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7명 참가 예선서 7명 생존 저력 보였지만 여자조는 전멸…중국 ‘두터운 선수층’ 맞설 전략 필요 시선도

지난 6월 25일부터 29일까지 닷새간 중국 저장성 취저우에서 열린 제3회 취저우 란커배 세계바둑오픈 통합예선은 그야말로 ‘바둑 전쟁’이었다. 총 377명의 출전자 중 290명이 중국 기사로 채워져, 한국을 비롯한 원정팀은 매 라운드 험난한 중국 기사들의 벽을 넘어야 했다.
이러한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한국은 58명이 출전해 12%에 해당하는 7명이 생존하는 저력을 보였다. 일반조에서는 강동윤, 신민준, 원성진, 송지훈, 나현, 박상진 9단이 치열한 경쟁을 뚫었고, 시니어조에서 ‘세계최강의 공격수’ 유창혁 9단이 건재를 과시하며 본선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신민준 9단은 예선 결승에서 중국의 강자 판팅위 9단을 꺾는 등 의미 있는 승리를 거뒀다. 또 강동윤 9단은 투지캉 3단, 리쩌루이 5단, 타오신란 9단 등 중국의 신예 강자들을 잠재우고 역시 본선 관문을 뚫었다. 7.9%(23명)의 통과율을 보인 중국에 비해 선전한 결과다.
이번 통합예선전의 선전은 과거 세계 바둑계를 호령했던 소수정예 한국 바둑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신진서 9단으로 계보가 이어지는 한국 바둑은 압도적인 선수층을 자랑하는 중국을 상대로 언제나 최고의 기량과 정신력으로 맞서왔다. 이번에 좁은 관문을 통과한 7명의 기사 역시 수많은 중국 강자들과의 연속된 대국을 이겨낸 최정예라는 점에서 그 명맥을 잇고 있다.
하지만 아픈 현실도 마주해야 했다. 13명의 선수가 출전하며 기대를 모았던 여자조는 단 한 명의 본선 진출자도 내지 못하고 전원 탈락의 쓴잔을 마셨다. 한국은 여자바둑의 대들보인 김은지, 김채영 9단이 예선 결승에 진출했으나 각각 중국의 우이밍 6단, 탕자원 6단에게 패해 여자조에 걸린 3장의 티켓을 모두 중국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특히 김은지 9단의 패배가 아쉬웠다. 천천 초단, 추커얼 4단, 차이비한 4단에 이어 준결승에서 선배 오유진 9단을 꺾고 결승에 오른 김은지는 예선 결승에서 중국의 라이벌 우이밍 6단에게 340수까지 가는 혈전을 벌였으나 1집 반 차로 석패, 무릎을 꿇었다. 최근 높은 승률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고배를 마셨던 아쉬운 패턴이 이번에도 반복되는 순간이었다.

이번 란커배는 최근 세계 바둑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중국의 경향성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본선을 48강전으로 시작하는 란커배처럼, 최근 중국은 춘란배(24강)를 제외한 대부분의 자국 주최 세계기전 본선 규모를 48강, 64강 등으로 대폭 확장하고 있다. 이는 기존 세계대회의 표준처럼 여겨졌던 32강이나 24강전 위주 방식과는 대조적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세계 최강이라 자부하는 중국의 압도적인 선수층과 그에 기반을 둔 자신감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본선 참가자 수를 늘리면 자연스럽게 자국에 더 많은 출전권을 배분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세계 정상급 기사뿐만 아니라, 잠재력을 지닌 신예들에게도 귀중한 국제무대 경험을 제공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단기적인 성적을 넘어, 장기적으로 중국 바둑의 저변을 더욱 견고하고 두텁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 것이다.
반면 이러한 변화는 한국이나 일본 등 경쟁국 입장에서 우승으로 가는 여정이 이전보다 훨씬 험난한 가시밭길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소수의 최정상급 기사에게만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중국의 인해전술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따라서 허리가 튼튼한 두터운 선수층 확보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결국 중국 주최 세계기전의 본선 확대는 단순히 참가자를 늘리는 양적 팽창을 넘어, 세계 바둑의 판도 자체를 자국에 유리하게 재편하려는 고도의 전략적 포석으로 해석된다.
한편 이러한 구도 속에서 한국은 예선을 통과한 7명의 기사와 함께 디펜딩 챔피언 신진서 9단, 국제대회 우승자 시드의 변상일 9단, 국가대표 상비군 시드의 안성준 9단까지 합류한 총 10명의 최정예 멤버가 도전에 나선다. 수적으로 절대 열세인 상황에서 31명에 달하는 중국의 거대 군단을 상대로 한국 선수들이 어떤 승부를 펼쳐 보일지 주목된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