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취재도 이보단 낫겠다’
▲ 박근혜 당선인의 대 언론 일방주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임준선 기자 |
전례가 없어 전 국민이 주목하고 있지만, 최대석 대통령직 인수위 외교·국방·통일분과 위원의 돌연 사퇴 배경은 오리무중이다. 독자적인 대북 접촉설까지 흘러나왔음에도 본인 스스로 해명도 없다. 한 일간지에 따르면 대선 직후 한국 측 인사가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측 인사와 비공개 접촉을 가지려고 했는데 불발됐고, 이 비공개 접촉을 서울에서 총괄한 사람이 최 전 위원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사실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보고되지 않았고, 첩보를 입수한 국정원이 박 당선인 측에 뒤늦게 알리면서 최 전 위원이 해임된 것 아니냐는 관측성 보도를 내놨다. 최 전 위원이 사퇴 직전까지 의욕을 보였는데 갑자기 사퇴 의사를 표한 것이나, 사퇴를 운운한 그 자리에서 억울해하며 눈시울을 붉혔다는 점 등과 정황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다.
최근 인수위 어느 곳에서도 최대석이라는 이름은 쉽게 꺼낼 수 없다. ‘최’ 자만 나와도 인수위 관계자들은 손사래를 치며 도망간다. 인수위 담당 기자들은 출입 초반만 해도 위원들이 나타나면 우르르 몰려가 질문공세를 펴곤 했지만 지금은 질문하는 기자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물어도 대답을 안 하기 때문에 취재를 포기하는 것. 이에 인수위를 취재하는 기자들 사이에서는 “북한을 취재하는 것도 아닌데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강하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최대석 전 위원 사퇴와 관련해서는 더욱 모르쇠 분위기가 강하게 감지된다. “그 일에 관한 한은 지연 학연 혈연이고 뭐고 없다. 몰라서 모르고 알아도 모르는 것”이라는 한 인수위 관계자는 “그래도 최대석 사태가 터졌기 때문에 요즘 인수위 안팎의 분위기가 좀 바뀌는 것 같다. ‘함구령’으로 일절 입을 봉했던 분들이 조금씩 앞뒤 이야기를 하는 것이 느껴지지 않느냐?”라고 했다.
최근 인수위에서는 최 전 위원의 사퇴 배경을 탐색하기 위한 언론사들의 눈물겨운 취재기를 뒤늦게 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위에서 사퇴 배경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면 여러 가지 이설이 나오지도 않을 것인데, 그렇지 않으니 일부 언론사는 최 전 위원이 사퇴 이후 휴식 차 갔다는 영남권의 별장으로 기자들을 급파하는 등 소동을 벌였다고 한다. 최 전 위원은 서울 거처의 현관문을 열어 놓으면서 스스로 ‘서울에 없음’을 알렸다. 하지만 기자들의 별장 방문은 그가 떠난 뒤였다. 일부 기자들은 최 전 위원의 학교 선후배부터 제자들까지 취재했다. 한 기자는 “사퇴 배경으로 재산 문제에 포커스를 맞췄는데 데스크가 이견을 보이면서 회사 내에서 입지가 묘하게 됐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최대석 사태로 그동안 눌려있던 기자들의 인수위에 대한 불만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고 있다.
결국 지난 18일 조금은 갑작스럽게 이뤄진 인수위원 전원과 출입기자들의 ‘환담회’는 최대석 전 위원이 만들어 준 일종의 분위기 전환용이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30분 남짓이어서 기자들이 분노했다는 후문이다(박스 기사 참조).
이에 정치권에서는 최대석 사퇴 파동과 ‘묻지마 보안’ 논란을 박근혜 당선인의 향후 통치 스타일과 연결시키고 있다. 대 언론 관계를 지금과 같이 절대보안과 거리두기로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이 감지되면서 여당 출입 기자들에게도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최근 청와대 출입을 앞둔 기자들 사이에서는 “‘박근혜 정부’를 기다린 언론사에서 청와대 출입 기피 현상이 일고 있다. 정보 제공이 안 되니 특종 경쟁이 일 것이고, 그게 능력 평가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고 한다. 정보접근 자체가 차단되는 상황에서 특종은커녕 취재 자체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기자들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에 대해 “사실 이번 인수위의 ‘불통’ 파문은 앞으로 박근혜 정부의 대 언론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복선’ 정도로 봐야 한다. 박 당선인이 인수위에 요구한 ‘함구령’은 앞으로 청와대에서, 또 정부 각 부처에서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어떤 일이 완벽하게 결정되기 전, 그 과정이 언론에 새 들어가 이러쿵저러쿵 혼선과 혼란이 이는 것을 박 당선인이 극도로 싫어하는 것이다. ‘불통’으로 욕을 먹을지언정 국민 ‘안정’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인수위 기자들이 ‘예방 접종 주사’를 맞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정보 차단’이라는 큰 병을 앓게 될 것이므로 내성을 키워주고 있는 것이다. 싫으면 백신을 장착하시든가”라고 말했다.
최근의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의혹 논란은 박근혜 당선인의 대 언론 ‘일방주의’에 대한 언론의 대항적 성격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의 마지막 인사로 볼 수 있지만, 박 당선인과 어느 정도 교감이 이뤄졌다는 측면에서 당선인의 첫 인사로도 볼 수 있다. 박 당선인에게 우호적인 일부 보수 언론은 이 후보자에 대한 어떤 검증 기사도 처음엔 보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 당선인이 내 편, 네 편 없이 모든 언론과 소통을 단절하니 보수 언론이 성깔(?)을 되찾았고, ‘이동흡 죽이기’로 노선을 바꾼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17일 인수위에서 발생한 ‘북측의 해킹 시도’ 해프닝도 “한번 맛 좀 보라”는 언론의 뿔난 마음이 발로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인수위 관계자가 그날 오전 비공개 브리핑으로 북측의 해킹 시도를 언급했으나 불과 1시간 뒤 번복했음에도 ‘대서특필’ 하고, 민주당 등 야권으로부터 논평까지 받아썼다는 것이다. 취재거리가 없는 기자들 사이에서는 “북한도 얼마나 취재가 안 되면 우리를 해킹하려 했겠느냐”며 “없는 사람끼리 돕고 살자”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부처도 요즘 ‘박근혜 스타일’을 학습하느라 목하 분주하다고 한다. “언론에 대해서도 이렇게 강경 일변도인데 공무원에게는 오죽하겠느냐”며 주눅이 들어 있다는 말도 있다. 한 고위 공무원은 인수위 한 전문위원에게 발탁 축하 인사를 걸었다가 다음날 휴대전화번호를 바꾼 사실을 알고 적잖게 당황했다고 한다. “접촉 금지령, 함구령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단박에 인연을 끊을 정도로 인수위가 대단한 것이냐?”고 토로했다고 전해진다.
민주통합당의 한 재선의원은 이에 대해 “박근혜 당선인에 대한 측근들의 눈치 보기가 도를 넘은 것 같다. 새 정권이 장관 책임제를 실시한다고 하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과연 박 당선인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일할 장관이 몇이나 되겠느냐. 대통령 스타일을 알아내고 거기에 적응하는 데 도사라는 공무원 사회가 정권 초반부터 복지부동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명박 정권과는 또 다른 형태의 불통정국을 만들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인수위 안팎에서는 ‘만사박통’을 이야기하면서 ‘짐이 곧 국가다’ 시대가 도래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문은 열어놓되 입을 꿰매놓은 형국이니 앞으로 정부와 언론, 더 나아가 국민들과 얼마나 엇박자를 낼지 벌써 먹먹하다.”
선우완 언론인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인수위 번개환담회 진풍경
취재진 질문에 “당신 생각은?…”
1월 18일 오후 2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들 전원이 출입기자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는 ‘번개 환담회’가 열렸다. 최대석 사퇴 미스터리로 온갖 루머가 떠돌고 그로 인해 인수위 자체에 불신이 커지면서 박 당선인 측이 진화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발표된 것만 동어반복하면서 ‘불통’ 논란이 또 다시 일었다.
‘1사 1인’으로 제한돼 열린 환담회에서 김용준 인수위원장은 단연 독보적인 인기였다. 하지만 고령으로 귀가 어두워 취재진이 목소리를 높여야 했고, 그마저도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아 고성(?)이 오가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기자들이 이날 김 위원장에게서 건진 것은 “총리는 정치인ㆍ통합형ㆍ실무형 어디에 방점을 둬야 하느냐”는 질문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이라고 김 위원장이 되물었고, 한 기자가 “통합에 방점을 찍겠다”고 하자 “나도 그거 비슷한데”라고 답한 대목이다. 함구령이 내려져 본인 입으로 ‘통합’을 이야기하지 못하니 기자의 입에서 그 단어를 끄집어 낸 것이다.
최대석 전 인수위원 사퇴에 대해서나, 정부부처 개편의 진행상황, 공약 재원 발굴 계획 등 관심사가 높은 질문에는 모두 “지금 말하기 어렵다”는 답만 나왔다. 급기야 물을 게 없는 기자들은 “요즘 몇 시에 일어나느냐?” “몇 시에 집에 가느냐?”는 등의 신변잡기성 질문을 해야 했다.
진영 인수위 부위원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모두 ‘교과서형’ 답변을 내놓으며 “과거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는 식의 동문서답으로 일관했고, 나머지 인수위원들도 대동소이했다.
환담회 자리에 녹음기와 휴대전화를 들이대자 한 인수위원은 “편하게 이야기하자고 불렀는데 녹음기를 이렇게 가져오면 되겠느냐”며 약간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어떤 질문에 대해 “그 문제는 저분에게 가보라”고 권하면서 일부 공무원들의 행태를 반복했고, 인사를 건네는 기자에게 “저는 잘 모른다”며 질문내용도 듣지 않고 답하는 이도 있었다. 결국 ‘함구령 완화 조치’가 발효되지 않아 인수위 문은 열렸는데 볼 것도 들을 것도 없는 공허한 메아리만 울린 셈이다.
선우완 언론인
취재진 질문에 “당신 생각은?…”
1월 18일 오후 2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들 전원이 출입기자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는 ‘번개 환담회’가 열렸다. 최대석 사퇴 미스터리로 온갖 루머가 떠돌고 그로 인해 인수위 자체에 불신이 커지면서 박 당선인 측이 진화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발표된 것만 동어반복하면서 ‘불통’ 논란이 또 다시 일었다.
‘1사 1인’으로 제한돼 열린 환담회에서 김용준 인수위원장은 단연 독보적인 인기였다. 하지만 고령으로 귀가 어두워 취재진이 목소리를 높여야 했고, 그마저도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아 고성(?)이 오가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기자들이 이날 김 위원장에게서 건진 것은 “총리는 정치인ㆍ통합형ㆍ실무형 어디에 방점을 둬야 하느냐”는 질문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이라고 김 위원장이 되물었고, 한 기자가 “통합에 방점을 찍겠다”고 하자 “나도 그거 비슷한데”라고 답한 대목이다. 함구령이 내려져 본인 입으로 ‘통합’을 이야기하지 못하니 기자의 입에서 그 단어를 끄집어 낸 것이다.
최대석 전 인수위원 사퇴에 대해서나, 정부부처 개편의 진행상황, 공약 재원 발굴 계획 등 관심사가 높은 질문에는 모두 “지금 말하기 어렵다”는 답만 나왔다. 급기야 물을 게 없는 기자들은 “요즘 몇 시에 일어나느냐?” “몇 시에 집에 가느냐?”는 등의 신변잡기성 질문을 해야 했다.
진영 인수위 부위원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모두 ‘교과서형’ 답변을 내놓으며 “과거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는 식의 동문서답으로 일관했고, 나머지 인수위원들도 대동소이했다.
환담회 자리에 녹음기와 휴대전화를 들이대자 한 인수위원은 “편하게 이야기하자고 불렀는데 녹음기를 이렇게 가져오면 되겠느냐”며 약간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어떤 질문에 대해 “그 문제는 저분에게 가보라”고 권하면서 일부 공무원들의 행태를 반복했고, 인사를 건네는 기자에게 “저는 잘 모른다”며 질문내용도 듣지 않고 답하는 이도 있었다. 결국 ‘함구령 완화 조치’가 발효되지 않아 인수위 문은 열렸는데 볼 것도 들을 것도 없는 공허한 메아리만 울린 셈이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