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달아 터진 악재 보너스 줄여 극복
▲ 잇단 악재에 시달리던 농심이 위기 타개책으로 임직원들의 연말 보너스를 삭감하기로 결정해 관심을 끌고 있다.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있는 농심 사옥. |
농심이 올해 실적 증가에도 불구, 직원들의 연말 정기 보너스 지급액을 삭감했다. 증권가에 따르면 농심은 올해, 지난해보다 소폭 증가한 약 2조 원의 매출이 기대된다. 또 영업이익도 지난해보다 늘어난 약 1170억 원이 예상된다. 올해 3분기까지 누계로 농심은 1조4660억 원의 매출과 847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그럼에도 농심은 최근 올 연말 정기 보너스를 예년보다 50%가량 줄인 기본급의 150%를 주기로 결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애초 보너스를 지급하지 않겠다는 얘기까지 나왔지만, 노사협의를 통해 최종 조율된 안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실적 증가에도 농심이 임직원들의 사기 저하를 불러올 수 있는 보너스 삭감을 결정한 배경은 무엇일까. 과징금 폭탄을 맞은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농심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농심은 ‘쥐머리 새우깡’ 사건으로 농심 불매운동까지 벌어진 지난 2008년에도 ‘보너스 200%’ 원칙을 불문율처럼 예외 없이 지켰다.
최근 10년여 직원들에게 200%의 보너스를 지속적으로 지급해 온 농심이었다. 농심 관계자는 “처음에 보너스를 아예 주지 않겠다는 말이 나왔을 때 직원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며 “회사가 이 같은 의견을 반영해 최종적으로 150%의 보너스를 지급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규모 과징금을 비롯해 올해 잇따라 터진 악재에 위기감을 느낀 농심이 직원들의 보너스 주머니를 틀어쥐며 위기 극복에 나선 것이다. 특히 1000억 원이 넘는 과징금이 결정적이었다는 후문이다. 농심은 지난 3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지난 2001년부터 2010년까지, 9년간 라면 값을 담합해 온 혐의로 1080억 70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농심은 지난 8월 과징금 부과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에 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이와는 별개로 9월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에서 총 1000억 원을 대출받아 과징금을 모두 납부했다.
업계에서는 현금성 자산이 풍부한 농심이 과징금 규모가 지나치다는 것을 항변하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차입했다는 얘기까지 흘러 나왔다. 그러나 농심이 지난해 1조 9707억 원의 매출액과 1101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한 해 영업이익의 거의 전부를 과징금으로 납부한 셈이다. 농심에게 큰 부담이 될 만한 금액임은 분명해 보인다. 농심은 보너스 지급과 관련, 노사협의 과정에서 내년에 소송에서 이겨 과징금을 돌려받게 될 경우 덜 지급한 보너스를 소급해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측은 보너스 삭감의 이유로 지난달 전국의 모든 농심 판매 특약점주들에게 개별 70만 원 상당의 부산에 있는 농심의 호텔 ‘허심청’ 이용권을 지급했다는 점을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명목상으로는 특약점들의 한 해 노고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취지에서 전달된 상품권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삼다수를 광동제약에 넘겨주게 된 미안함을 표시하고 그로 인한 점주들의 동요와 이탈을 방지하는 한편 연말을 기점으로 새롭게 출시될 ‘백산수’와 기능성 커피 등에 대한 판매 협조를 당부하기 위한 지급이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사실 농심의 악재는 올 초부터 연이어 터졌다. 지난해 말부터 불어 닥친 ‘하얀 국물’ 열풍으로 비록 몇 개월간이었지만 시장점유율을 상당부분 타 업체들에 잠식당했다. 3월에 과징금을 부과 받고 3개월 후인 6월에는 ‘너구리’ 등 6개 라면 제품에서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검출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하얀 국물 열풍의 터널을 막 빠져 나온 농심 라면은 또 다시 큰 장애물을 만난 셈이었다.
제주도개발공사와의 재판 끝에 시장점유율 1위 ‘삼다수’ 유통권도 광동제약에 빼앗겼다. 이로 인해 내년도 매출 타격이 불가피하다. 농심은 삼다수를 잃은 대신 백두산 화산광천수인 ‘백산수’를 이달 중 판매할 계획이지만 시장에서 자리를 잡기까지는 일정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삼다수는 지난해 약 1900억 원의 매출을 올려 농심 전체 매출의 약 10%를 담당해 왔다. 결국 ‘삼재(三災)’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올해 유난히 악재가 많았다. 여느 해보다 더 추운 겨울을 보내게 된 농심이지만 새해 전망도 그리 밝지만은 않은 셈이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