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겜’ 성공 후 자극적 스릴러물 잘나갔지만 ‘정화’가 새 키워드로 등장…눈물·웃음 앞세워 카타르시스 선사
출발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였다. 1960년대∼2020년대를 한 여성의 삶을 중심으로 풀어낸 이 작품은 넷플릭스 비영어권에서 흥행 1위에 올랐다. 글로벌 스트리밍 순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영어권까지 통틀어 최고 성적 3위를 차지했다. 지극히 한국적인 이야기가 보편성을 띠며 글로벌 흥행까지 일군 셈이다.
그 배턴은 tvN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과 JTBC ‘천국보다 아름다운’이 이어받았다. 두 작품 모두 자극을 덜어내고 감동과 웃음 코드를 배가했다는 공통분모를 안고 있다.

이 드라마의 초점은 ‘사회 초년생’에 맞춰져 있다. 앞선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내로라하는 실력을 지닌 의사들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환자들을 구하고 인간적으로 소통하는 과정을 그린 반면,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은 아직은 서툰 전공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5000만 원의 대출금을 갚기 위해 이미 한 차례 포기했던 전공의 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오이영(고윤정 분)을 비롯해 열정이 지나쳐 민폐를 끼치곤 하는 엄재일(강유석 분), 타인의 감정에 좀처럼 공감하지 못하고 1등만을 외치는 김사비(한예지 분), 화려한 옷차림과 삶이 중요해 사생활과 전공의 생활을 분리하려 하지만 번번이 좌절하는 표남경(신시아 분) 등이 주인공이다. ‘MZ의사’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전공의 생활에 불만을 품지만 조금씩 참된 의사로 성장해간다.
환자와 의사의 관계성은 여전한 눈물 포인트다. 주사액이 새고 있다며 교수에게 혼나고 있는 전공의를 불러내 위기에서 구해주는 환자, 까다롭기 그지없는 환자를 귀찮아하지만 이 환자가 사망한 줄로 오해했다가 살아있는 모습을 보고 안도하는 의사, 환자의 거듭된 질문에 귀찮듯 던진 전공의의 이야기를 충실히 따르는 환자, 그리고 어린 딸의 갑작스러운 임신 사실에 분노한 아빠의 진심을 넌지시 알려주는 의사의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엮이며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화합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촘촘하게 보여준다.
다만 지난해 불거진 전공의 파업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 속에서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이 판타지에 가깝다는 평도 나온다. 태어날 때부터 의사인 사람은 없다. 전공의 역시 병원 생활을 통해 직접 환자들과 마주하며 점차 성장해나가는 것이 이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의료 대란에도 아랑곳 않는 의사, 일괄 사직서를 제출하는 전공의의 모습은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 속 의사들과는 괴리감이 느껴진다.
이에 대해 이 작품의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신원호 PD는 “바쁜 경쟁 사회에서 신입의 이야기는 답답할 수 있지만, 요즘 성장 서사 자체가 귀하다”면서 “갓난아기가 언젠가 목을 가누고, 걷고, 말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순간을 목격하며 감격을 받듯, 이 드라마의 설득력은 거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의사의 이야기보다는, 사회 초년생들의 이야기에 방점을 찍는 드라마라는 설명이다.

천국을 그리는 방식도 기상천외하다. 착한 사람이 천국에 간다는 기본 틀은 같지만, “천국은 상이 아니다”라면서 “천국에서도 잘못을 저지르면 지옥에 갈 수 있다”고 외친다. 천국으로 가는 여정에 지하철, 버스, 비행기 등을 골라 탈 수 있고, 지옥역에서 악행을 저지른 이들이 문밖으로 끌려 나가는 설정도 인상적이다.
천국에서는 원하는 연령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설정도 흥미롭다. 대다수는 20∼30대를 원한다. 하지만 해숙(김혜자 분)은 80대를 택한다. 남편이 죽기 전 “당신은 지금 모습이 제일 예쁘다”고 말한 것을 새기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천국에서 만난 남편 낙준(손석구 분)은 30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두 사람이 천국에서 처음 재회한 뒤 생각지도 못한 서로의 모습에 당황하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터진다.
반려동물이 천국에서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장면도 이채롭다. 그들의 외모는 사람이지만 반려동물로서 과거의 기억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반려동물은 상대적으로 수명이 짧기 때문에 그들은 먼저 천국에 터를 잡은 뒤 뒤늦게 천국에 오는 주인을 기다린다. 시각장애 안내견이 죽은 뒤 이제는 앞을 볼 수 있게 된 주인과 재회하는 장면은 가슴 찡하다.
이런 ‘순한 맛’ 콘텐츠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띤 작품의 반대편에 서 있다. ‘오징어 게임’ 이후 좀비물인 ‘지금 우리 학교는’과 학교 폭력을 소재로 한 ‘더 글로리’, 사이비 종교를 소재로 다룬 ‘지옥’ 등은 19금 콘텐츠로 대중의 오감을 자극했다. 최근 공개된 ‘악연’ 역시 그런 흐름에 맞닿은 작품이다.
하지만 ‘폭싹 속았수다’를 비롯해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 ‘천국보다 아름다운’ 등은 온 가족이 다 함께 즐기며 공감하고 교감할 수 있는 콘텐츠다. 대통령 탄핵에 따른 정치적 혼란과 경제 위기에 의한 팍팍한 삶, 그리고 각종 강력 사건으로 뒤숭숭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런 작품들은 일종의 탈출구 역할을 하고 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