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 고열 방치하면 태아에게 좋지 않아…식약처 “전문가와 상의하면 복용 가능”

실제로 FDA는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이 들어간 제품의 라벨 변경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그 근거로 임신부 제대혈 내 아세트아미노펜 농도가 높을수록 자녀의 자폐증 가능성은 2.14~3.62배, ADHD 가능성은 2.26~2.86배 높아진다는 2019년 존스홉킨스대 연구진의 연구 결과가 인용됐다.
해열·진통제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트럼프가 언급한 아세트아미노펜 계열이 가장 대표적이다. 타이레놀의 주성분으로 약국에서 판매되는 각종 감기약에도 아세트아미노펜이 포함돼 있는 경우가 많다. 이외에는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가 있는데 이부프로펜, 나프록센, 아스피린, 덱시프로펜 등이 여기 속한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해열·진통제는 타이레놀과 부르펜인데 부루펜의 주성분이 이부프로펜이다. 영유아에게 발열 증상이 나타났을 때 타이레놀이나 부루펜을 연령대에 따른 용량으로 투약하는데 증상이 완화되지 않을 경우 타이레놀과 부르펜을 교체 투약한다. 두 해열·진통제가 각기 다른 성분이기 때문이다.
임산부의 경우 가장 안심하고 복용할 수 있는 해열·진통제가 아세트아미노펜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트럼프가 “자폐아 출산 위험을 높인다”며 임산부의 아세트아미노펜 투약을 최대한 자제하고, 투약할지라도 복용량을 최소화하라고 밝혔다. 이는 결국 고열·통증 증상이 있는 임산부가 안심하고 복용할 수 있는 해열·진통제는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가 된다.
미국에서 먼저 논란이 확산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직후 미국 산부인과학회 스티븐 플라이시먼 회장은 성명서를 통해 “자폐증과 타이레놀에 관한 발언이 잘못된 과학에 근거했다”면서 “임신부들에게 해롭고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보냈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지난 10년 동안 임신 과정에서의 아세트아미노펜 복용과 자폐증의 연관성을 조사하기 위해 광범위한 연구가 진행됐지만, 일관된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냈다.
그렇지만 FDA는 2019년 존스홉킨스대 연구진의 연구 결과를 인용해 트럼프의 주장에 힘을 보탰다. 해당 논문은 2019년에 미국의학협회 학술지(JAMA)에도 등재됐다. 그런데 스웨덴 스톡홀름 카롤린스카 연구소 등에서 2024년 JAMA 네트워크에 발표한 논문 내용은 결과가 전혀 다르다. 1995~2019년 태어난 스웨덴 아동 248만 명의 건강기록을 기반으로 친형제자매 대조군을 분석한 결과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사용과 자폐증, ADHD, 지적 장애 위험 증가의 관련성은 없다는 연구 결과가 도출됐다. 이 연구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고, 규모도 가장 큰 연구 결과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안준용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는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참고로 삼았던 게 2019년 연구도 있고 최근에 발표된 연구들도 있는데, 연구 결과들이 과학적으로나 실험을 설계하는 측면에서 굉장히 신뢰성이 높다고 보기 어려운 연구들이었다”고 지적하며 “2024년에 훨씬 더 대규모이자 더 정교한 실험을 했었던 연구 분석에서는 사실 타이레놀과 자폐의 연관성이 없다고 나왔는데 트럼프 대통령이나 미국 정부에서 본인들의 입맛에 맞는 얘기들만 골라내 발표했다”고 밝혔다.

식약처는 “임신 초기 38℃ 이상 고열이 지속되면 태아 신경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증상이 심할 경우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해열·진통제를 복용할 수 있다. 기존 사용상 주의사항대로 의사, 약사 등 전문가와 상의하면 복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식약처 권장 복용량은 하루에 4000㎎을 넘지 않는 범위다.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에 대해 식약처는 “태아 신장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 임신 20~30주에는 꼭 필요한 경우 최소량을 최단기간 사용하라”면서 “임신 30주 이후에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유럽의약품청(EMA)도 “현재까지 확인할 수 있는 증거에 따르면 임신 중 파라세타몰(유럽에서 사용하는 아세트아미노펜의 약명) 사용과 자폐증 사이의 연관성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임신부 약물 사용 판단은 의사와 상의하라”는 성명을 냈다.

안준용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는 “지금 임신 중에 고열이 있을 때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약이 그나마 타이레놀”이라며 “뇌 발달이 좋지 않은 점들도 있기 때문에 의료진들과 잘 상의를 하셔서 적절한 복용과 처방을 좀 받으실 필요는 있다”고 설명했다.
전동선 프리랜서 mast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