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공급 과잉이 불러온 ‘구조적 붕괴’ 압박…롯데케미칼 “자산 합리화와 체질 개선 작업 지속”

롯데케미칼이 지난 12월 제기된 ‘대산 NCC 셧다운설’에 대해 재차 “확정된 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셧다운설의 구체적인 내용은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충남 대산 석유화학단지 내 NCC를 통합 운영한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롯데케미칼이 연산 110만 톤(t) 규모의 설비 가동을 멈추고, HD현대케미칼의 85만t 설비를 중심으로 생산을 일원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게 제기돼 왔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가 합작사인 HD현대케미칼에 각 4000억 원씩 총 8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대산단지의 에틸렌 생산능력은 기존 195만t에서 85만t으로 대폭 축소된다. 이는 정부와 업계가 자율협약을 통해 설정한 국내 전체 감축 목표(270만~370만 t)의 약 30%를 단숨에 해소하는 규모다. 시장에서는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으나 회사는 아직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고강도 구조조정을 피할 수는 없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롯데케미칼은 2022년 하반기부터 이어진 업황 악화로 실적 부진의 늪에 빠졌고, 2025년에는 국내 신용평가사들로부터 신용등급 강등 통보까지 받았다.
경영진의 위기감은 이번 신년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영준 롯데화학군 총괄대표는 지난 1월 5일 신년사를 통해 2026년을 ‘미래 성장을 위한 대전환점’으로 규정했다. 이 대표는 “글로벌 사업 재편은 물론 국내 생산현장의 설비 조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구조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며 “경쟁력이 열세하거나 차별화가 어려운 사업은 올해도 과감하게 합리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돈이 안 되는’ 범용 사업(NCC 등)을 도려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석유화학 단지들의 구조조정 속도가 더디다는 점이다. 롯데케미칼은 HD현대오일뱅크와 손잡고 2025년 12월 초 업계 최초로 대산 NCC 관련 사업재편계획안을 제출했다. 이미 양사가 2014년 3월부터 합작법인 현대케미칼을 운영 중인 만큼 이해관계 조율이 타사 대비 수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롯데케미칼은 여수산단에서는 고전 중이다. 현재 여천NCC 1·2공장과 롯데케미칼 여수 공장 중 일부를 추가 정리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으나 구체적인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각 사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만큼 구조조정이 순탄치 않다. 석유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말 정부가 정한 기한에 쫓겨 16개사가 자율협약 안을 제출했지만, 이는 사실상 ‘극초안’ 수준에 불과하다. 올해 내내 이 초안을 구체화하는 작업이 이어지겠지만, 서로 다른 회사들 간에 생존을 위한 통폐합을 논의해야 하는 만큼 지지부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석유화학 산업이 갖는 ‘거대 장치 산업’의 특성이 구조조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석유화학 설비는 한 번 짓는 데 수조 원이 투입되고 수명이 30년에 달한다. 울산 단지 등에서는 신규 설비(샤힌 프로젝트) 가동을 앞둔 S-Oil 등 일부 업체가 “아직 돌리지도 않은 공장을 어떻게 줄이냐”며 난색을 표하는 반면, 기존 업체들은 “신규 진입자가 감산에 동참하지 않으면 결국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라며 반발하고 있어 고통 분담 합의가 쉽지 않은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근본적인 문제는 중국발 공급 과잉이 단순한 경기 사이클상의 불황이 아니라 ‘구조적 붕괴’에 가깝다는 점이다. 과거 한국 석유화학 기업의 최대 고객이었던 중국은 이제 자급자족을 넘어 수출국으로 변모했다. 실제로 2022년 4500만t이던 중국의 에틸렌 생산능력은 5400만t으로 급증했다. 올해 역시 생산능력이 5500만t까지 늘어나며 예상 수요(4800만t)를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석유화학업계 다른 관계자는 “미국의 경제 제재를 받는 러시아, 이란 등의 저가 원유가 중국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중국은 ‘규모의 경제’뿐만 아니라 압도적인 원가 경쟁력까지 확보했다”며 “여기에 오일 머니로 무장한 중동 국가들까지 시장 진입을 가속화하고 있어 2026년 업황은 더욱 암울하다”고 토로했다.
롯데케미칼은 생존 전략으로 ‘스페셜티(고부가 소재) 전환’을 내세우고 있다. 하반기 전남 율촌에서 연산 50만t 규모의 국내 최대 컴파운딩 공장을 완전 가동해 모빌리티·IT용 고기능성 소재 시장을 공략하겠다고 밝혔다. 배터리 소재 분야에서는 자회사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를 앞세워 AI(인공지능)용 고부가 동박 등 차세대 소재 공급을 확대할 방침이다.
그러나 스페셜티 전환 역시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론적으로는 범용 제품 비중을 줄이고 기술 장벽이 높은 고부가 제품으로 수익성을 방어하겠다는 전략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전기차 충전 케이블 피복재 등 특수 소재 시장은 성장성이 높지만, 전체 석유화학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파이)이 작다. 석유화학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스페셜티로 당장 범용 사업의 매출 공백을 메우기는 쉽지 않다. 박리다매를 앞세운 중국의 막대한 물량 공세를 매출 총액 면에서 당해내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전환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이미 ‘실기’한 측면이 있어 시간을 더 끌 수 없다”며 “수조 원을 투입하는 초대형 사업에 익숙한 업계 입장에서는 스페셜티의 상대적으로 작은 매출 규모를 보며 ‘이걸로 어떻게 먹고 사나’ 하는 저항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일본이 반도체 소재를 중심으로 스페셜티 사업을 강화하며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는 점을 감안해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게다가 중국 기업들의 기술 추격 속도가 빨라지면서 스페셜티 시장마저 ‘레드오션’화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앞서의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배터리, AI 등 첨단 산업을 빠르게 따라잡듯 석유화학 스페셜티 기술 격차도 금세 좁혀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위기를 단번에 타파할 수 있는 솔루션은 아닌 것 같다”며 “고부가 제품은 특수 촉매 등을 사용해 범용 제품보다 생산 단가 자체가 높은 만큼, 수요처가 경기 침체기에 굳이 비싼 제품을 구매할 유인이 떨어진다는 점도 딜레마”라고 설명했다.
롯데케미칼은 재무 건전성 회복을 위해 한때 핵심 자산이었던 말레이시아 자회사 ‘LC타이탄’의 매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2010년 인수 이후 회사의 성장을 견인했던 LC타이탄이 최근 글로벌 업황 악화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유력한 매각 대상으로 떠올랐으나, 떨어진 기업 가치 탓에 자칫 ‘헐값 매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발목을 잡고 있다. 롯데케미칼의 인도네시아 대형 석유화학단지 ‘라인 프로젝트’ 지분 일부 매각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회사 측은 “다각도로 방안을 검토 중이나 구체적으로 확정된 바는 없다”는 입장이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HD현대오일뱅크와 공동으로 사업재편계획안을 제출했으나, 구체적인 셧다운 대상 설비나 감축 물량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발 공급 과잉 대응책에 대해 “범용 제품 비중을 줄이는 동시에 배터리·수소 등 신사업과 고부가 스페셜티 소재로의 포트폴리오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면서 “올 하반기 율촌산단 스페셜티(컴파운딩) 공장의 완전 가동을 목표로 하는 등 자산 합리화와 체질 개선 작업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