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고 탈 많은 요 ‘입’을 어찌할꼬
▲ 윤창중 수석대변인의 과거 발언과 글 등이 알려지면서 친박계 내에서조차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박근혜 당선인의 ‘입’으로 깜짝 기용된 윤창중 수석대변인을 둘러싼 잡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윤 대변인의 과거 발언과 글 등이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야권과 시민단체는 윤 대변인의 사퇴를 주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박근혜식 인사 스타일을 꼬집으면서 일제히 공세를 가하고 있다.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윤 대변인 발탁은 적절하지 못했다며 곤혹스러워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윤 대변인의 흔적들을 되짚어봤다.
“진심이 아닐 것이다.”
지난 12월 25일 윤창중 수석대변인의 임명 기자회견장에 있었던 한 정치부 기자는 “내가 아는 윤 선배(윤 대변인) 모습이 아니다”라면서 “정치인 다 됐다”며 다소 비꼬는 투로 말했다. 윤 대변인이 “제가 쓴 글과 방송에 의해 마음에 상처를 입은 많은 분들께 송구스럽다”고 밝힌 부분에 대해 그 진정성을 믿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반응은 그만큼 윤 대변인이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강성’ 이미지가 강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일각에선 그를 ‘극우 논객’으로 칭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대변인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표명한 것은 박근혜 당선인에게로까지 불똥이 튈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윤 대변인 임명은 박 당선인이 꺼내든 첫 번째 인사다. 따라서 윤 대변인의 과오는 고스란히 박 당선인에게로 옮겨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대변인이라는 자리가 당선인의 의사 전달과 여론 창구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윤 대변인은 철저하게 자신을 숨길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야권과 시민단체는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전 원내대표는 “그분(윤 대변인)이 어떤 글을 썼으며 특히 대선기간 동안에 얼마나 많은 문재인 후보 지지자를 매도를 했냐”면서 “박 당선인의 성공과 (조부인) 윤봉길 의사를 생각한다면 스스로 사퇴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환 민주통합당 의원도 “국민통합을 해나가려고 하는 박 당선인의 의도 내지는 비전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다.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무슨 말씀을 하더라도 당선인 생각보다는 윤 대변인 개성으로 비쳐서 무난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그것도 친박 내에서조차 윤 대변인 임명을 놓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대탕평과 대통합을 외치고 있는 박 당선인이 첫 인사부터 야권에 막말을 일삼아 온 인사를 발탁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한 친박계 재선 의원은 “윤 대변인의 경우 정치권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사람이다. 윤 대변인의 글과 말에 모욕감을 느꼈다는 동료 의원도 있다. 통합과는 애초에 거리가 멀다. 박 당선인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 같아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몇몇 친박 의원들은 “그런 인물을 쓰느니 차라리 검증이 된 현역 의원들을 쓰는 게 낫다. 윤 대변인을 천거한 것으로 알려진 박 당선인 측근이 사태의 원인”이라며 비선 라인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박 당선인 인사의 문제점을 꼬집기도 했다.
이처럼 윤 대변인이 뭇매를 맞고 있는 것은 그의 과거 발언과 글 때문이다. 특히 윤 대변인은 박근혜 당선인과 대선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높았던 안철수·문재인 두 대권 후보와 그 지지자들을 겨냥해 도를 넘은 막말로 원성을 산 바 있다. 윤 대변인은 지난 4월 30일 온라인매체 ‘윤창중의 칼럼세상’에 “문재인의 얕음. 상황의 유·불리에 따라 이 말 저 말 하며 운신을 바꿔가는 그의 카멜레온적 기질을 고발한다”며 문 후보를 공격했다. 이어 7월 20일엔 “안철수 젖비린내 난다. 뭐가 됐든 대단한 ‘무엇’이 안철수의 머릿속에 내장돼 있기 때문에 열광하겠지 하며 긴장했는데. 이건 젖비린내 나는 20대 운동권의 유치찬란한 사유체계 그대로 아닌가”라며 안 전 후보를 깎아내렸다.
윤 대변인은 안철수·문재인 간 단일화에 대해서도 “권력을 잡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한 편의 막장 드라마”, “박근혜 후보를 깰 수 없으니 원 플러스 원 상품을 만들려는 것”과 같은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이 과정에서 안 전 후보를 ‘콘텐트 없는 약장수’, 안 전 후보 지지자들을 ‘안빨’이라고 비하하기도 했다. 윤 대선인은 대선이 끝난 직후 이뤄진 한 방송 인터뷰에서도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려는 세력이 문 후보를 지지하는 세력 안에 완벽하게 들어가 있다”고 주장해 일부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또한 윤 대변인은 김영삼 전 대통령 아들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전 부소장을 비롯해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인사들을 가리켜 ‘정치적 창녀’로 빗대 구설에 올랐다. 윤 대변인 임명 소식을 접한 김 전 부소장이 자신의 SNS 등을 통해 “윤창중. 깃털 같은 권력 나부랭이 잡았다고 함부로 주둥아리를 놀리는데. 창녀보다도 못난 놈”, “윤창중 같은 작자는 일본 같으면 독도에 말뚝을 박았을 극우 극단주의자”라는 거친 글을 올린 것도 이 때문이다.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도 “진영을 옮긴 것 때문에 정치적 창녀라는 표현을 쓴 것이라면 한광옥, 김경재 전 의원 등 대통합 행보에 동참하기 위해 새누리당으로 이동한 분들 중에도 상처받을 분들이 많다”며 윤 대변인의 발언을 꼬집었다.
윤 대변인의 말 바꾸기도 도마에 올랐다. 윤 대변인은 임명 발표 사흘 전 출연한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에서 사회자가 “박근혜 정부에 들어갈 생각 있느냐”라고 묻자 “윤봉길이 광복하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느냐. 그렇게 말하는 것은 나에 대한 모욕”이라며 거절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그런데 불과 며칠 뒤 수석대변인으로 발탁되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윤 대변인은 임명 기자회견에서 “사실 윤봉길 의사가 제 문중의 할아버지다. 저는 윤봉길 의사가 대한민국 정부 첫 인선에 제안을 받았다면 애국심 때문에 거절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자신의 권력욕을 감추기 위해 독립운동가인 문중의 할아버지까지 판다”는 목소리가 높다. 윤 대변인과 윤봉길 의사는 ‘36촌간’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윤 대변인은 박근혜 당선인을 향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번 윤 대변인 임명을 두고 ‘보은 인사’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윤 대변인은 지난 12월 21일 ‘박근혜 일기 보면 박근혜 대통령 보인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대통령 박근혜는 단언컨대 국민들에게 ‘박정희+육영수의 합성사진’을 연상시키고도 남을 대쪽 같은 원칙과 책임의 정치를 펼칠 것”이라고 썼다. 이어 윤 대변인은 “박근혜 유전자에는 배신에 대한 치 떨리는 분노가 잠재돼 있다. 박근혜는 깊이 신뢰하는 사람을 절대 버리지 않으면서도 권력의 틀을 짤 때 결코 2인자를 만들지 않는다. 자신을 중심으로 방사형, 즉 친박계 대부분이 수평적 위상을 갖도록 했다”며 박 당선인의 용인술을 칭찬했다.
이러한 과거 행적들로 인해 윤 대변인에 대한 사퇴 여론이 확산되고 있긴 하지만 박 당선인이 인사를 철회하지는 않을 것이란 게 정치권의 우세한 관측이다. 박 당선인 핵심 측근 역시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금은 실패한 인사라 하더라도 물릴 수 없는 상황이다. 박 당선인이 직접 ‘윤창중 카드’를 골랐기 때문이다. 실패를 인정하는 꼴 아니냐. 여기서 밀리면 향후 인사권 행사에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 주변에서는 윤 대변인이 박 당선인의 청와대 입성 전 2개월가량만 직책을 맡을 것이란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박 당선인이 계속 윤 대변인을 안고 가기엔 부담을 느끼고 있을 것이란 얘기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