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보험 들면 5년이 편하다’
▲ 이른바 ‘친박 3인방’으로 불리는 이들이 박 당선인 인사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국립현충원을 찾아 참배하고 나오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
박근혜 당선인은 정치 입문 후 현장에서 만났거나 평소 관심이 가는 사람들을 꼼꼼히 기록해 둔 것으로 전해진다. 인상 깊게 봤던 칼럼의 저자를 메모해둔 후 몇 년이 지나 직접 연락해 만났다는 일화도 있다. 친박 의원들은 바로 이 ‘인물수첩’이 박근혜 정부 인사의 바탕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막말’ 발언 등으로 인해 부적절하다는 평가가 많았던 윤창중 수석대변인 역시 이 수첩에 적혀 있었던 이름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한 친박 의원은 “어느 날 박 당선인이 내 대학동기인 교수가 어떤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일면식도 없었지만 그 교수가 쓴 글이 마음에 든다고 하면서 관심을 나타냈다. 그 교수는 지난 대선 기간에 캠프에서 일했다”고 귀띔했다.
박 당선인의 이러한 인사 스타일에 누가 도움을 주고 있는지는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친박 의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박 당선인 측근 L 씨, 현역 의원 C, 싱크탱크 출신 A 교수 등이 인사 실무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른바 ‘친박 3인방’으로 불리는 이들이 박 당선인 인사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박 당선인의 원로그룹, 멘토단 등 다른 채널을 통해서도 인사 추천이 들어오고 있긴 하지만 3인방이 박 당선인 인사의 핵심 업무를 맡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들의 역할에 대해 대다수 친박 관계자들은 “당직자 임명하는 것도 아니고 그 많은 사람을 어떻게 박 당선인이 일일이 발탁하느냐. 3인방이 인사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을 것”이란 분석에 힘을 싣고 있다.
3인방을 포함한 박 당선인의 몇몇 측근이 인사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들에게 ‘줄을 대려는’ 움직임도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특히 정권 교체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공직사회(사정기관 포함)와 재계에서는 학연·지연 등을 총동원해 이들과의 ‘핫라인’ 구축에 나선 상태다. 박 당선인의 인사 라인이 극히 한정된 탓에 3인방을 향한 구애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후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정권 초기가 매우 중요하다. 눈에 잘 들어야 5년이 편안하다”면서 “핵심 실세로 분류되는 인사들에게 보험을 들면 된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게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이런 가운데 <일요신문>은 박 당선인의 인사와 관련한 몇 가지 사례들을 직접 포착할 수 있었다. 최근 여의도에서는 법조계의 한 전직 고위 인사가 차기 정부 법무부 장관 혹은 민정수석 자리에 발탁될 것이 확실시된다는 얘기가 돌았다. 해당 인사가 A 교수와 자주 운동을 하며 절친한 사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실제로 지난 대선 기간 이 법조계 인사는 A 교수를 통해 박 당선인과 여러 차례 의견을 주고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이 인사가 “차기 검찰총장은 누구, 서울중앙지검장은 누구”와 같은 다소 앞서가는 발언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A 교수까지 덩달아 뭇매를 맞고 있다. 몇몇 친박 의원들은 “A 교수가 언제부터 친박이냐. 박 당선인이 신뢰를 한다고 월권을 하고 있다. 지금 A 교수를 향해 각종 청탁이 들어오고 있다는데 경거망동해선 안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 법조계 인사의 중용설이 퍼지면서 일부 검찰 간부들도 그를 접촉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감지되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검찰은 박 당선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 검찰 개혁을 공약으로 내건 이상 어떤 식으로 인사가 날지 모르기 때문”이라면서 “여러 경로를 통해 박 당선인 측근들과 친분을 쌓고 있는 검사들이 제법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재계 역시 박 당선인 주변과 선을 대려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어느 정권에서든 소위 ‘잘나가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곳은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정권에게 잘 보여 승승장구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밉보일 필요는 없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심리다. 일례로 한화그룹의 경우 조바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승연 회장의 친동생 김호연 의원이 친박이긴 하지만 검사 재직 시절 한화그룹을 향해 비수를 들이댔던 남기춘 전 서부지검장이 박근혜 정부에서 요직에 임명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신년 초 C 의원과 몇몇 대기업 최고위직 임원들이 회동을 가진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서울의 한 중식당에서 열린 그날 모임엔 C 의원을 비롯해 10여 명의 대기업 임원이 참석했다고 한다. 모두 국내에서 30대 그룹 안에 속하는 내로라하는 대기업 소속이었다. 당시 회동에 참석했던 임원의 한 측근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박근혜 당선인의 대선 승리 축하와 신년 인사를 겸해서 만난 것이다. 평소 C 의원과 친분이 있었다”면서도 “솔직히 말하면 C 의원에게 눈도장 한 번 찍으러 간 것”이라고 고백했다.
측근 L 씨 역시 영향력 면에선 그 누구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박 당선인의 ‘복심’으로 불리는 L 씨는 박 당선인의 의중을 가장 잘 아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오죽하면 국회 주변에서 ‘금배지들도 무서워하는 측근’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다. 박 당선인이 대선에서 승리한 후 L 씨의 위세는 더욱 등등해졌다. 한 친박 의원이 식사 자리에서 L 씨에게 ‘장관 자리’를 농담조로 부탁했다가 면박을 들었다는 후문도 들렸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L 씨의 입지가 과대평가됐다는 얘기도 있다. 철저히 본인의 임무에 충실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를 천거한다든가 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다만, 박 당선인에게 올라가는 보고를 취사선택하는 과정에서 L 씨의 입김이 들어갈 순 있지 않겠느냐. 그런 점에서 L 씨는 문고리 권력의 핵심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