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타깃은 또 ‘김성근’이었어?
▲ 고양 원더스와 KBO가 소원해진 이면에는 기존 구단들의 ‘안티 김성근’ 정서가 깔려있었다. 사진은 김성근 감독.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하지만, KBO 양해영 사무총장은 “우리는 처음부터 원더스에 어떤 약속도 한 적이 없다”며 “지난 시즌처럼 퓨처스리그에서 번외 48경기만을 편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프로야구의 젖줄’이 되길 자청한 원더스와 원더스 창단을 적극 유도했던 KBO가 소원해진 사연을 추적했다.
지난해 연말.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퓨처스리그 정식 편입 문제를 두고 원더스와 KBO가 엇갈린 주장을 펼쳤다.
먼저 문제를 제기한 쪽은 원더스였다. 12월 26일 하송 원더스 단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KBO가 ‘퓨처스리그 정식 참가를 도와주겠다’고 제안해 독립구단 원더스를 창단했으나 KBO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2013년도 퓨처스리그 정식 참가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KBO는 지금이라도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2011년 12월 창단한 원더스는 지난해 처음으로 퓨처스리그에서 뛰었다. 하지만, 신분은 퓨처스리그 정식 소속 구단이 아닌 일종의 옵서버였다. 경기도 번외경기로 치러졌고, 경기수도 48경기밖에 되지 않았다.
당시 KBO는 “원더스가 독립구단이기 때문에 당분간 정식 회원사와 퓨처스리그를 동일하게 뛰는 건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 단장은 “지난 시즌은 그렇다손 쳐도 올 시즌은 상황이 다르다”며 “KBO의 약속은 2013년부터 유효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 단장은 또한 “KBO가 수차례의 미팅과 전화통화로 독립구단 창단을 유도하며 ‘퓨처스리그에서 한 시즌 100경기 이상을 치르도록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KBO가 우리 측에 보내준 ‘독립구단 유치 제안서’에서도 창단 후 퓨처스 북부리그 참가를 명시하고 있다. 결국 KBO 약속을 믿고 허민 구단주가 사재를 털어 독립구단 원더스를 창단하기로 했다. 하지만, KBO는 ‘창단 첫 해 경기력이 떨어질 수 있으니 일단 번외경기 48경기를 치르고, 2013년부터 퓨처스리그에 정식으로 참가하자’고 말을 바꿨다. 2011년 9월 6일 KBO 단장회의에서도 ‘기존 퓨처스리그 팀들은 팀당 50, 60명의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원더스는 아직 30명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퓨처스리그 102경기를 소화하는 건 무리가 있다’며 ‘2012년은 번외 48경기를 치르고, 2013년부터 정식 퓨처스리그에 편입시키자’고 결정했다. 당시 우리는 내부적으로 창단을 보류했지만, KBO에서 ‘9구단 NC도 창단 후 1년간 퓨처스리그에서 뛰고 2년째부터 정식 1군 리그에 편입된다’고 설득해 다시 창단을 결정했다. 만약 2013년부터 퓨처스리그에 정식 편입시켜주겠다는 KBO의 약속이 없었다면 우린 일찌감치 창단 의사를 접었을 것이다.”
원더스는 KBO의 약속을 믿고 지난 시즌 퓨처스리그 팀들과 48경기의 번외경기를 치렀고, 20승7무21패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예상보다 뛰어난 성적에 자극받은 원더스는 “다음해부터 퓨처스리그로 정식 편입되면 전해보다 더 놀라운 성적을 거두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 KBO가 보낸 공문을 보고 하 단장은 깜짝 놀랐다. 그 공문엔 ‘2013시즌을 포함, 2014년까지 기존대로 48경기의 교류전만을 허용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KBO는 “원더스의 약속 운운에 어이가 없다”며 “도대체 뭘 약속했다는 소린지 모르겠다”고 목소릴 높였다. KBO의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독립구단 창단을 유도한 건 사실이지만, 2013년부터 퓨처스리그에 정식 합류시켜주겠다는 약속은 전혀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원더스가 창단했으나, 다른 독립구단이 전무한 상황이었다. 결국 KBO 정식 회원사는 아니지만, 독립구단의 경기력 발전과 성장을 위해 퓨처스리그 팀들과 번외 경기를 치르도록 배려했다. 그것도 기존 회원사들이 반발하는 가운데 KBO가 열심히 설득해 얻어낸 성과물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2013년부터 퓨처스리그에 정식으로 편입시켜주겠다’는 약속은 한 적이 없다. 원더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가 약속을 했다면 증명서류와 날인된 계약서를 보여주길 바란다. 다만, 실무 관계자가 ‘우선 2012년엔 번외 48경기를 치르고, 시즌 종료 후 구체적인 편입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을 뿐이다. 그걸 빌미삼아 ‘KBO가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하는 건 분명한 억지다.”
과연 어느 쪽 말이 사실일까. 하 단장은 “KBO가 날인된 계약서가 있어야만 약속으로 인정한다면 우리도 할 말은 없다”며 “구두 약속과 단장회의 결과만 믿었던 우리 책임이 더 클지 모른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하 단장은 “원더스의 경기력이 아직까지 100경기 이상을 소화하기엔 문제가 있다는 KBO의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경기력 저하를 걱정하던 KBO의 우려를 불식하려고 김성근 전 SK 감독을 영입했고, 9명의 코치진이 김 감독을 보좌하도록 했다. 선수단 전체가 90일간의 국외전지훈련을 떠난 것도 경기력 향상을 위해서였다. 덕분에 48경기에서 5할에 가까운 승률을 기록했고, 1.5군 선수들이 대거 포함된 기존 프로야구팀들을 이겼다. 특히나 현재 원더스 선수는 48명으로 늘어 퓨처스리그에서 100경기 이상 소화가 가능하다. KBO에 묻고 싶다. ‘직원 가운데 원더스 경기를 제대로 본 사람이 있느냐’고 말이다.”
원더스는 KBO에 ‘2013시즌 경기편성을 전면 재검토해달라’고 요구한 상황이다. 하 단장은 “KBO가 우리 요구를 거절하면 어쩔 수 없지만, 최소한 이 문제를 KBO 이사회에 상정해 논의만 해줘도 좋겠다”며 “KBO가 납득할 만한 이유라도 댄다면 KBO의 결정을 전적으로 수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야구인들은 “표면적으론 KBO와 원더스의 갈등처럼 보이지만, 실은 기존 구단들의 자존심과 한 사람에 대한 증오가 갈등의 주범”이라고 입을 모은다.
모 야구인은 “원더스가 태동하기 전엔 많은 구단이 ‘한국에도 독립구단이 있어야 한다. 장한 일을 해냈다’며 원더스를 격려했다. 하지만, 막상 원더스가 기존 퓨처스리그 팀들을 차례로 꺾자 불만이 고조됐다”고 회상했다.
모 구단 코치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원더스는 오합지졸 팀이었다. 가뜩이나 독립구단이었기에 ‘이겨도 본전, 지면 망신’이란 분위기가 팽배했다. 실제로 원더스에 진 팀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2군 코칭스태프가 구단 윗분께 혼이 나는 것도 직접 목격했다. 언론에서도 원더스가 이기면 대서특필하는 통에 지는 팀만 바보가 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기존 퓨처스리그 팀들은 원더스와의 경기를 꺼렸고, 감독들은 ‘우리가 왜 원더스와 경기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모 구단 단장도 원더스에 대한 불만이 많은 듯했다. “퓨처스팀이라도 한 해 50억 원 이상을 운영비로 쓴다. 기존 구단들은 30년 가까이 한국야구 발전을 위해 2군을 운영해왔다. 그런데 원더스는 독립구단이다. 그것도 1년 차 구단이다. 무엇보다 거액의 회비를 내는 정식 회원사도 아니다. 하지만, ‘이겨도 져도’ 언론에 주목을 받는 건 원더스다. 생각해보라. 어느 구단이 원더스를 반기겠는가. 원더스는 당장이라도 자신들의 성격에 맞게 독립리그에서 뛰어야 한다.”
덧붙여 이 단장은 “기존 퓨처스팀들은 육성이 목적인데 반해 원더스는 성적이 우선”이라며 “이 때문에 지난 시즌 원더스와 경기를 치른 많은 팀에서 부상자가 속출했다”고 주장했다. 이 단장은 “원더스의 승리만능주의를 이끄는 모 인사가 계속 팀의 사령탑으로 있는 이상 원더스의 퓨처스리그 정식 편입은 어려울 것”이라고 확신했다.
야구계는 ‘모 인사’가 다름 아닌 김성근 원더스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김 감독에 대한 거부감은 이 단장뿐만이 아니다. 다른 구단 사장, 단장들도 비슷한 입장이다. 그래서일까. 야구계는 “원더스의 퓨처스리그 정식 편입을 반대하는 건 KBO가 아니라 기존 구단들의 거대한 카르텔”이라며 “그 배경엔 ‘안티 김성근 정서’가 깔려있다”고 분석한다.
이에 대해 원더스는 “지난 시즌 통계를 살펴봤지만, 우리 팀이 다른 팀들보다 사구(死球)가 많다는 기록은 찾지 못했다”며 “승리에 몰두한 나머지 다른 팀 선수를 다치게 한 적도 없다”고 항변했다.
‘유망주 발굴에 헌신하겠다’며 독립구단으로 소속을 옮긴 김 감독은 여전히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