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훼손 가능성, 통신조회도 어려운 상황…경찰, 뒷북 출금 등 늑장 조치 지적에 “오히려 빠른 측면”

6·1 지방선거가 한창이던 2022년 4월 21일 오전. 민주당 서울시당 공천관리위원회 위원으로 있던 강선우 의원과 서울시당 공천관리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던 김병기 의원이 만났다. 김 의원은 “바로 돌려주든지, 사무국장한테 맡겨두든지, 공천 배제, ‘컷오프’해야 하겠다. 그러면 돌려줬어야 하지만, 그런 것 없이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김 의원은 “1억, 이렇게 돈을 받은 것을 지역 보좌관이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 아니냐”며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에 강 의원은 “정말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이라고 답했다. 김 의원이 언급한 1억 원은 김경 서울시의원이 강 의원에게 건넨 돈이다. 강 의원이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셈이다.
김 의원은 “김경 그분에 대해서 공관위원으로서 문제가 생길 텐데, 어떠한 것에 대해서 그렇게 허락할 수 없다”며 “법적인 책임뿐만 아니고 나중에 도덕적인 책임, 공관위 전체에 대한 신뢰성, 당에 대한 문제, 어마어마한 문제가 걸려버린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강 의원은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며 “의원님 저 좀 살려주세요”라고 말했다.
두 의원 대화 내용을 종합하면 강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강서구에서 출마를 준비 중인 김경 서울시의원으로부터 1억 원을 받았다. 받은 돈은 지역 보좌관이었던 남 아무개 전 사무국장이 보관했다. 이 과정을 김 의원에게 전달했다. 김 의원은 이 대화 내용을 녹음했다.
두 의원의 대화가 오간 다음 날인 2022년 4월 22일 김 시의원은 강서구 시의원 후보로 단수공천됐다. 서울시당 공관위는 강 의원과 김 시의원이 1억 원을 주고받은 사실을 문제 삼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김 의원이 묵인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지난해 12월 31일 경찰은 관련 사건을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에 배당했다. 같은 날 김 시의원은 미국으로 출국했다. 김 시의원은 출국 전 주변에 자녀를 만나기 위해 미국에 간다고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박병언 조국혁신당 대변인은 같은 날 “김경의 도피성 해외출국”이라고 지적했다. 경찰이 김 시의원 미국 출국길을 열어줬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고발장이 12월 29일에 접수됐는데 사건 배당은 31일에서야 이뤄졌기 때문이다. 김 시의원은 도피 목적은 아니었고, 일정을 단축해서라도 귀국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의 봐주기 수사 논란은 계속됐다. 1월 6일(현지시각) 김 시의원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행사에 참석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김 시의원은 자신의 출입증을 목에 건 채 행사장을 돌아다녔다. 다른 참석자들과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채 기념 촬영을 한 장면도 공개됐다.
정치권을 뒤흔든 사건 당사자의 이런 이해하기 힘든 모습을 두고 묘한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김 시의원이 CES 공개 참석을 통해 특정인에게 모종의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내용이다.
증거인멸과 수사 대비 시간을 벌어줬다는 비판도 거세졌다. 김 시의원은 1월 7일 자신의 텔레그램을 탈퇴하고 재가입했고, 귀국을 앞둔 1월 10일에도 텔레그램을 탈퇴한 뒤 재가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1월 12일 귀국할 것으로 알려진 김 시의원은 일정을 바꿔 1월 11일 들어왔다. 이날 경찰은 긴급체포가 아닌 임의동행 방식으로 김 시의원을 불러 조사를 진행했다.
#강선우 전 보좌관 "돈 받은 적 없다"
강선우 의원, 김 시의원, 남 전 사무국장 등 당사자들의 말은 엇갈린다. 김 시의원은 경찰에 제출한 자술서에서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강선우 의원에게 공천헌금 1억 원을 줬고, 다시 돌려받았다고 했다. 강 의원 입장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반면 남 전 사무국장은 1월 6일 경찰에 김경 시의원으로부터 돈을 받은 적 없다고 진술했다. 자신의 이름이 강선우·김병기 대화 녹취에 나온 이유도 알 수 없고, 강 의원에게 돈을 돌려주라는 지시도 받은 바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김 시의원은 한 카페에서 현금을 전달했고, 이 자리에 강 의원과 남 전 사무국장이 함께 있었다고 했다. 이는 사무국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아 1억 원 수수 사실을 인지했다는 강 의원 입장과 엇갈린다.
경찰이 진위를 가려내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경찰은 김 시의원과 강 의원에 대한 통신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통상 통신 조회 가능 기간은 1년이다. 이 사건 관련 통신 내역은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경찰은 김 시의원이 사용한 전자기기 일부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1월 11일 김 시의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PC 2대를 조사했다. 현장에 있던 PC 2대 중 한 대는 하드디스크가 제거된 상태였다. 나머지는 초기화 정황이 포착된 것으로 전해졌다.
1월 12일에는 김 시의원이 시의회에 반납한 PC 2대를 추가 확보했다. 이 중 한 대에서는 포맷 흔적이 발견됐다. 김 시의원은 지난해 10월경 피고발 직후 이 PC를 반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진종오 국민의힘 의원은 김 시의원이 6·3 지방선거에서 김민석 국무총리를 지원하기 위해 종교 단체를 불법 동원했다는 내용의 고발장을 제출한 바 있다.
서울시의회가 김 시의원에게 지급한 노트북과 태블릿PC는 사라진 상태다. 김 시의원이 3년 넘게 사용한 전자기기 확보에 실패한 셈이다. 이 기기는 2022년 서울시의회가 지급한 물품이다.
1월 12일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은 정례 간담회에서 강 의원, 남 전 사무국장, 김 서울시의원에 대해 출국금지 조처를 했다고 밝혔다. 김 시의원 재소환은 최대한 빨리 진행할 방침이라고 했다. ‘늑장 수사’ 의혹에 대해서는 “늦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빨리 진행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경찰의 태도가 이중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때와 온도차가 크다는 것이다. 앞서 이 전 위원장은 “좌파 집단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집단” 등의 발언을 했다가 경찰에 고발됐고, 지난해 10월 긴급체포됐다. 이 관계자는 경찰이 정권 눈치보기에 급급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일종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수사가 좌우되고 있다는 의혹 제기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