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화 흐름 타고 수익 확대 가능성…정유·석유화학 실적 부진 만회할 수 있을지 주목

에쓰오일이 올해 1분기 유럽에 신규 법인인 'S-OIL Europe B.V.'를 설립했다. 이 법인은 연료, 연료용 광물 및 관련 제품의 도매업을 주요 사업으로 하며 사우디 아람코 자회사들로부터 윤활기유를 구매해 유럽 시장에 판매하는 윤활 트레이딩 사업을 전개한다. 또한 윤활기유 제품에 대해 본사에 마케팅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이번 법인 설립은 기존 네덜란드 소재 유럽 지사를 법인으로 승격한 것으로, 에쓰오일의 사업 다각화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윤활기유는 자동차용, 선박용, 산업용 등 다양한 윤활유의 주원료로, 자동차용·선박용 윤활유에는 80~90%, 산업용 윤활유에는 90~99%의 비중으로 사용된다. 정유사는 휘발유, 경유 등을 정제하고 남은 기름을 재처리해 윤활기유를 생산하는데 일반 정유제품보다 마진이 높은 편이다. 윤활유를 바르지 않을 경우 엔진 부품 간 마찰이 심해 더 많은 연료를 소모하고 오염물질 배출량이 늘어나므로 산업 현장에서는 윤활유 사용이 필수적이다.
지난해 정유업계가 업황 악화 속에 흑자 기조를 유지한 데도 윤활유 사업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원유 정제 마진(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 제품 가격에서 원자재비용을 제외한 이익)이 줄었지만 정유 4사 모두 윤활유 사업에서 대규모 흑자를 기록했다. 에쓰오일은 윤활유가 전사 영업이익(4606억 원)보다 많은 5712억 원의 흑자를 내면서 정유 부문 손실을 만회했고 SK이노베이션, HD현대오일뱅크, GS칼텍스도 지난해 전체 사업 중 윤활유에서 가장 큰 영업이익을 냈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정유사는 유가가 오르내리면 재고 관련 평가 손익에도 변동이 생기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윤활유는 상대적으로 수요나 가격 변동이 제한적이고 6000억~8000억 원 정도의 영업이익을 꾸준히 내 주고 있어 안정적이고 수익이 잘 나는 사업으로 꼽힌다”라며 “에쓰오일의 주력 사업 중 그나마 현재 가장 손실을 만회해주고 있어 향후 판로 확장에 나서며 사업을 좀 더 확대할 여지가 있다”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윤활유 시장 규모는 2023년 1723억 달러(약 237조 원)에서 2032년 2052억 달러(약 282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시장에서는 윤활유 품질 고급화로 기존의 저품질 기유 수요는 감소하면서 에쓰오일 등이 생산·판매하는 고급 윤활기유 수요도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에는 데이터센터나 전기차 배터리 열을 식혀주는 액침냉각 시장이 열리면서 윤활유 사업 영역도 확대 추세인 것으로 알려졌다.

에쓰오일의 사업구조는 정유, 윤활, 석유화학 등 세 부문으로 구성되는데 윤활부문의 매출 비중이 가장 낮다.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정유 부문은 휘발유, 경유, 항공유 등을 포함해 전체 매출의 78.7%(7조 720억 원)를 차지했고, 석유화학 부문이 12.5%(1조 1280억 원), 윤활 부문은 8.8%(7905억 원) 수준이다. 윤활부문이 선전한다고 해도 결국 정유 부문의 정상화가 관건인 셈이다. 이미 다른 사업부문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고 있어 윤활유 사업을 적극적으로 키우기도 어려운 구조라는 분석도 나온다.
에쓰오일은 정유·석유화학 침체로 올해 1분기 215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고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4% 감소한 8조 9905억 원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 글로벌 경기 둔화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여파로 석유제품 수요가 위축되면서 정제마진이 낮아졌고, 이는 곧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동북아 지역 정유사들이 상반기로 계획했던 설비 정기 유지보수를 하반기로 연기하면서 물량이 계속 쏟아져나와 공급이 과잉됐다. 수요가 못 받쳐줘서 제품 가격 하락으로 직결됐다”라며 “3월 이후 원유 가격이 계속 떨어지면서 재무제표 상 재고자산 평가손실이 발생했고, 높은 환율과 글로벌 교역 둔화까지 겹치며 전반적인 수급 불균형과 외부 변수들이 실적 악화에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라고 분석했다.
LS증권은 5월 28일 에쓰오일에 대해 하반기 정제마진 개선 가능성이 높지 않다며 투자의견 ‘홀드(Hold)’를 제시했다. 정경희 LS증권 연구원은 “2025~2026년 전년 대비 소폭의 정제마진 감소를 예상하는데, 이는 순증설 물량이 미미함에도 경제 성장률 하향에 따른 수요 둔화 요인이 클 것으로 보기 때문”이라며 “현재 시황이 턴어라운드 하지 않는다면, 동사는 대규모 설비투자(CAPEX) 투입에도 불구하고 가동률을 급격히 상향시키기 용이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앞서의 정유업계 관계자는 “2분기에 아직 낙관할 만한 요인이 안 보인다. 여름 휴가철과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증산으로 인한 유류비 인하가 기대 요인이지만 올해는 예외적으로 미국의 관세 정책이 수요를 억누르고 있어 쉽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에쓰오일이 중장기 전략 사업으로 점찍은 석유화학 부문 역시 업황 좋지 않긴 마찬가지다. 석유화학 업계는 2022년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 유가와 석유 기반 원료인 납사 가격이 오르면서 원가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세계 경기 둔화가 이어지면서 수요는 따라붙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중국의 대규모 석유화학 설비 증설이 이어지면서 공급 과잉이 심화됐고, 중국이 전방위적인 덤핑으로 석유화학 제품을 시장에 밀어내고 있다.
에쓰오일은 석유화학 제품 매출 미중을 현재 12%에서 2026년 2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내년에 완공하는 국내 석유화학 역사상 최대 사업 ‘샤힌 프로젝트’에는 9조 2580억 원을 투자했다. 이에 대해 증권사 한 연구원은 “석유화학 부문은 중국이 계속 자급률을 높이고 있어 공급과잉이 너무 심한 상황이고 업황이 안 좋다 보니 수익성이 좋을지도 미지수다. 샤힌 프로젝트에 투자한 금액이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현재 업계 전체적으로 시황이 좋지 않지만 장기적인 시황 개선을 염두에 두고 투자를 강화 중이다.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위해 샤힌 프로젝트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