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된 사법부는 없다. 수천 명의 제각각인 판사들이 존재할 뿐이다. 한 판사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서로 생각이 다르고 의심도 했다. 그런 사회였다. 판사들의 내면에 숨어있는 진짜 기준은 무엇일까. 법원장을 지낸 한 판사가 이렇게 내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선거법 위반사건을 심판해 봤어요. 내 경우의 기준은 그 정치인이 괜찮은 사람인지 그 본질을 봐요. 희망이 있는 사람이면 사안이 중하더라도 살려줘요. 반면에 저질 정치인이면 죽이지.”
주관적인 판결은 아닐까. 그와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은 어떨지 의문이었다. 법원장을 지낸 한 친구는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판사라는 지위 때문에 남들과 거리를 두고 항상 벽 안에 갇혀 살았어. 사람들하고 소통이 없는 생활이었지. 사건처리만 해도 그래. 일반사람들은 생사여탈권을 쥔 사법 권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결정해야 할지, 저렇게 결정해야 할지 그 선택은 부담이고 고통이지 쾌감은 아니었어.”
사법연수원장을 지낸 사람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판사들은 모든 게 틀 속에 박혀 있을 수밖에 없어요. 판결문을 보세요. 사실 인정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증거법칙이라는 틀을 통해 결론을 내야 하죠. 법령적용도 마찬가지구요. 업무 자체가 틀에 박힌 거고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닙니다.”
판사를 하다가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판사를 그만두고 사흘쯤 지나니까 내가 바보였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둔했거나 순진해서 사건의 이면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던 게 많았던 것 같아요. 또 게을러서 기록을 보는 데 소홀한 적도 있어요. 다시 재판하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 같아요.”
착하고 성실한 법관들의 정직한 얘기들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법관들도 일부 있었다. 정치적 지역적 편향성을 가진 사람도 있고 부패한 사람도 있었다. 비틀리고 교만한 사람도 봤다. 그들이 소수라고 해도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 사회에 끼치는 해악은 작은 게 아니었다.
사람들은 법정을 진실을 규명하는 곳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40년 가까이 보아온 법정은 그렇지 않았다. 법정은 이기적인 인간들의 거짓말 경연대회장이었다. 진실과 거짓이 다투는 게 아니라 거짓과 더 심한 거짓의 싸움이기도 했다. 귀신수를 쓰는 사람들의 거짓과 돈이 진실을 이기기도 했다. 법관들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냥 보통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권한은 막강했다. 결정적인 증거를 채택할 수도 있고 배제할 수도 있다. 채택했다고 하더라도 안 믿을 수도 있다. 그에 따라 진실이 거짓이 될 수도 있고 거짓이 진실이 될 수도 있다. 유전자 검사 결과 친자식이라고 나온 결론을 아니라고 부인한 판결문을 본 적도 있다. 판사의 결정이 과학 위에 있기도 했다.
그런 재판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고 거기 목을 매고 있는 정치인들을 보면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아는 한 변호사는 이런 분노를 터뜨렸다.
“판사들은 국민들로부터 선출되지 않은 집단입니다. 결정적 영향력을 미치면서도 국민들로부터 한 번도 통제받은 적이 없어요.”
세상의 시선이 법관들에게 가고 있다. 정치적 거물의 사건을 맡은 법관들이 지금 새가슴이 되어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때 진짜 법과 양심이 뭔지를 보여주는 영웅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엄상익 변호사 mast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