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USA 대회는 짜고 치는 쇼다”
▲ 미스 USA 선발대회에 참가했던 쉬나 모닌이 대회가 조작됐다는 의혹을 제기해 논란이 일고 있다. UPI/연합뉴스 |
우선 모닌의 주장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지난해 6월 3일 밤, 미스 USA 선발대회가 열린 라스베이거스 ‘공연예술극장’의 무대 뒤에서 모닌은 도무지 사실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을 들었다. 톱16이 발표되는 내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미스 플로리다인 카리나 브레즈가 무대 뒤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톱5가 누군지 알고 있어”라는 이상한 말을 한 것이었다.
놀란 모닌이 “누군데?”라고 묻자 브레즈는 “오늘 아침 우연히 방송 스크립트를 봤는데 거기에 톱5 명단이 적혀 있었어”라는 충격적인 말을 했다. 그리고 브레즈는 명단에 있던 다섯 명의 이름을 차례로 댔다. 설마하며 믿지 못했던 모닌과 몇몇 참가자들은 우선 톱5가 호명될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최종후보 다섯 명의 이름이 하나씩 호명되는 순간 모닌은 충격에 휩싸였다. 브레즈가 언급한 후보들, 즉 미스 로드아일랜드, 미스 조지아, 미스 네바다, 미스 오하이오, 그리고 미스 메릴랜드가 모두 톱5에 오른 것이다. 순간 배신감에 휩싸인 모닌은 대회가 전부 조작됐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즉시 미스 펜실베이니아 왕관을 벗어던질 것을 결심했다.
다음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퇴 사실을 밝힌 그는 “나는 그동안 정직과 페어플레이, 공정한 기회, 도덕적 청렴을 믿어왔다. 그런데 이런 내 가치가 미스 USA 대회와 더 이상 일치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 “공정하지 못하고 도덕적이지 못한 조직에 더 이상 몸담고 싶지 않다”며 왕관을 반납하겠노라고 말했다. 또한 그녀는 더 나아가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더 이상 어떤 식으로라도 사기를 치고, 비도덕적이고, 모순적이고, 여러 면에서 쓰레기 같은 미스 유니버스 조직과 연관되고 싶지 않다”며 조직위를 정면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 왼쪽부터 도널드 트럼프 조직위 공동위원장이 미스 USA 대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과 미스 USA로 선정된 올리비아 컬포. |
이에 미스 USA와 미스 유니버스 조직위원회 측이 발끈한 것은 물론이었다. 모닌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는 한편 즉각 반박을 하고 나선 조직위 측은 모닌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일 뿐더러 사실은 그녀가 다른 이유에서 사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직위의 한 관계자는 모닌이 대회 다음 날 미스 유니버스 조직위에 보내온 이메일을 증거로 제시하면서 “사실은 조직위가 성전환자들에게도 대회 참가를 허용한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사퇴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미스 유니버스는 지난해 미스 유니버스 캐나다 예선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은 제나 텔레코바에게 대회 참가자격을 부여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조직위 측이 제시한 이메일에서 모닌은 “저는 미스 USA 대회가 기본 원리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부하는 바입니다. 생물학적으로 남자로 태어난 사람들에게 대회 참가를 허용한다는 건 제 도덕심에 반하는 일입니다”라고 적었다. 이에 조직위 측은 모닌이 갑자기 ‘사기극’ 운운하며 말을 바꿔 사퇴한 것은 자신이 톱16에 들지 못한 데 대한 불만 때문이 아니겠냐고 주장했다.
미스 USA와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소유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조직위 공동위원장도 거들고 나섰다. 그는 ABC 방송의 <굿모닝아메리카>에 출연해서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라고 일축하는 한편 특유의 막말을 거침없이 쏟아부었다. 그는 “그저 루저의 회한일 뿐이다”라고 말하면서 “동성애 문제 때문이 아니다. 문제는 그녀가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는 것이고, 그것 때문에 그녀가 화가 난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를 잠깐 훑어만 보고도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톱16에 들 자격도 없는 여자였다”고 힐난했다.
▲ 미스 플로리다 카리나 브레즈 |
그렇다면 미리 작성된 톱5의 명단을 봤다고 알려진 미스 플로리다의 입장은 어떨까. 조작 의혹이 제기된 후 브레즈는 즉각 “내 이름이 왜 거론되는지 모르겠다. 장담컨대 조작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 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TMZ>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하지만 미스 펜실베이니아나 다른 미스 USA 대회 참가자들에게 최종 후보 5인에 대해 어떤 말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 후 그녀는 입장을 바꿔 “그날 무대 뒤에서 이름이 적힌 서류를 보긴 했다. 그저 농담 삼아 ‘이거 혹시 최종 후보 이름들 아니야?’라고 말한 것뿐이었다. 대회 스트레스 때문에 그냥 가볍게 한 말이었다. 진심은 아니었다”고 한발 물러섰다.
이에 모닌은 즉각 NBC 방송의 <투데이쇼>에 출연해 브레즈의 말바꾸기에 대해 비난하면서 “나는 심리학을 전공했고, 석사과정까지 밟았다. 수년 동안 심리 트레이닝을 받았기 때문에 누가 농담을 하는지, 누가 겁을 먹고 있는지, 혹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날 브레즈의 보디랭귀지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브레즈는 미스 유니버스 조직위의 명성에 잠재적으로, 그리고 엄청나게 흠이 될 무언가를 봤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었다. 두려움 때문에 말을 바꾼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그녀는 “내 주장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내가 보고 들은 것을 믿는다”라며 앞으로 계속해서 싸우겠노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녀의 싸움이 얼마나 불리한지는 최근 내려진 판결을 보면 알 수 있다. 지난달 19일 사건 중재를 맡은 시어도어 카츠 지방법원 판사가 모닌에게 ‘미스 USA 조직위의 명예를 훼손했으니 피해보상금으로 500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카츠 판사는 모닌의 주장이 거짓인 데다 유해하고 악의적이라고 말하면서 조작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했고 주장이 신빙성이 없다면서 이와 같은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모닌이 톱16에 들지 못해 상심한 상태이고 성전환자 후보의 참가를 허용한 주최 측의 결정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 이와 같은 판결을 내린 결정적인 이유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모닌에게는 매우 안 된 일이다. 하지만 그녀의 잘못이다. 그녀는 정말 고약했다. 아마 비싼 교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모닌은 <피츠버그트리뷴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진실을 말했을 뿐인데 이런 판결을 내리다니 어이가 없다”면서 “곧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녀는 “실제 대회 규정에는 트럼프를 비롯한 조직위의 고위간부들이 최종 후보 5인과 우승자를 선정할 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명시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조직위 측은 “그렇긴 하지만 이 규정이 적용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반박하면서 앞으로 조작 논란의 2라운드를 예고했다.
사실이 무엇이건 그렇지 않아도 미인대회에 대한 거부감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과연 이번 논란이 앞으로 미인대회의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