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에 사다리차로 침입, 대범한 범행에 경악…관광객 급증 보안 취약, 전문가 “이미 부품별로 분해됐을 것”
[일요신문] 해가 중천에 뜬 오전에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4인조 절도범들에게 뚫리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개관 후 30분이 지난 시간이었기에 내부에 관람객이 많았다는 점은 충격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절도범들이 노린 것은 프랑스 왕실의 보석류였으며, 범행에 걸린 시간은 4~7분에 불과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걸까. 이에 루브르 박물관의 허술한 보안 체계와 인력 부족 문제 등이 도마에 올랐다. 근래 들어 박물관 절도범들의 목표가 명화나 조각상에서 보석류로 바뀌고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그만큼 손쉽게 훔칠 수 있고, 재빨리 달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암시장에 되팔 경우 추적을 피할 수 있다는 점도 절도범들이 보석류를 노리는 이유로 꼽히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을 턴 4인조 절도범은 수천 명이 동시에 밀려들어오는 개장 직후의 취약한 시간대를 노렸다. 사진=타스/연합뉴스지난 10월 19일(현지시각) 오전 9시 30분경. 센강 쪽에 위치한 루브르 박물관 외벽 앞에 사다리차 한 대가 멈춰섰다. 노란색 안전 조끼를 입은 남성 두 명이 사다리를 타고 2층 창문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본 행인들은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인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창문을 깨고 실내로 들어간 이 남성들은 얼마 후 다시 창문 밖으로 나왔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전동 스쿠터 두 대에 나눠 탄 후 재빨리 사라졌다. 경보가 울리고 경비원이 출동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관람 시간에 벌어진 대범한 절도 행각에 프랑스 전역은 발칵 뒤집혔다. ‘프랑스의 심장이 습격당했다’며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건물 가운데 하나인 루브르 박물관이 이렇게 쉽게 뚫리자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난해 방문객만 900만 명에 달하는 루브르 박물관은 엄격한 보안 체계를 갖추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모든 전시품에는 경보 장치가 설치되어 있으며, 방문객들을 상대로는 철저한 소지품 검사가 이뤄진다. 가령 드라이버, 펜치, 렌치, 망치, 커터칼 등 어떤 종류의 도구도 반입할 수 없으며, 큰 가방은 반드시 보관함에 맡겨야 한다.
이런 보안 체계가 무색하게 절도범들은 너무나도 손쉽게 범죄를 저질렀다. 이들이 노린 곳은 프랑스 왕실 보석류가 전시돼 있는 아폴론 갤러리였다. 금빛 장식과 회화로 가득 찬 이 전시실은 훗날 베르사유궁 ‘거울의 방’의 모델이 된 곳이기도 하다. 홀에는 모두 105점의 작품이 전시돼 있으며, ‘소더비’가 6000만 달러(약 860억 원)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한 리젠트 다이아몬드를 포함해 상시, 오르탕시아 등 왕실 보석 컬렉션 23점이 전시되어 있다.
진주 212개, 다이아몬드 1998개, 로즈 컷 다이아몬드 992개로 장식된 ‘외제니 황후 티아라’. 사진=루브르 박물관절도범들이 훔친 전시품은 홀 중앙에 위치한 유리 진열장 안에 있던 보석류 9점이었다. 이 가운데 ‘외제니 황후의 왕관’은 도주하던 중 떨어뜨린 듯 박물관 외부에서 파손된 채 발견됐다. 이 왕관은 나폴레옹 3세 황제의 아내인 외제니 황후의 것으로, 금빛 독수리 8마리, 다이아몬드 1354개, 로즈 컷 다이아몬드 1136개, 에메랄드 56개로 장식되어 있다.
도난당한 보석 8점에 대해 프랑스 문화부는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중한 문화유산이다”라고 안타까워했으며,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로르 베퀴오 검사장은 “도난당한 금액도 물론 놀랍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절도 사건으로 인한 역사적 피해에 비할 바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루브르 박물관 큐레이터가 추정하는 도난당한 보석 8점의 가치는 8800만 유로(약 1400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는 진주 212개, 다이아몬드 1998개, 로즈 컷 다이아몬드 992개로 장식된 ‘외제니 황후 티아라’를 비롯해 다이아몬드 2438개, 로즈 컷 다이아몬드 196개가 세팅된 ‘외제니 황후 리본’, 1855년에 제작된 ‘외제니 황후 다이아몬드 브로치’, 루이 보나파르트의 아내 오르탕스 왕비와 루이 필리프 1세의 아내 마리 아멜리에 왕비 등이 착용했던 사파이어 세트, 그리고 나폴레옹이 두 번째 부인 마리 루이즈를 위해 결혼 선물로 제작한 에메랄드 세트 등이 포함돼 있다.
이번에 도난당한 보석들은 놀랍게도 모두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 이유에 대해 프랑스 문화부는 “국가 소장품의 경우 막대한 보험료 때문에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또한 국가가 자체적으로 보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고 발생률이 낮다”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보안이 철저하다는 의미다.
이런 보안을 뚫은 오전 시간대의 대범한 범행은 대체 어떻게 가능했을까. 전문가들은 박물관이 개장한 직후의 시간대가 오히려 보안이 가장 취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직관과 반대되는 전략’으로, 일종의 허를 찔린 셈이다. 시드니대학교 미술사학과 부교수인 도나 브렛은 “낮 시간대, 특히 개장 직후는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수천 명의 관람객이 동시에 들어오면서 경비원들의 주의가 분산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루이 보나파르트의 아내 오르탕스 왕비와 루이 필리프 1세의 아내 마리 아멜리에 왕비 등이 착용했던 사파이어 세트. 사진=루브르 박물관박물관의 보안 시스템에 심각한 허점이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리옹 근교에서 온 교사 마갈리 쿠넬은 “도대체 어떻게 사다리차를 타고 창문에 접근해서 대낮에 보석을 훔쳐갈 수 있단 말인가”라고 분개하면서 “이렇게 유명한 박물관에, 이토록 명백한 보안상 허점이 있다니 믿을 수가 없다”라며 수치스럽다고 했다.
사실 루브르 직원들은 오래 전부터 박물관 보안의 취약점을 지속적으로 경고해 왔다. 요컨대 급증하는 방문객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인력이 근본적인 문제였다는 것이다. 노동조합 측은 “급증하는 관광객으로 인해 모든 전시실을 충분히 감시할 수 없게 됐다. 이로 인해 공사 구역, 화물 경로, 방문객 동선이 만나는 지점이 보안에 취약해졌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21년간 보안요원으로 근무한 연대단결민주노조(SUD) 루브르 지부장인 줄리앙 듀노예에 따르면, 루브르의 보안요원 수는 2014년 994명에서 2023년 856명으로 줄었다. 보안요원의 감소가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취약점을 드러내는 신호가 되었을 수 있다고 지적한 듀노예는 “이런 취약점들은 작전을 실행할 기회를 엿보는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띌 수 있다”고 경고했다. 듀노예는 또한 “여기에 더해 지속적인 보수 공사, 수리 작업, 기금 모금 행사를 위한 박물관 주변의 가설 구조물 때문에 보안요원들이 의심스러운 행동을 포착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루브르 주변에 외부인들이 많아질수록 누가 위험한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당초 연간 900만 명의 방문객을 맞이하도록 설계되지 않은 중세 시대 건물을 완벽하게 보호하기란 쉽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파리 경찰 범죄수사국 전 국장인 크리스티앙 플래쉬는 “루브르 박물관은 보안을 염두에 두고 지은 건물이 아니다. 매우 오래된 건물인 데다, 매일 시간대별로 출입증을 지닌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은행에 비해 박물관이 절도범들에게 ‘상대적으로 쉬운 표적’이 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박물관은 소장품을 관람하고 체험할 수 있는 ‘자유’와 엄격한 ‘보안’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 곳이다. 플래쉬는 “여러분은 박물관이 열려 있을 때 실제로 그곳에 들어가 작품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바로 작품에 손을 댈 수도 있다. 접근하기 위해 거쳐야 할 문턱이 그리 높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절도범들은 사다리차를 이용해 4~7분 만에 범행을 마치고 도주했다. 경찰이 사다리차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물론 ‘모나리자’ 등 대표 작품에 대한 보안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현재 ‘모나리자’는 방탄유리와 온도 조절이 가능한 진공 케이스 안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다.
이번 절도 사건은 곧 정치적 논쟁으로도 번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선 극우 성향의 조르당 바르델라 국민연합(RN) 대표는 X(옛 트위터)에 “루브르는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프랑스 문화의 상징이다”면서 “절도범들이 프랑스 왕관 보석을 훔친 이번 사건은 참을 수 없는 굴욕이다. 국가의 붕괴는 도대체 어디까지 갈 것인가”라고 맹비난했다.
이런 비난은 현재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의 대규모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인 ‘루브르 뉴 르네상스’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7억 유로(약 1조 원) 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2031년까지 인프라를 현대화하고, 관람객 혼잡을 완화하며, 모나리자 전용관을 마련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보수가 끝난 후의 연간 방문객 수는 12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는 반드시 도난당한 유물들을 회수하고, 범인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울 것이다. 파리 검찰청의 지휘 아래 이를 달성하기 위한 모든 조치가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라고 선언했다.
이런 바람과 달리 전문가들은 도난품이 회수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보석업체 ‘77 다이아몬즈’의 대표인 토비아스 코민트는 “이 보석들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전문 절도단은 대부분 훔친 보석을 잘게 쪼개거나 녹이는 식으로 재가공해 추적을 피한다. 그렇게 되면 원래의 모습은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라고 우려했다. 예술범죄 역사학자이자 교수인 로라 에반스 역시 “냉정하게 말하자면, 루브르의 이 보석들은 이미 부품별로 분해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번 루브르 절도 사건은 세계 각국의 박물관들에게도 경종을 울리고 있다. 공공 접근성과 보안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는 한편, ‘이 정도의 보안 수준으로 충분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에 보안 전문가들과 큐레이터들은 이번 사건이 느슨한 개방형 접근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점치고 있다.
왜 그림 아닌 보석인가…분해 후 재가공하면 추적 불가
지난 20세기만 해도 박물관 보안팀이 주로 염두에 두었던 위협은 그림이나 조각상 등 예술 작품에 대한 절도였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이번 루브르 보석 절도 사건이 과거에 일어난 도난 사건과 다른 점 역시 바로 여기에 있다. 국제박물관안전위원회 사무총장인 레미지우스 플라츠는 “5~7년 전부터 원자재(보석)를 노린 절도가 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루브르 절도범들이 진열장을 부수고 보석을 훔치는 장면. 사진=BFMTV 캡처가령 2017년 독일 베를린의 보데 박물관에서는 도둑들이 수백만 유로 상당의 거대한 금화를 손수레로 빼돌렸으며, 2019년 드레스덴 왕궁 박물관에서는 ‘그린 볼트’ 방에 침입한 절도범들이 도끼로 유리 진열장을 부수고 1억 1300만 유로(약 1900억 원) 상당의 보석을 훔쳐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22년에는 독일 남부의 한 박물관이 약 170만 달러(약 24억 원)어치의 고대 금화 483개를 도난당하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9월 발생한 파리 국립자연사박물관의 금 도난 사건이 있다. 당시 절도범들은 그라인더와 용접용 토치를 이용해 절도를 저질렀으며, 훔친 금의 가치는 약 70만 달러(약 10억 원)에 달했다.
이처럼 귀금속이 절도 대상이 된 이유는 그림이나 조각상이 상대적으로 부피가 큰 데다 운반도 어렵고 파손 위험도 크기 때문이다. 또한 그림이나 조각상은 분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되팔 경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미국 미술사학자 노아 찰니는 ‘알자지라’ 인터뷰에서 “그림은 주로 패널, 안료, 캔버스 등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본질적 가치는 크지 않다. 그림의 가치는 대부분 문화적 의미에서 비롯된 비본질적 가치다”라고 말하면서 “반면 보석은 분해해서 구성 요소를 팔아도 여전히 상당한 가치가 있다. 도난당한 보석은 그 자체로 본질적 가치가 매우 높다”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보석 컬렉션은 분해 및 재가공할 경우 추적이 거의 불가능하다. 찰니는 “과거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경찰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보석을 온전한 상태로 되찾아오는 사람에게 (보석의 부품 가치보다) 더 높은 현상금을 걸어 회수를 유도하는 것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유감스럽게도 보석들이 회수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라고 경고했다.
이에 런던 경찰 예술범죄팀 전 책임자인 버논 래플리는 루브르 절도를 가리켜 ‘미술품 절도’가 아닌 ‘상품 절도’라고 부른다. 요컨대 절도범들은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의 가치나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아마도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저 얼마나 많은 보석과 귀금속, 즉 고가 상품을 훔쳐내느냐에 있다. 절도범들이 아폴론 갤러리에 있던 가장 값비싼 보석인 리젠트 다이아몬드를 훔치지 않고 달아난 이유 역시 어쩌면 이런 까닭에서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