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측 결백 증명 압박해 ‘대화 러브콜’ 스텝 혼란 유도…윤석열 ‘평양 무인기’ 재판과 겹쳐 이재명 정부에 정치적 부담도
여기에 윤석열 전 대통령의 이른바 ‘평양 무인기 의혹’ 관련 재판이 진행중인 것과 맞물려, 지난 정부와 완벽히 선을 그으려 했던 현 정부의 대북 기조 드라이브에 약간의 구멍이 생긴 인상이다. 국내 정치적으로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는 돌발 변수임에 틀림 없다.

앞서 북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지난 10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지난해 9월 27일과 이달(1일) 4일에 한국이 무인기를 침투시켜 격추했다”고 주장하며 이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북한은 구체적인 침투 날짜와 경로, 격추 위치까지 언급하며 한국의 도발이라고 강조했고, 인천 강화 일대 이륙 시각과 비행 궤적, 강제 추락 정황까지 공개하는 등 공세 수위를 끌어올렸다.
이에 국방부는 “우리 군이 북한이 주장하는 일자에 무인기를 운용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이재명 대통령이 이 사안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고 세부 사항은 관련 기관이 추가 확인 중”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국방부는 또 “1차 조사결과 우리 군은 해당 무인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북한이 발표한 일자의 해당 시간대에 무인기를 운용한 사실도 없다”고 재차 강조하며 우리 군 개입 가능성을 부인했다.
# 남북 합동 조사 얘기 꺼내자 북한은 공세에 활용
청와대와 국방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우리는 북한에 대해 도발하거나 자극할 의도가 없다”는 점을 거듭 부각하면서 논란 확대를 막기 위해 경찰·군이 함께하는 합동조사팀을 꾸려 사실관계 확인에 나서는 방식을 택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지난 10일 ‘남북이 합동 조사하면 되지 않겠느냐’라며 북한이 제기한 무인기의 실체를 공동 검증하자는 취지의 메시지를 던졌다. 여당에서도 비슷한 제안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남측을 겨냥해 “반드시 구체적으로 설명하라”고 압박하는 등 남측의 해명과 조사 방침을 ‘더 강한 공세’의 계기로 활용하고 있는 양상이다.

보수 야권인 국민의힘은 이번 사안을 이재명 정부 안보 기조를 정조준하는 소재로 삼고 있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지난 10일 논평에서 “이번 사태로 이재명 정부의 원칙 없는 안보관은 물론 안보마저 정쟁으로 끌어들이는 행태는 재확인됐다”고 비판하며, “정부는 북한에 대한 대화 구걸이나 위장 평화 쇼가 아니라, 확고하고 일관된 입장 정리로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북한 주장에 편승한 ‘정쟁 프레임’이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백승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지난 10일 “국방부는 우리 군이 무인기를 운용한 사실이 없다고 공식 확인했다”며 “북한의 일방적 주장을 빌미로 정부와 군을 공격하며 안보 불안을 조장하는 무책임한 정치공세”라고 맞받았다. 야권 공세의 초점을 ‘안보 불안 부각 전략’으로 규정한 대응이다.
#윤 전 대통령 ‘평양 무인기’ 재판과 겹친 정치적 부담
윤석열 전 대통령을 둘러싼 이른바 ‘평양 무인기’ 의혹 재판이 진행 중인 시점에 북한의 이번 공세가 터진 점도 현 정부 입장에선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는 12일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에 대한 일반이적 및 직권남용 혐의 재판의 첫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쟁점이 된 ‘평양 무인기’ 의혹에 대해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평양에 무인기를 침투시켜 남북 긴장을 고조시키고, 이를 비상계엄의 근거로 삼으려 했다”는 내용이 골자라고 설명했다.
특검은 여 전 사령관의 메모를 토대로 윤 전 대통령이 드론작전사령부에 무인기 투입을 지시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당시 무인기가 평양 인근에 추락해 군사 기밀이 유출된 만큼 “일반이적죄가 성립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전임 정부 수장의 ‘평양 무인기’ 작전 의혹이 법정에서 다뤄지는 와중에, 북한이 “이재명 정부 들어서도 무인기 침투가 계속된다”고 주장하는 그림이 현 정부에겐 꽤 곤란한 정치적 압박이 되고 있다.

최근 한중 정상이 소통 채널을 복원하며 한반도 정세 전반에 대한 ‘관리 모드’ 복귀를 시사한 상황에서 북한의 남측발 무인기 의혹 제기한 것은 중국을 포함한 주변국의 시선을 의식한 메시지전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북한이 구체적 비행정보까지 공개하며 “한국이라는 정체에 대한 적대적인 인식을 가지도록 하는 데 또다시 도움을 주었다”고 남측을 비난한 대목은, 남측과의 직접 대화는 차단하되 갈등 의제를 선점해 내부 결속과 대외 여론전을 동시에 겨냥한 행보로 읽힌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연합뉴스에 “정권이 바뀌어도 한국은 변치 않는 적대국이라는 입장을 유지, 우리 정부의 평화공존 시도를 '기만'으로 몰아세우면서 압박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이재명 정부가 최근 “바늘끝만한 구멍이라도 뚫어야 한다”며 대화 재개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점을 겨냥해, 북한은 ‘무인기 도발·격추’ 프레임을 씌운 뒤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 방식으로 협상력을 높이려는 의도란 분석도 가능하다.
정부가 군·경 합동조사 TF를 통해 “민간 무인기 여부”와 발신 주체를 규명하겠다고 나섰지만, 북한 입장에선 이미 자신들이 설정한 서사에 맞춰 남측이 ‘결백 증명’에 매달리는 모습이 연출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한 셈으로 풀이된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동아일보에 “북한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고 침착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면서 “지금과 같이 북한에 끌려다니는 방식으로는 남북 관계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기 더욱 어려워진다”고 조언했다.
이강훈 기자 ygh@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