직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한병관 기자 wlimodu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