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 생각만 해도 왠지 기분 좋은 날이다. 연인 간의 달콤한 데이트, 가족과 오붓한 시간들…. 5년 전, 혜진이(당시 10세)와 예슬이(당시 8세)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떤 선물을 받을까, 어떻게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까 설렜을 터. 하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에 엄마 선물을 사겠다며 나갔던 두 아이는 약 세 달 후에야 돌아왔다. 차갑게 식은 채였다. 경찰은 이 사건을 계기로 2008년 4월 전국 모든 경찰서에 실종수사전담팀을 꾸렸다. 다시는 혜진ㆍ예슬 양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말이다. 사건이 일어나고 5년이 지난 지금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걱정을 덜 수 있게 됐을까. 전담팀이 가장 모범적으로 운영된다는 화성서부경찰서를 지난 3일 찾았다.
▲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1월 3일, 화성 서부 경찰서 실종전담팀을 만났다. 왼쪽에서 세 번째가 팀장 정일수 경위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실종사건수사팀장을 맡고 있는 정일수 경위(57)는 자신의 팀이 다른 서에 비해 우수하다고 꼽히는 이유를 설명하며 이렇게 비유했다. 업무 성격이 비슷한 여성청소년과(아동여성계와 청소년계로 구성)가 사무실을 같이 쓰는 것만으로도 시너지 효과가 생긴다는 것. 예를 들어 가출한 청소년의 부모가 찾아오면 사무실 가운데 있는 탁자에서 여청과 가출 담당직원과 실종팀원이 함께 면담하는 식이다. 그동안 각자 쌓아왔던 노하우를 서로 나눌 수 있는 협업시스템인 셈. 대부분의 경찰서는 형사과 소속인 실종수사팀과 여청과를 분리해 놓고 있어 민원인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정 팀장의 부연설명이다.
“애 한 번 잃어버려 봐. 화나는 게 아니라 머리가 하얘지지. 그때 겨우 생각나는 게 112인데 여청과 가서 신고하고 형사과 가서 접수시키라고 하면 돌아버린다. 그 사람들 입장에선 우린 다 같은 경찰이지 여청, 형사를 어떻게 아나. 예전에는 실종팀은 1층, 여청과는 4층이었다. 지금은 여기서 다 해결할 수 있으니 민원인의 불만은 낮아지고 신뢰도는 높아졌다.”
화성서부서는 지난해 9월 화성시청 그리고 유관기관 세 곳(경기화성아동보호전문기관, 화성시건강가정지원센터, 화성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과 MOU도 체결했다. 유관기관으로부터 전문상담 인력과 사례관리 인력, 행정지원 등을 받기 위해서다. 정 팀장 스스로도 전문상담사다. 틈틈이 공부해 경찰상담심리사, 심리상담사, 색채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시스템이 정착될 수는 없었다. 일정기간 잡음이 새어나오는 등 시행착오도 겪었다. “하지만 서로 도와주려고 마음먹으니 자연스럽게 해결되더라”고 옆에 있던 청소년계장 박영범 경위는 회고했다.
무엇보다 팀원들의 의지와 노력이 주효했겠지만 운도 따랐다. 지난 2009년 경찰서 건물을 새로 지은 까닭에 사무실을 여유 있게 쓸 수 있는 여건이 됐다. 다른 서는 하고 싶어도 좁아서 못 하는데 화성서부서는 상대적으로 넓어서 ‘물리적 융합’이 가능했다는 것.
지난해 7월 화성서부경찰서장으로 취임한 윤외출 총경의 철학도 반영됐다. 아동여성계장 김남균 경감은 “예전에 형사과는 범인 잡으면 되고, 생활안전과는 예방하면 되고, 각자 자기 기능만 하면 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계가 있더라. 각자의 고유 기능이 허물어지는 중에 윤 서장의 지시가 있었다”라고 전했다. 업무 성격이 비슷하면 다 같이 발을 담가서 해결하라는 것. ‘경찰’이 하는 것이지 형사과나 여청과가 따로 하는 게 아니라던 정 팀장의 말과 같은 맥락이다. 윤 서장은 한국 경찰에 프로파일러(고도의 분석 기법을 통해 사건을 추적하고 용의자의 범행 동기를 밝혀내는 과학수사 전문가)를 처음 도입한 한국 과학수사의 대부(代父)이기도 하다.
전담팀이 꾸려지고 가장 달라진 점으로 정 팀장은 경찰의 ‘태도’를 꼽았다. 그는 “이제까지 경찰은 가출 신고가 들어오면 좀 기다려 보라는 식이었다. 어지간하면 부모들이 내 자식이 죽어야 해결해줄 거냐고 항의하겠나. 그런데 지금은 더 먼저 개입을 한다. 일단 범죄랑 상관없어 보여도 더 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처벌 위주의 ‘형사법적 사고’에서 예방 차원의 ‘서비스 마인드’로 접근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실적’은 어떨까. “다 찾았다.” 정 팀장은 자신 있게 말했다. 지난해 접수된 실종 신고 475건을 모두 완결한 것. 물론 이 모든 사건이 흔히 생각하는 ‘실종’은 아니다. 성인들의 단순 가출이나 오인신고도 모두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한 중년 여성이 “우리 아저씨가 없어졌다. 생전 술도 안 마시는데 밤늦게까지 안 들어올 리 없다”고 신고했다. 새벽까지 온 동네를 수색하던 실종팀은 함께 찾던 여성에게 “혹시 모르니 집에 가보라”고 했고 아저씨는 집에서 발견됐다. 그는 술에 취해 자고 있었다. “그게 우리 경찰 서비스가 개선됐다는 예 중 하나다.” 정 팀장이 웃으며 말했다.
제일 찾기 힘든 실종자는 치매노인. 청소년이나 성인은 PC방을 가거나 찜질방을 가면 거의 찾을 수 있는데 치매노인들은 어디로 갈지 갈피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노하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박영범 계장은 “그분들은 진짜 ‘막’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냥할 때 몰이하듯 숲을 발칵 뒤집고 여기저기 들쑤시면 정보가 하나 둘 들어온다는 것.
다행히 납치살인 사건은 없었다. 정 팀장은 “그렇게 신고가 들어오면 실종팀이 아니라 강력팀이 나간다. 그 전 단계는 우리가 하고. 밤에도 약간 낌새가 있으면 야간 강력당직이 있어 나간다. 걔네 코가 보통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다른 서에 비해 작으니까 직접 만나서 얘기도 듣고, 자살하려 했던 사람 찾아가 만나본다”면서도 “그러나 매일 사건이 터지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라고 덧붙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를 물었다.
“지난해 8월쯤 30대 초반 초등학교 여교사가 자살하겠다는 문자를 남기고 사라졌다. 문자 보고 찾아가니 경상도 어디 납골당에 있더라. 경찰차랑 남편 차가 오는 걸 보고 여기서 못 죽겠다 생각하고 도망가다 잡혔다. 죽겠다고 엄포만 놓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여자는 진짜 죽으려고 한 것이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다.”
매년 1만여 명의 아이(14세 미만 아동)가 실종 신고 되고 있다. 하루에 약 30명꼴이다. 14세 이상의 청소년과 성인, 치매노인들을 합치면 2만 6000건(2011년 기준)이 넘는다. 대부분 발견돼 보호자에게 인계되지만 끝까지 집에 돌아오지 못 하는 사람도 200명 이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실종수사전담팀의 역할은 막중하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전담팀의 전문성 부족과 낮은 효율성을 지적하고 있다. 좋은 제도를 만들어놓고 그냥 썩혀두는 게 아니라 어떻게 잘 활용할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화성서부경찰서 실종전담팀이 하나의 참고사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고혁주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