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키웠더니 ‘공짜’로 이적…피구·서정원·데얀 등도 축구사 속 ‘유다’ 낙인

리버풀을 응원하는 팬들에게 아놀드의 이적은 단순히 한 선수가 팀을 바꾸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먼저 아놀드는 오랜 기간 구단과 함께한 선수다. 프로축구 역사가 깊은 유럽은 지역 연고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구단의 연고 지역 출신, 또는 어린 시절을 구단과 함께 보낸 선수라면 팬들의 애정은 더욱 깊어진다.
아놀드는 그런 면에서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선수다. 구단 연고지인 리버풀에서 태어났다. 6세부터 구단 아카데미에 입단, 단 한번의 임대 이적조차 없이 리버풀에서만 성장을 이어왔다.
2016년 프리미어리그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는 곧 월드클래스 반열에 올랐다. 그사이 리버풀 구단도 영광의 시간을 보냈다.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EFA)에서 우승했고, 30년 만에 프리미어리그 우승 트로피도 들어 올렸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리버풀은 잉글랜드를 넘어 유럽에서 최강으로 꼽히던 팀이었다. 하지만 이후 내리막을 걷던 상황에서 팬들의 자존심을 되찾게 해준 선수 중 하나가 아놀드였다. 그는 "나는 스티븐 제라드(리버풀 레전드)를 보며 자랐다. 나도 '원클럽맨'이 되고 싶다"는 발언 등으로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아놀드와 팬들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이번 2024-2025시즌부터다. 올여름 기존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었으나 구단과의 재계약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버질 반 다이크, 모하메드 살라 등 팀 내 스타들도 역시 같은 시기에 계약이 끝나는 것이 예정돼 있었으나, 유독 아놀드의 재계약 전망은 밝지 않았다.
결국 지난 3월 말, 유럽 현지의 주요 소식통은 아놀드와 레알 마드리드의 계약 소식을 전했다. FA 자격 취득을 앞두고 있는 선수는 계약 만료 6개월을 남겨둔 시점부터 자유롭게 다른 구단들과 접촉이 가능하고 레알 마드리드와 아놀드는 이 같은 규정을 이용한 것이다.
팬들의 격한 반응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뛰어난 기량을 보유했고 미래를 약속하는 등 팀에 충성심도 보여주던 선수였다. 하지만 구단은 아놀드를 다른 팀으로 보내며 이적료 한 푼 챙길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FA 자격을 얻어 이뤄지는 이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전 소속팀과의 '의리'를 고려해 재계약 이후 이적료를 남기고 이적을 감행하는 일부 사례와는 대비됐다.

아놀드의 움직임에 리버풀 관련 인물 다수가 실망감을 드러내지만 은퇴 선수 마이클 오언만큼은 앞장서서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과거 아놀드와 같이 리버풀에서 활약하다 레알로 이적한 그는 "선택은 개인에게 달려있다"며 후배의 선택을 감쌌다.
오언 또한 리버풀에서 '배신자'로 낙인 찍힌 인물이다. 성경 속 등장인물에 빗대 '유다'로도 불린다. 아놀드와 마찬가지로 리버풀 유소년 클럽에서부터 성장해나간 오언은 2004년 레알 마드리드로의 이적을 선택했다. 명분은 챔피언스리그 우승 도전이었다. 당시 200억 원 미만의 저렴한 이적료만 남겨 팬들의 반발을 샀다.
그를 향한 민심이 더욱 흉흉해진 이유는 이후의 선택 탓이었다. 그는 레알에서 도전을 천명한 지 1년 만에 뉴캐슬로 이적했다. 뉴캐슬에서 부상으로 인해 뚜렷한 활약을 펼치지 못한 그는 다음 팀으로 친정팀 리버풀의 최대 라이벌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선택했다. 리버풀 팬들의 오언에 대한 적대감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잉글랜드에서 유다의 대명사로 불리는 인물은 중앙 수비수 솔 캠벨이다. 토트넘 홋스퍼에서 데뷔해 국가대표이자 월드클래스 선수로 성장했다. 팀에서 주장도 맡고 있을 정도로 실력과 리더십을 겸비한 선수로 평가를 받았다. 토트넘에서 8시즌 동안 활약한 캠벨이 향한 팀은 다름 아닌 아스널이었다.
문제는 아스널과 토트넘의 관계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라이벌 관계라는 것이다. 토트넘 팬들은 크리스마스에 아스널의 상징 색인 붉은색을 꺼려 푸른색 산타 복장을 입을 정도다. 이에 더해 캠벨의 이적은 이적료가 없는 자유계약이었다. 팬들의 배신감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후 캠벨은 아스널의 프리미어리그 무패 우승 등을 경험하며 토트넘 팬들의 속을 뒤집어 놨다. 이적 이후 20년이 훌쩍 넘은 시점에도 이들은 캠벨이 경기장에서 발견되면 '사망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담긴 노래를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축구 역사상 손꼽히는 또 한 명의 배신자는 포르투갈 출신의 루이스 피구다. 바르셀로나에서 뛰던 그는 2000년 여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을 결정했다. 세계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라이벌 구단 사이에서 벌어진 이적이었기에 놀라움을 안겼다.
피구의 이적 역시 바르셀로나 팬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약 250경기를 뛰며 공격포인트 130개 이상을 만들어낸 당대 최고의 선수였다. 팀의 아이콘이자 부주장직을 맡고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바르셀로나를 만난 경기에서 팬들이 피구를 향해 온갖 오물을 투척하는 장면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다만 앞서의 알렉산더-아놀드, 캠벨의 이적과는 차이가 있다. 포르투갈 출신으로 바르셀로나에서 성장한 선수가 아니었던 데다, 당시로선 세계 기록이었던 6000만 유로의 이적료를 남겼다.

국내축구에도 팬들의 분노를 유발한 이적은 존재했다. 첫손에 꼽히는 인물은 서정원이다. 그는 대학 졸업 이후 안양 LG에서 활약하다 1998년 1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로 이적하며 유럽에 진출했다. 이후 1999년 3월 국내로 돌아오며 수원 삼성과 손을 잡았다.
안양 구단과 팬 모두 반발한 선택이었다. 안양 구단은 프랑스 진출 당시 국내로 복귀할 때는 안양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계약 조건을 내걸었다며 소송전을 벌이기도 했다. 팬들도 수원 삼성과의 경기에 서정원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불태우는 등 유럽을 방불케하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서정원의 이적은 역사가 길지 않던 국내 프로축구에 스토리를 더했다. 그를 두고 신경전을 벌인 안양과 수원 구단은 '지지대 더비'로 불리며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연고지 변화 등이 이어지며 현재 FC 서울과 수원의 '슈퍼매치'로 발전했다. 이전까지 국내에서 모기업 간 경쟁 구도 등으로 얽힌 경쟁 관계는 존재했다. 하지만 팬들까지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뜨거운 '라이벌리'는 서정원의 이적으로 시작됐다.
5만 명을 넘나드는 국내 최다관중 기록 상위권을 대다수 보유한 슈퍼매치, 이들 서울과 수원 구단 사이를 오간 이적은 이후로도 존재한다.
몬테네그로 출신 공격수 데얀은 K리그에서만 312경기 159골 33도움을 기록한 레전드로 통한다. 리그 내 4팀에서 활약하며 파란만장한 역사를 남긴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한국 커리어 시작은 인천이었다. 2년 동안 활약한 뒤 FC 서울로 이적했다. 서울에서 레전드 대우를 받을 만한 활약을 이어갔다. 세 번의 리그 득점왕, 한 번의 MVP 수상에 성공했다. 뛰어난 활약으로 당시 적극 투자를 이어가던 중국 슈퍼리그에 진출했으나 또 다시 서울로 복귀해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데얀과 서울의 좋은 관계는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2018시즌을 앞두고 데얀이 최대 라이벌 수원으로의 이적을 선택한 것이다. 서울에서는 재계약을 원치 않았고, 선수로 더 뛰길 원했던 데얀에 수원이 손을 내밀었다는 뒷이야기가 알려졌다. 그럼에도 장기간 서울의 상징이었던 선수의 수원 입단은 리그 전체에 충격을 안겼다.
수원에서도 코칭스태프와 갈등으로 팀을 떠난 그는 대구 유니폼을 입고 한국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이후 홍콩에서 활약하다 현역 활동 마무리를 선언하며 소셜미디어에 첨부한 사진은 서울 시절 모습이었다. 그는 선수로서 끝인사를 전하며 "나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당신은 즐겼을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문구를 남겼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