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3.0’ 출범… 사촌들 동상이몽
▲ 최신원 회장이 수펙스추구협의회에 불참할 것이라는 소문에 그룹 측은 어불성설이라며 일축했다. 일요신문 DB |
SK그룹에게 2013년은 아주 특별한 해다. 창립 60주년에, 창업주 고 최종건 회장 40주기를 맞는 데다 새로운 경영체제인 ‘따로 또 같이 3.0’이 시작되는 해다. 고 최종건 회장의 차남이자 현재 SK가문의 맏형인 최신원 SKC·SK텔레시스 회장에겐 더 특별하게 다가올 법하다. SK 창업주의 직계지만 지분 등 그룹 내에서는 사촌 최태원 회장 형제에 비해 미미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최신원 회장은 그동안 줄기차게 계열분리를 요구해 왔다.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내년이 계열분리의 호기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호사가들 사이에선 계열분리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따로 또 같이 3.0’, 신경영체제로의 조직개편과 인사가 마무리되는 내년 1월이 SK그룹의 계열분리 여부와 시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SK는 지난 18일 ‘따로 또 같이 3.0’ 체제를 이끌어 갈 그룹 최고 의사 결정기구 수펙스(SUPEX)추구협의회 의장에 김창근 SK케미칼 부회장을 선임했다. 최태원 회장의 후임이다.
전략, 글로벌성장, 커뮤니케이션, 인재육성, 윤리경영, 총 5개 위원회 위원장에 대한 인선작업도 한창이다. SK그룹 관계자는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 이어 위원장 인선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며 “1월 중순까지 이 작업은 계속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체제의 핵심은 ‘독립 경영’이다. 그룹의 각 계열사들과 지주사 SK(주)와의 관계가 종속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바뀐다. 기존 지주사의 역할을 각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위원회가 대신하게 된다. 위원회 참여는 자율이다.
SK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위원회 참여는 의무가 아닌 자유”라며 “그룹에서 각 계열사별로 참여 희망 위원회를 신청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5개 위원회 중 커뮤니케이션위원회와 인재육성위원회의 인기가 높다는 게 또 다른 계열사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렇다면 만약 어떤 위원회에도 들어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각자도생’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최신원-최창원 형제 계열사들의 경우 위원회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오면서 신경영체제 등장을 계기로 계열분리가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최신원 회장의 친동생 최창원 부회장의 경우 이미 탄탄한 지분 구축을 통해 ‘SK케미칼 소그룹(SK케미칼, SK가스, SK건설)’을 사실상 독립 경영하고 있다. 하지만 최신원 회장 측의 SKC는 경영권만 최 회장에게 있을 뿐 SK그룹의 지배 아래 있는 상태다. SK텔레시스도 SKC가 최대주주다. 위원회 참여 여부에 대해 SKC 측은 “잘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SK그룹 측은 “최신원 회장 측이 위원회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했다. SK그룹 관계자는 “지난 11월 26일 ‘따로 또 같이 3.0’의 구체적인 실행안에 대한 CEO협약식 때 박장석 SKC 사장과 최창원 부회장이 직접 참석해 다른 CEO와 똑같이 협약서에 서명했다”며 “그럼에도 참여 여부를 왈가왈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앞서 언급했듯이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도 최창원 부회장이 독립 경영하는 SK케미칼의 김창근 부회장이다.
계열분리와 관련, 최신원 회장의 장남 최성환 SKC 전략기획실 부장(32)의 임원 승진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최 부장은 지난 2009년 초 과장으로 이 회사에 입사 후 매년 승진을 거듭했다. SK가 3세 중에서는 유일하게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이가 최 부장이기도 하다. 그룹 안팎에서는 올해 상무 승진을 조심스레 예측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신원 회장이 아들에게 ‘별’을 선사함으로써 계열분리에 대비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 놓을 수 있는 대목이다.
최 회장은 그룹 2세들 중에서 유독 지분이 적다. SKC에 이어 2대주주인 SK텔레시스를 제외하고 최 회장 보유 지분은 SKC 1.7%, SK네트웍스 0.15%에 불과하다. 사촌동생 최태원 회장의 큰 결단이 없는 한 외형상의 계열분리를 할 수 없는 구도다. 최신원 회장 자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같은 고려의 연장선상에서 계열분리와 관련한 제3의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 신경영체제 아래에서 내용상의 계열분리를 시도하는 경우다. SK의 또 다른 계열사 관계자는 “최신원 회장이 기존 SK의 ‘브랜드’와 ‘기업 문화’라는 두 가지 가치를 갖고 가면서 최태원 회장의 배려를 전제로 SK네트웍스 등의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신원 회장이 SK네트웍스에 대해 상당히 큰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룹의 모태기업으로서의 상징성을 갖기 때문이다. SK네트웍스의 사업부인 워커힐호텔의 경우 선친이 마지막으로 인수한 회사라는 점 때문에 최 회장에겐 남다르다. 최 회장이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 부지 내에 마련된 숙소에 기거하고 있다는 점은 그의 애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신원 회장 입장에서는 이 회사들에 대한 경영권 보장을 바탕으로 SK의 울타리 내에 머무는 것도 계열분리에 대한 합리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