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이 좁다… 남의 밥그릇 힐끗’
▲ 최근 유통업계는 신규 점포 개설, 새로운 분야 개척 등 서로의 영역을 넘나드는 무한경쟁에 돌입했다. | ||
유통업체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치열한 영토전쟁을 벌였다. 할인점 업체들의 출점경쟁을 필두로 백화점의 명동 상권 쟁탈전, 그리고 슈퍼슈퍼마켓 개설경쟁까지 10년여간 사활을 건 전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월마트 까르푸 등 세계적인 유통업체들이 전사하고 부지 고갈로 신규 출점이 한계에 달하면서 유통업계의 전쟁은 끝을 맺는 듯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유통업계에서 국지전 형태의 새로운 경쟁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동안 남의 밥그릇이라며 넘보지 않았던 영역에 발을 담그는가 하면, 다른 업체의 일부 점포를 사들여서 자신의 간판을 내거는 일도 추진하고 있다.
생존경쟁의 선봉에 선 업체는 다름 아닌 코스트코(COSTCO)코리아다. 코스트코는 전 세계 500개가 넘는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다국적 유통업체. 지난해 까르푸와 월마트가 국내에서 철수한 이후 마지막 남은 외국계 유통기업인 코스트코코리아는 신규 점포를 늘리는 등 공격행보에 나서 주목을 받고 있다.
회원제 창고형 할인매장인 코스트코는 최근 내년 봄 준공을 목표로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일산고속버스터미널 부지 인근에 6번째 점포인 일산점을 짓기 시작했다. 코스트코가 새로운 매장을 짓는 것은 지난 2001년 4월 국내 5호점인 상봉점을 오픈한 이후 무려 6년 만의 일이다.
코스트코는 지난 1994년 서울 양평동에서 처음 영업을 시작한 이후 유독 한국에서는 신규 출점을 극히 자제하는 신중한 모습을 보여왔다. 현재 코스트코는 서울에서는 양평점과 상봉점, 양재점 세 곳만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방 매장은 대구점과 대전점 각각 한 곳씩만 문을 열어두고 있다.
코스트코는 그동안 연간 회비를 내는 회원들만 매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고수, 많은 점포가 필요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하지만 내년 봄에 문을 열 예정인 일산점 개설을 계기로 기존의 정책이 바뀔 것이란 관측이 주를 이루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코스트코는 내년 신규 점포를 오픈하는 것과 동시에 매물로 나온 유통점포에 대해 매입의사를 타진하는 등 이전과는 다른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랜드가 일부 점포를 매각할 것이라는 소문과 관련해 코스트코가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는 설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코스트코코리아 측은 “회원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그동안 신규 점포 출점이 더뎠다”며 “추가로 점포를 개설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내업체들도 기존의 영업형태에서 벗어나 영역파괴에 나서기는 마찬가지다. 현대백화점은 최근 대형 마트와 영패션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2010년 오픈 예정인 경기도 일산 대화동의 킨텍스몰에 백화점 입점을 확정한 데 이어 서울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에 백화점과 대형 마트를 출점할 계획이다. 2011년 문을 열 예정인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는 지하 6층, 지상 36층으로 건설된다. 이 중 지하 2층에 대형 마트가 들어서고 지상층 일부를 백화점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또한 경쟁업체와의 차별화를 위해 신촌에 영패션 전문관을 건립한다.
할인점 업체인 홈플러스는 역으로 백화점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이승한 홈플러스 사장은 “대형 마트시장은 향후 3∼5년에 포화 상태에 이르기 때문에 더 이상 성장이 불가능하다”며 “변화를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할인점이나 새로운 영역을 찾아야 한다”며 백화점 진출에 대한 조심스러운 의견을 제시했다. 홈플러스는 백화점 진출을 위해 뉴코아 강남점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홈플러스의 한 관계자는 “뉴코아 강남점의 경우 주변 환경이나 리뉴얼 작업시 백화점이 들어설 가장 좋은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며 “조건만 맞는다면 언제든지 인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신세계 이마트는 홍콩과 중국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 5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중저가 패밀리 브랜드 ‘보시니(BOSSINI)’를 직수입해 지난 8월 23일 인천 연수점에 1호점을 개장해 국내에 선보였다. 이어 29일에는 공항점, 31일에는 월계점에 잇달아 매장을 열었다. 그동안 백화점이나 해왔던 해외 패션 브랜드 직수입을 대형마트가 시작한 것이다. 보시니 매장은 신세계 계열사인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지난 7월 홍콩 본사와 독점 전개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이뤄졌다.
롯데 계열의 유통업체들도 수십 년간 지켜왔던 불문율을 깨며 일제히 신사업에 나서고 있다. 국내 백화점 브랜드의 대표주자격인 롯데백화점은 국내 대기업 패션브랜드의 이월상품을 최고 88%까지 저렴하게 판매하는 재고전을 열었다. 통상 정상가의 50∼60% 할인이 최고였던 이월상품전과 달리 아웃렛에서나 볼 수 있었던 파격 할인이었다.
백화점 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웬만한 가격으로는 소비자들을 사로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롯데 측이 패션업체를 끌어들여 파격 세일에 나섰던 것.
슈퍼슈퍼마켓 체인인 롯데슈퍼는 백화점과 할인점만 해왔던 사업인 자체브랜드(PB)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롯데슈퍼는 ‘와이즐렉 프라임 찹쌀식혜’를 개발, 지난 8월 22일부터 전국 69개 모든 점포를 통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또 ‘프루니에’라는 신선식품 PB브랜드로는 과일 엽채류 건어류 해물류 굴비 등을 팔고 있다.
반면 그동안 활발한 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를 키워 온 이랜드그룹은 자금 유동성의 위기로 일부 점포의 매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경쟁업체들이 이랜드와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관해 이랜드 그룹 관계자는 “뉴코아 강남점의 경우 그동안 점포 인수를 위해 여러 유통업체들이 접촉해 왔다”며 “올해 초까지는 가격 조건이 맞는다면 언제든지 매각할 용의가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매각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홈플러스의 경우 이랜드리테일의 몇몇 점포를 인수하기 위해 접촉한 사실이 있다고 밝히는 등 점포매각설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랜드그룹이 까르푸 인수 때 빌린 차입금 8000억 원에 대한 부담이 작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