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배 1승 6패에서 지지옥션배 6연승으로 부활…‘창의적인 전투 바둑’ 한 단계 성장 평가

추락의 시작은 2024년 6월, 중국 장쑤성에서 열린 제10회 황룡사배 세계여자바둑대회였다. 국제 여자대회로는 최초로 8인 풀리그 방식의 이 대회에서 최정은 1승 6패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무엇보다 데뷔 후 처음으로 여자 기사에게 6연패를 당하는 충격은 그녀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스스로도 ‘바둑 인생 최악의 시기’라고 꼽을 만큼 깊었던 슬럼프는 해를 넘겨서도 이어졌다. 2025년 3월 일본 도쿄 센코컵 결승에서는 한수 아래로 여겨졌던 일본의 10대 신예 우에노 리사 3단에게 뼈아픈 반집 패를 당하며 국제전 우승 문턱에서 또 한 번 좌절했다.
기나긴 터널의 끝은 5월에 열린 2025 닥터지 여자 최고기사 결정전에서 찾을 수 있었다. 패자조 결승에서 한국 이적 후 돌풍을 일으키던 스미레 4단을 제압한 최정은, 결승 3번기에서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던 신성 김은지 9단을 2-1로 꺾고 대회 5연패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이 상징적인 우승으로 최정은 6월 한국기원 랭킹에서 9472점을 기록, 8개월 만에 여자 1위 자리를 탈환하며 ‘최정-김은지’ 양강 구도를 다시 자신의 우위로 돌려놓았다.
부활의 서막을 연 최정의 질주는 팀 대항전에서 절정에 달했다. 제19기 지지옥션배 신사 대 숙녀 연승대항전에서 숙녀팀은 신사팀의 선봉 이창호 9단에게 7연승을 헌납하며 궤멸 직전의 위기에 몰렸다.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 ‘소방수’로 등판한 최정은 첫판에서 ‘국보’ 이창호를 꺾는 이변을 연출한 뒤 서봉수·이상훈·안조영·한종진·서중휘 9단까지 내리 제압하며 6연승을 내달렸다.
비록 28일 조한승 9단에게 패하며 7연승 도전은 멈췄지만, 그의 6연승은 팀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개인의 연승 기록은 아쉽게 됐으나, 남은 기사 기준 11 대 4까지 벌어졌던 스코어를 6 대 4로 좁히며 초반의 암울했던 분위기를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으로 백팔십도 바꿔놓았다.
전문가들은 최근 최정의 행보에 대해 “단순한 회복을 넘어 한 단계 성장했다”고 평가한다. 슬럼프를 겪으며 얻은 깨달음이 경기 운영 방식의 변화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과거 힘으로 밀어붙이던 스타일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전투 바둑을 구사하면서,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올라섰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진화한 최정의 다음 시험대는 통산 세 번째 우승을 노리는 IBK기업은행배 결승 무대다. 최정은 16강에서 이나경 2단, 8강에서 허서현 5단에 이어 4강에서 전기 우승자 김채영 9단까지 연파하며 압도적인 기량으로 결승에 선착했다.
결승 상대는 ‘여자바둑 대표팀 코치’에서 선수로 돌아온 오정아 5단이다. 오정아 5단 역시 오유진 9단, 스미레 4단, 김신영 3단 등 쟁쟁한 강자들을 차례로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4년 만에 다시 이 대회 결승 무대를 밟게 됐다. 두 사람은 2021년 열린 1기 대회 결승에서 만나 최정 9단이 2-0 완승을 거두며 초대 챔피언에 오른 바 있다. 상대 전적 역시 최정이 18승 5패로 크게 앞선다.
하지만 이번 대결은 특별한 서사를 품고 있다. 최정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코치와 선수로 동고동락했던 오정아 5단과 결승에서 만나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 최선을 다해 싸우겠다”고 밝혔다. 오정아 5단은 “4년 전 첫 결승에서는 저만의 바둑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다. 이번에는 후회 없는 승부를 펼쳐 우승에 도전하겠다”는 다부진 각오를 전했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은 IBK기업은행배는 우승 상금을 3000만 원에서 국내 여자 개인전 최고 수준인 5000만 원으로 대폭 인상하며 대회의 위상을 높였다. 8월 13일 새로운 우승자가 탄생하게 될 이번 결승전은 두 기사의 자존심뿐만 아니라 여자 바둑 최고 상금의 주인공을 가리는 무대이기도 하다.
지난해 깊은 그늘 속에서 고개를 떨궜던 ‘바둑여제’가 슬럼프라는 상흔을 경험 삼아 한층 단단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의 두 번째 전성기가 이제 막 시동을 건 지금, 4년 만의 리턴매치에서 어떤 명승부로 자신의 화려한 귀환을 증명할지 바둑 팬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