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 다로 지지로 고이즈미 꺾고 총재선거 승리…공명당과 합쳐도 과반 못 미쳐, 연립정권 균열 조짐 숙제

“나라현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소녀가 훗날 자민당의 첫 여성 총재가 되리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다카이치 사나에는 1961년 기계회사에 다니는 부친과 경찰로 근무하던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게이오대 진학을 꿈꿨지만, 학비 부담으로 고베대 경영학과에 진학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학 시절엔 헤비메탈 밴드에서 드럼을 쳤고, 오토바이를 타고 일본을 일주하는 등 자유분방한 면모를 보였다.
1984년 그의 인생은 새로운 궤도로 접어들었다. ‘정치 사관학교’로 불리는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에 입소하면서다. 이후 미국 연방의회에서 입법조사관으로 일했으며, 귀국 후에는 TV 프로그램 진행자로도 활동했다. 존경하는 정치인은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다.
정계 입문을 시도한 건 31세 때인 1992년이다. 나라현 지역구 참의원(상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절치부심한 그는 매일 아침 6시부터 저녁까지 역 앞에 나가 연설을 이어갔다고 한다. 끈질긴 노력 끝에 이듬해 치러진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며 의회에 입성했다. 자민당에 합류한 것은 1996년이다.
그의 정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아베 신조 전 총리다. 두 사람은 ‘강한 일본’의 재건을 꿈꾸며 오랜 기간 정치적 행보를 함께했다. 2006년 제1차 아베 정권이 출범하자 다카이치는 내각부 특명담당상으로 첫 입각했고, 2012년 제2차 아베 정권에서는 자민당 창당 이래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정무조사회장에 발탁됐다. 2014년에는 여성 최초로 총무상에 임명돼 1438일간 재임하며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다.

다카이치는 자민당 내에서도 ‘강경 보수’로 평가받는다. 특히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총재 선거에서는 “총리가 되어도 야스쿠니에 가겠다”고 단언했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중도 확장을 위해 “적절히 판단할 것”이라며 확답을 피했다.
경제 정책은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아베노믹스’를 계승할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양적완화, 재정지출 확대, 구조 개혁이 골자다. 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자민당의 새 수장으로 다카이치가 선출됐다”는 소식에 10월 6일 일본 증시는 폭발적 상승세로 화답했다. 닛케이 평균주가는 기대감에 힘입어 급등, 사상 처음 4만 8000엔대를 돌파했다. 다음 날인 7일에도 이틀 연속 장중 최고가를 경신했다. 다카이치가 내세우는 적극 재정과 금융완화가 기업 실적을 뒷받침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투자심리를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반면 외환시장은 정반대의 흐름을 보였다. 금리 인상에 신중한 다카이치의 발언이 알려지자 “저금리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엔화를 파는 움직임이 가속화되며 유로화 대비 엔화 가치는 1유로당 176엔대로 급락했다. 1999년 유로 도입 이후 최저 수준이다.
#새 집행부 개혁보다 논공행상
10월 7일 출범한 자민당 새 집행부는 친(親)아소 라인으로 채워졌다. 다카이치 총재는 이번 총재 선거에서 ‘킹메이커’로 활약한 아소 다로 전 총리(85)를 부총재로 임명했다. 총재 선거 당시 아소 전 총리는 자신의 계파 의원들에게 “다카이치를 지지하라”고 지시했고, 이 표 흐름이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을 꺾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간사장에는 아소 전 총리의 처남인 스즈키 슌이치 총무회장(72), 정무조사회장에는 보수 색이 짙은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50)이 임명됐다. 부총재와 간사장이 같은 파벌, 게다가 사돈관계인 것은 자민당 역사에서도 지극히 이례적이다. 당 안팎에서는 “사실상 제2차 아소 정권”이라는 비판이 흘러나오고 있다. 지지통신은 “다카이치 총재가 오랫동안 무파벌로 활동해 당내 인맥이 얕다”며 “이번 인사는 총재 선거 공헌도를 반영한 논공행상 색채가 짙다”고 해설했다.

정치 평론가 아오야마 가즈히로는 “다카이치 자민당 총재의 앞길이 가시밭길”이라고 진단한다. 현재 자민당은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합쳐도 과반에 미치지 못한다. 정책 추진을 위해선 야당의 협력이 필수지만, 설상가상 다카이치 체제 출범 이후 연립정권에 균열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중도 보수인 공명당은 애초 차기 총재로 ‘온건 보수’ 고이즈미를 예상했으나, 극우 성향의 다카이치가 당선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공명당은 다카이치 총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비자금 스캔들 대응’ ‘외국인 배척 논조’를 문제시하며 연립정권에서 이탈 가능성도 시사했다. 사이토 데쓰오 공명당 대표는 “연립정권 유지를 위한 자민당과 합의가 불발될 경우 총리 지명선거에서 다카이치 총재에게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외교 역시 불확실성의 영역이다. 오는 10월 28일, 다카이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의 방위비 증액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아오야마 평론가는 “다카이치는 미국 연방의회 근무 경험이 있지만 본격적인 외교는 처음”이라며 “보수적 성향 덕분에 트럼프에게는 호감을 얻을 수 있겠지만, 협상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