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환자 죽음 돕는 아이러니 통해 ‘무엇이 올바른가’ 질문 던져
배우 이보영이 조력 사망, 즉 안락사를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를 내놓으면서 꺼낸 말이다. 8월 1일 방송을 시작한 MBC 금토 드라마 ‘메리 킬즈 피플’이 국내에서 처음 조력 사망을 다뤄 주목받고 있다. 유능한 의사가 시한부 말기 암, 불치병 등으로 고통 받으면서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인물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을 도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보영 “연로한 부모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
‘메리 킬즈 피플’은 치료가 가능하지 않은 환자들의 조력 사망을 돕는 의사들과 이를 추적하는 형사의 대립을 그린 서스펜스 스릴러 드라마다. 캐나다에서 방송한 동명의 드라마를 리메이크해 우리 정서에 맞춰 각색했다. 이보영이 연기하는 주인공 우소정은 응급의학과의 베테랑 의사로 실력을 인정받지만, 한편으론 남들은 모르는 트라우마를 가졌다. 어린 시절 희귀병에 걸린 어머니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을 도왔던 기억이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이보영이 ‘메리 킬즈 피플’의 제안을 받은 건 2024년 7월이다. 마침 해외에서 노부부가 나란히 안락사를 선택해 함께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가 대대적으로 보도된 시기다. 이보영은 “작품을 선택할 때 캐릭터의 매력을 고려하기도 하지만, 어떤 드라마는 제가 그 당시 고민하거나 처한 상황과 맞는 내용에 확 끌린다”고 했다. 노부부의 안락사 뉴스뿐 아니라 연로한 부모님으로 인해 “삶과 죽음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던 차였다”고도 했다. 부모님의 건강과 곧 다가올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와중에 조력 사망을 다룬 드라마를 접하면서 그 소재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는 의미다.
물론 조력 사망은 국내에서 불법인 만큼 드라마 방송 직후 일어날 논란의 여지도 감안해야 했다.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이보영은 “(부모님의 영향으로) 이제는 이런 소재를 꺼내 말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며 “재미를 위한 소재는 분명 아니지만, 이런 주제를 다뤄보고 싶은 마음으로 참여했다”고 돌이켰다. 특히 출연 결정의 과정에서 접한 해외 노부부의 조력 사망 관련 기사를 두고 남편인 배우 지성과 오랜 기간 깊게 대화를 나눴다고도 했다. “노부부의 조력 사망 기사를 보면서 남편과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며 “함께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것도 행복한 삶을 살다 간 게 아닐까”라고 생각을 밝혔다.
드라마에서 의사 우소정은 더는 진통제도 듣지 않는 말기 암 환자의 선택을 존중하면서 약물로 생을 끝내도록 돕는다.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인물이다. 대장암 말기의 10대 고교생이 겪어야 할 더 큰 고통을 줄이기 위해 소년과 그 부모의 선택을 존중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력 사망은 스위스 등 일부 국가에서는 시행되지만, 국내에서는 엄격하게 금지된 행위다. 때문에 극 중 우소정이 조력 사망을 벌이는 과정에는 은밀하게 이뤄지는 약물 거래 등 온갖 불법 행위가 따른다. ‘과연 조력 사망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동시에 ‘생명을 살리는 의사의 죽음을 돕는 행위’라는 아이러니도 만들어낸다.
#조력 사망 의사들을 좇는 형사
현재 조력 사망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시선은 엇갈린다. 엄연한 살인 행위라는 비판도 있지만 노년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성을 지키고 싶다는 바람으로 현실에서 ‘존엄사’에 관한 논의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에서 등장한 ‘메리 킬즈 피플’의 제작진은 작품을 만드는 데 더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연출을 맡은 박준우 감독은 드라마의 장르를 서스펜스 스릴러로 설정해 죽음을 앞둔 불치병 환자들의 고통 없는 죽음을 돕는 의사들과 이를 추적하는 형사들의 수사를 양측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박 감독은 “특이한 점은 주인공인 이보영과 동료인 강기영은 경찰 쪽에서 보면 연쇄살인마이지만 드라마에는 ‘왜 안락사라는 불법적인 사실을 벌였나’에 대해 묻는 핵심의 주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람을 살리는 직업인 의사가 환자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아이러니를 통해 ‘무엇이 올바른가’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고도 밝혔다.

이민기 역시 조력 사망 드라마에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있었지만, 최근 존엄한 죽음에 관해 생각하는 과정에서 ‘메리 킬즈 피플’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이보영과 비슷한 과정이다. 이민기는 “조력 살인은 분명한 살인임에도 그 과정을 지켜보며 혼란을 느끼는 인물인데 그런 고뇌가 시청자에게도 잘 전달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제작진은 왜 두 주인공으로 이보영과 이민기를 택했을까. 박준우 감독은 “택한 게 아니라 드라마가 두 배우로부터 선택을 받은 것”이라며 “아주 젊은 배우들은 아니기에 가족의 죽음이나 주변 죽음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봤을 거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방송통신위원회 심의 규정에 ‘자살을 조장하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는데 드라마에서 비슷한 설정이 있어서 19세 이상 시청 등급으로 결정하고 작품의 본질적인 것들을 표현하는 데 더 집중했다”고도 거듭 강조했다.
어렵게 선택한 만큼 배우들의 각오와 바람도 특별하다. 이보영은 “조금이나마 조력 사망에 대한 이야기 나눌 시간 되면 좋겠다”며 “만약 드라마가 논란이 된다면 그만큼 많이 봤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고 밝혔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