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앞에는 중립이 없다는 유명한 문장은 고통당하는 자의 위로가 될 수 있는 영혼으로 인해 힘이 붙는다. 그런 교황이 있었다, 그런 축복이 있었다. 그가 이 땅을 떠났다. 죽어서도 사랑이 모이고 기도가 모이는 파파 프란치스코를 보면 살아서 그가 얼마나 사랑하고 기도했는지 느낄 수 있다.
“나의 세속적인 삶에 일몰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그런 느낌을 안고 파파 프란치스코는 마지막 숨을 붙잡고 기도했던 것 같다. 부활절을 세상과 함께 보내고 싶다고. 휠체어도 벅차 보이는 허물어진 모습으로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수천 명의 사람들을 축복해주는 그 모습에 나도 울컥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마지막까지 그는 사랑이었고 축복이었다. 평생을 소외된 자들의 위로가 되고 촛불이 된 교황 프란치스코는 권위와 함께 딱딱해진 교리를 부드럽게 녹여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한 우리들의 어머니였다.
그는 동성애자를 정죄하지 않았으며, 낙태에 대해서도 무조건 정죄하지 않았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고 믿었으니 낙태를 권리로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자기에게 찾아온 생명을 중지시킬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에 대해서는 이런 태도를 취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당에서 기도하는 것을 좋아했다던 교황은 유언으로 그 성당 지하에 아무런 장식 없이 ‘프란치스코’란 이름 하나만 쓰고 묻어달라고 했단다. 산타마리아, 성모다. 누구보다 어머니의 힘과 사랑을 알았던 교황이었으니 거추장스러웠던 그 모든 것을 거둬내고, 이름 하나만으로 충분한 큰 어머니의 품으로, 성모의 품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유럽여행을 갈 때마다 부럽다고 느낀 것이 있다. 성당 지하가 무덤이라는 점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성당이 있는지 모르겠다. 죽음을 끌어안고 있는 성당,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무한한 하나님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혐오하지도 않고 오히려 이 땅에서의 마지막을 축복하실 테니. 프란치스코는 2016년 12월 17일 80세 생일에 봉헌한 특별미사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노년은 지혜에 갈급한 시기다. 내 노년도 이랬으면 좋겠다. 평화롭고, 신앙심이 깊고, 유익하며, 기쁜 노년이 되도록 기도해 달라.”
자신의 노년도 그랬으면 좋겠다니, 그러니 기도해달라니, 얼마나 겸손한가. 겸손해서 진입장벽이 없다. 평소에도 그는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것을 잊지 말라”는 말씀을 종종 했다고 한다. 사실 늘 기도 속에 살며 “당신의 말씀보다는 저의 말과 세상의 말을 앞세우지는 않는지”를 살펴왔던, 삶이 기도였던 그가 왜 우리들의 기도가 필요했을까. 누구보다 기도의 힘을 알고 있었던 그는 우리를 ‘함께 기도하는 자’로 존중한 것이다.
한 시간을 기다려 명동성당으로 들어가 프란치스코를 조문하는 사람들의 행렬을 보며 다시 한번 느낀다. 함께 기도하는 자의 힘을. 프란치스코를 위해 기도하다 보면 그가 기원했던 평화와,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그만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되는 것 같다.
기도는 평소 산란하고 복잡하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를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그런 점에서 기도는 ‘나’ 자신과 잘 지내게 해주는 좋은 방법이다. 그리스도와 연결되든 붓다와 연결되든 내 안의 절대적인 힘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하는 그 집중과 통찰의 힘으로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다 보면 우리는 고립되어 있는 존재들이 아니라 모두 연결되어 있는 존재임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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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 수원대 교수 mast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