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의 한 관계자가 최근 기자에게 “우리 검찰은 일본의 도쿄지검 특수부(특수부)를 지향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특수부는 한국 검찰 사이에서 일종의 ‘바이블’로 통한다. 수사체제와 정치적 독립 면에서 그 권위와 위상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최고의 엘리트 검사들이 배우려고 하는 도쿄지검 특수부는 어떤 곳일까.
특수부는 금권정치를 가로막는 최후의 보루다. 국민들의 막강한 신뢰를 바탕으로 ‘일본 검찰의 꽃’으로 불린다. 하지만 특수부도 이런 명성을 쌓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특수부는 지난 1947년 출범했지만 초기 20년 동안은 권력의 시녀에 지나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1954년 일어난 ‘조선의혹 사건’. 이때 일본 검찰은 내각의 압력에 굴복해 당시 에이사쿠 자유당 간사장의 구속 일보 직전에서 한발 물러나 불구속 기소에서 ‘타협’해야만 했다. 당시 많은 일본 검사들은 “오늘은 치욕의 날”이라며 눈물 흘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 검찰은 다시 태어나기 위해 뼈를 깎는 자성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22년 뒤인 1976년, ‘록히드 뇌물사건’의 장본인이었던 다나카 전 총리를 구속해 도쿄지검 특수부 ‘전설’의 바탕을 마련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치권력에 눌려있던 검찰의 위상이 크게 올라갔다. 그리고 80년대 다케시타 정권의 붕괴를 가져온 ‘리쿠르트 사건’, 90년대 가네마루 자민당 부총재를 구속시켜 자민당 장기집권에 막을 내리게 한 ‘사가와규빈’ 사건 등 이른바 ‘3대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런 특수부의 ‘힘’에는 언제나 국민들의 ‘감시’가 있었다. 일본 국민들은 특수부가 ‘쉬운 길’을 가려할 때 검찰청 현판에 페인트 세례를 퍼붓는 등 감시자 역할을 충실히 했다.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 부결…국민의힘, 안철수 제외 전원 퇴장
온라인 기사 ( 2024.12.07 17: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